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추악한 자본

역대 정권과 재벌들과의 관계는

역대 정권과 재벌들과의 관계는…
성장의 주역·개혁의 대상…밀월-냉각기 오가며 ‘애증의 세월’
[헤럴드경제] | 입력 2012.08.17 12:05


경제개발시대 기업 주도적 역할
대통령도 이해 맞아 전폭 지원
방만경영으로 외환위기 낳기도
IMF이후 재벌개혁 요구 확산
2000년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
대통령, 필요때마다 '견제구'여전


우리나라 재벌의 역사는 대통령의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대통령은 재벌을 선택했고, 재벌은 대통령을 만들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본격화된 대통령과 재벌의 공생관계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국가경영의 파트너로 발전해왔다.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했던 개발시대 일부 재벌이 권력의 칼날에 쓰러지기도 했지만, 경제에서 재벌의 비중이 커지면서 양자 간의 관계는 점차 균형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권력을 한손에 쥔 대통령은 재벌에게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자 견제 대상이다.


▶ 1960~70년대. 대통령, 재벌을 낳다

=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박정희는 몇몇 기업을 선택해 한정된 자본을 집중 투입했다. 당시 박정희는 '대한민국'이란 기업의 총수였고, 선택된 기업인들은 각 계열사 사장들이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경제개발계획은 철저히 청와대에서 기획됐고, 재벌들은 청와대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부고속도로를 닦은 것은 현대건설이지만 이 대역사의 총지휘자는 박정희였다.

1960 년대에는 원조와 차관이 자본의 대부분이다보니, 직물 의류 등의 노동집약형 수출기업들이 재계 상위권을 차지했다. 국가가 수입원료에는 세금부담을 없애준 데다, 노동자에 대한 임금은 통제해 원가를 낮춘 게 사업모델이다. 하지만 노동집약형 산업으로는 경제성장도 더딜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박정희 '(주)대한민국 회장'은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 육성에 뛰어든다. 베트남전쟁 파병으로 얻은 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쌈짓돈이 됐다.

이 때 박정희가 선택한 산업이 철강, 비철금속, 석유화학 등 기초소재산업과 조선, 전자,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이다. 삼성, 현대, 대우, 럭키금성, 포항제철, 쌍용 등 오늘날 재계를 구성하는 재벌 대부분이 이때 박정희의 낙점을 받은 기업들이다. 즉, 박정희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벌 탄생의 산파(産婆)였던 셈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1980~90년대. 밀월

= 12ㆍ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후퇴한 민주화의 대가로 국민들에게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을 내민다. 경제를 손에 쥔 재벌과 청와대의 밀월은 5공화국 탄생부터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특히 재벌로부터 엄청난 뇌물을 받은 전두환ㆍ노태우는 재벌들의 손에 굵직한 선물들을 안겨준다. 대통령가와 재벌가의 혼맥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맺어진다.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과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의 민영화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당시 노태우와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이미 사돈이었다.

문민정권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재벌과 정권의 밀월은 계속된다. 민주화된 선거는 막대한 정치자금을 필요로 했는데, 역시 자금줄은 재벌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 단계 올라선 경제수준도 재벌의 경제적 위상을 높였다. 하지만 정권의 재벌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지자 그동안 대통령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던 재벌들은 '자율'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이는 결국 '방만'으로 흘러 1997년 1월 한보사태가 터졌고, 이해 말 외환위기로 이어진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경영이 도마에 오르기 시작하고, 편법 상속 등으로 인한 재벌개혁 요구도 이때를 기점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재벌개혁은 대선에 도전하는 정치권 후보들에게 '뜨거운 감자'가 된다. 치적을 위해서는 손을 잡아야 하지만, 표를 위해서는 규제를 해야 하는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1997년을 기점으로 대통령은 다시 재벌의 고삐를 다잡는다. 기업 구조조정을 명분 삼아 이뤄진 '빅딜'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바로 대통령이었다. 당시 기아차를 삼성이 아닌 현대차에,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쌍용차를 대우에 준 구조조정은 우리나라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현대차는 기아차를 정상화시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지만, 쌍용차를 품은 대우는 결국 무너졌다. LG반도체를 가져온 현대전자도 현대건설 부실화로 결국 경영권을 잃게 됐다.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꾼 현대전자는 10년간 은행 관리 아래 있다 올해에야 SK그룹이란 주인을 만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2000년 이후. 재벌, 대통령을 만들다

= 최근 방영된 드라마 '추적자'에서 재벌총수는 대통령보다 강한 자리로 묘사된다. 대통령의 권한은 단 5년, 그것도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지만, 재벌은 대물림인 데다 여론의 눈치를 볼 이유도 덜하다. 드라마 속 대권을 꿈꾸는 '강동윤'조차도 최종 목표는 '회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마불사'라는 말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았다. 다른 말로 정부가 얼마든지 기업을 없앨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쳐 기업들의 차입금 의존도가 낮아지고 글로벌 기업이 생기면서 이제는 정부가 기업을 마음대로 하기 쉽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기업들이 굳이 은행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데다 국가경제에서 대기업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젠 대통령도 재벌들을 쉽게 어찌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세무조사나 개인비리 등으로 얼마든지 재벌총수를 옥죌 수 있다. 특히 재벌의 최대 취약점인 후계문제에 있어서는 정부의 방침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건희 삼성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 서열 최상위 총수들이 법정에 선 것은 모두 후계구도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재벌 규제가 단행됐는데, 이 역시 지배구조 문제가 단골 메뉴였다.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 일명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라 불리는 규제도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의 핵심도 후계구도다. 논란이 된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해 순환출자금지와 출자총액제한의 타격은 적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통제해온 재벌 지배구조에 대한 수술이기 때문이다.


출처 : 역대 정권과 재벌들과의 관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