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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쪽바리당과 일당들

노인들 돈 1만원씩 빼앗아간 정부·여당?

[한겨레21] [초점]

대선 앞두고 노인복지 입법 생색내다 집권 뒤 기초노령연금 인상에는 손 놔…
대한은퇴자협회 고소·고발 검토 중


"대선 땐 '어르신들 노후는 우리가 책임지겠다'며 기초노령연금을 반드시 확대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나니 아무것도 안 해요. 노인들 표를 사려고 장난쳤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이젠 노인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나쁜 사람들이죠. 전국에 나이든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잘 알아서 6·2 지방선거 땐 이 정권을 심판해야 해요."

0.25%씩 올렸으면 10만3천원인데…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의 목소리엔 노기가 가득했다. 대한은퇴자협회는 회원이 12만 명가량 되는 노인 권익단체다. 200만 명에 이르는 대한노인회에 비할 규모는 아니지만, 정치권이 노인을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고 실행하는지 감시하는 눈초리는 어디보다도 날카롭다. 이 단체가 민주노총·공공노조·참여연대 등과 함께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로 지급하지 않은 기초노령연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어버이날 카네이션뿐만 아니라 기초노령연금 미지급액도 함께 받게 해달라는 '카네이션 캠페인'이다.

노인들이 무슨 돈을 얼마나, 왜 못 받았기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일까? 현재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이 적은 70%, 즉 월 68만원 이하(노인부부는 108만8천원 이하)를 버는 사람은 월 9만원(노인부부는 14만4천원)씩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지급액 9만원은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 소득의 5%를 기준으로 산출된 액수다. 2007년 7월 제정된 기초노령연금법은 이 지급액을 2008년부터 2028년까지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 소득의 1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인상 방법과 시기 등을 논의할 '연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부칙 제4조의 2). 그런데 여태껏 국회엔 연금제도개선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고, 지급액도 제자리다. 만약 위원회가 바로 구성돼 매년 같은 비율(0.25%)로 지급액을 올리기로 결정했다면, 올해 노인들이 받는 돈은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 소득의 5.75%인 월 10만3천원(부부노인 16만5천원)이 된다. 노인들은 이 때문에 지급되지 않은 기초노령연금이 5천억원에 이른다고 분노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덜 받았다는 돈은 한 명당 1만원 남짓으로, 큰 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OECD가 내놓은 < 연금편람 2009 > 를 보면,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은 45.1%로 30개국 평균(13.3%)의 3배가 넘는다. 이런 강퍅한 삶의 조건은 노인 스스로 목숨도 끊게 한다. 2005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의 65~74살 노인 자살자는 10만 명당 16.3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의 같은 연령대 자살자는 81.8명으로 5배에 이른다. 게다가 2008년 서울시가 65살 이상 노인 5천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4.1%는 무소득자, 29.4%는 소득이 월 5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바 있다. 1만원은 '굶어 죽을' 수 있는 노인이 라면 10여 개, 빵 20개를 살 수 있는 절실한 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한 건 이런 가혹한 현실에 국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아니었다. 대선을 1년 앞둔 2006년 고령화 가속 등으로 국민연금이 2047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보험요율 9%에서 12.9%로 인상, 급여율 60%에서 50%로 인하) 형태로 바꿔야 한다며 국민연금법 개정을 시도했다. 여론의 반발은 엄청났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제를 고치더라도 보험요율에 손대선 안 되며, 국민연금 급여액이 줄어드는 부분을 보상하기 위해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20%(월 32만원)를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맞섰다. 돈을 낸 사람만 받아가는 국민연금 체계 안에, 모든 국민의 소득을 국가가 일정 부분 보장하는 기초연금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 진보진영의 '숙원사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정책을 오히려 한나라당이 주장한 것이다.

법에 명시된 연금개선위 구성도 안 해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를 "대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미 한나라당으로 기운 노인층 표심을 되돌릴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게 국민연금과 분리해 운영하는 기초노령연금이었다. 정부안은 65살 이상 저소득층 노인 60%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5%를 지급하는 것으로, 지급 대상과 액수가 한나라당안보다 한참 모자랐다. 기초연금이냐, 기초노령연금이냐, 누구에게 얼마나 지급할 것이냐를 두고 1년 가까이 날선 협상이 계속됐고, 마침내 2007년 7월 현재의 내용으로 기초노령연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초연금을 향한 한나라당의 '투지'는 조금 더 지속됐다. 전재희 당시 정책위의장(현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어느 정도 (급여율과 지급 대상) 수준을 올려둬야 한다. 기초노령연금법을 통과시킨 건 기초연금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쓰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바꾸고, 이를 국민연금으로 통합해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것을 핵심 노인복지 공약으로 내놨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한발 더 나아가 "기초연금으로 전환된 기초노령연금의 지급 대상자는 65살 이상 노인의 70%에서 80%로 10%포인트 확대한다"고까지 밝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기초연금 전환 논의는커녕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위해 설치하도록 법에 명시된 연금제도개선위원회조차 외면하고 있다. 민주당의 계속된 요구에도 한나라당은 "연금 개선 논의를 하려면 공무원·사학·군인연금도 함께 다뤄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연금제도개선위원회 구성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기 부담스럽다"며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태도가 180도 달라진 건 재원 마련에 대한 부담 탓이 크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 확대 공약을 믿고 표를 준 노인들로선 이들이 '먹튀'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대한은퇴자협회와 민주노총, 공공노조, 참여연대 등은 지난 4월7일 기초노령연금 확대를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5월6일 탑골공원 대규모 집회, 5월7일 국회 기자회견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면담 등을 통해 기초노령연금 문제를 지방선거 의제로 띄울 생각이다. 이런 요구에도 국회가 연금제도개선위원회 구성에 착수하지 않으면 고소·고발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할 계획이다.

민주당 지방선거 전략으로 채택

이런 움직임에 민주당은 △기초노령연금을 매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0.25%씩 인상하는 것을 명문화하고 △지급 대상자를 65살 이상 노인 하위 소득 80%로 확대하는 내용의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백원우 의원 대표발의). 또한 이 법안 통과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한편, 지방선거에서도 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이 제자리를 찾을지는 미지수다. 김민재 공공노조 사회연대임금지부 문화선전홍보국장은 "노인 인구는 계속 늘기 때문에 기초노령연금은 계속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많이 주겠다'던 한나라당이 태도를 바꾼 것이나, 과거 열린우리당이 소극적이었던 것도 다 재원 부담 때문"이라며 "하지만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결국 (집권세력의) 의지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