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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2) 도덕성과 과거를 묻는다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2) 도덕성과 과거를 묻는다
‘정수장학회·가족관계·최태민 미스터리’가 의혹의 쟁점들
[경향신문] 강병한 기자 | 입력 : 2012-08-28 21:49:55 | 수정 : 2012-08-29 00:26:18


“정수장학회(문제)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에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5년 내내 모든 힘을 기울였다. 잘못이 있었다면, 지난 정권 때 힘이 있었던 주체들이 하면 됐지 왜 지금 저한테 하라고 하느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10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는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의혹과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향해 제기된 과거 의혹에 대해 취해온 입장과 같다.

하지만 박 후보 진영에서조차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꼽는 게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다. 한 친박근혜(친박)계 의원은 “정수장학회 문제만큼은 내가 꼭 해결해 보고 싶다”고 했다. 최측근으로 ‘왕실장’이라는 별칭을 얻은 최경환 의원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이 알아서 처신해주면 고마운 일”이라고 우회적으로 용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박 후보의 ‘지침’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통일된 의견과 주석을 덧붙이던 평소 친박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박 후보를 둘러싼 이런저런 의혹 중에서도 정수장학회는 실체가 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박 후보를 둘러싼 도덕성과 역사관 문제의 결정체가 정수장학회 아닌가. 이것만 해결되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04년 8월 공개된 고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 비망록 복사본에는 5·16 쿠데타 세력의 요구로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헌납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박 “정수장학회 잘못 있었다면 벌써 끝장”… 야권선 “장물”
반환 소송 진행 중, 측근들은 최필립 이사장 용퇴로 해결 기대

▲ 지만씨 재산형성 과정, 올케 서향희 변호사 늘어난 수임 눈길
4촌내 40여명 친·인척, 최태민 목사 논란 대선 때 부담 가능성



■ 정수장학회 논란은 진행형

정수장학회는 5·16 군사 쿠데타의 산물이다. 전신은 부산 기업인인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2년 부일장학회를 헌납받아 5·16 장학회를 설립했다. 5·16 장학회는 1982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 ‘정수’장학회라고 이름을 고쳤다.

야당은 정수장학회를 ‘장물’(贓物)로 규정한다. 절도·강도·사기·횡령 등 불법으로 얻은 남의 재물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 이사장 퇴진과 재단 재산의 사회 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박 후보는 “장물이고 여러 가지 법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재단이) 벌써 오래전에 끝장났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법원은 1심에서 박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2월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에서 “강박행위는 인정되지만 제척기간(법률상 권리존속 기간)이 끝나 청구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당시 김씨가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주식을 증여할 정도로 강박이 심했다고 보긴 힘들어 증여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1995년부터 10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다. 1998년 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연봉으로 1억~2억3520만원씩 총 11억여원을 받았다. 1980년 이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산 이른바 ‘은둔 18년’과 정치권 초반 박 후보에게 나름의 자금원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검증청문회 당시 급여·섭외비 등 “연간 장학금의 10%가 박 후보에게 갔다는 주장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 후보는 “이사장으로서 써야 할 돈이 필요하다. 목적 사업비와 운영비의 비율이 8 대 2인데 (내 보수는) 운영비 2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나온 돈”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세비와 이사장 급여·섭외비 등이 얽혀 소득세와 건강보험료 중 일부를 정산하지 않았다가 추후 납부한 점도 드러났다. 박 후보는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가 “공권력에 의한 헌납”이라고 결론을 내리자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유신 시절 박 후보 공보비서관을 지낸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을 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 이사장은 최근까지도 공식적으로 자신과 자제 명의 등으로 박 후보에게 정치 후원금을 제공한 것으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의 분석 결과 드러났다.

이런 점들이 박 후보 측근과 친박 원로들 사이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직접적으로 박 후보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지만, 법원이 강압을 인정했고 역사 화해 차원에서라도 최 이사장이 좋은 결정을 해주면 좋다”고 말했다. 친박계 원로들은 최 이사장 퇴진을 전방위적으로 압박 중이다.

이 때문에 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범야권 후보에게 밀릴 경우 정수장학회 해결을 ‘반전’의 카드로 꺼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후보로서도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 얽히고설킨 가족들의 그늘

박 후보는 2004년 동생 지만씨가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하자 미니홈피에 “(서 변호사는)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고 남겼다. 하지만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후보는 “(서 변호사가) 홍콩에 간 것도, (국내로) 돌아온 것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8년여 시간보다 먼 거리가 이들 사이에 놓여 있는 듯했다.

정치권에선 “박 후보의 최대 적은 바로 가족”이라는 말이 나돈다. 박 전 대통령은 5남2녀 중 막내이고, 육영수 여사는 1남3녀 중 셋째다. 박 후보의 4촌 이내 친·인척만 40여명이 넘는다. 이들의 이런저런 추문이 공개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박 후보 사촌 오빠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친박연합’을 만든 뒤 3500만원을 받고 시의원 공천을 준 혐의로 구속됐었다. 지난해 박 후보 5촌 조카인 박용수씨가 또 다른 5촌인 박용철씨를 채무 등의 이유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벌어졌다.

박 후보의 가장 가까운 핏줄인 지만씨와 근령씨도 ‘정치적 우군’이 되기는커녕 부담이다. 1990년 육영재단 문제로 갈등을 빚은 근령씨와 박 후보는 ‘의절’한 상태다. 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씨는 자신에 대한 청부살해 미수와 5촌 살해사건 배후로 지만씨를 지목,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최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박 후보 측 인사는 “5촌 살해사건은 법원 판결대로 지만씨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박 후보는 더욱 무관한 일”이라고 했다.

우려의 시선은 지만씨와 그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로 쏠린다. 서 변호사는 결혼 후 지만씨와 함께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참석하곤 했지만, 지난 8월15일에는 지만씨 혼자 나타났다.

서 변호사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그가 박 후보를 배경으로 활용해 법률 자문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2006년 신우 사외이사, 2007년 씨엔에이치 감사 및 인선이엔티 고문, 2009년 법무법인 주원 공동대표, 삼화저축은행 고문 및 서울시 의회 고문, 2010년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공제조합 서울지부 고문, 2011년 법무법인 새빛대표·미주제강 고문 등을 지냈다. 지만씨와 결혼한 이후 사건 수임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최근엔 2009년부터 3년간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지낸 점이 논란이 됐다. 지만씨가 친구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이 검찰에 연행되기 2시간 전에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박 후보는 지난해 6월 이런 의혹들에 대해 “(지만씨) 본인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정리했다.

지만씨의 재산축적 과정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린다. 전자용 산화철 생산업체인 EG 회장인 지만씨는 1989년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으로부터 현 EG의 전신인 삼양산업 부사장직을 받았다. 1990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서 9억원을 빌려 회사 지분 74.3%를 인수하면서 대표이사가 됐다.

EG는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지난해 말 재벌닷컴이 집계한 부자 서열에서 지만씨는 국내 336위에 올랐다. 재산은 589억원이었다.



■ 미스터리로 남은 최태민 목사

최태민 목사를 둘러싼 논란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최 목사 수사파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항소이유서, 박 후보와 최 목사의 인터뷰,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 정도가 남은 자료들이다.

최 목사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뒤 박 후보와 만나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면서 총재로 취임했다. 이는 1976년 구국봉사단, 1978년 새마음봉사단으로 개명됐다. 중정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했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 자료에는 최 목사의 혐의만 44건이나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9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중정 7국장, 박 후보, 최 목사를 불러 ‘친국(직접 죄인을 심문)’했다.

이후 검찰 재수사설 등이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10·26 후 권력을 잡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최 목사를 조사한 후 강원도 군부대로 보낸 것뿐이다.

박 후보가 1983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최 목사가 그의 곁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육영재단과 어린이회관 운영에 최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씨가 개입해 이권을 행사한다는 의혹은 당시에도 제기됐다.

1990년 근령·지만씨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 목사로부터 언니를 구출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박 후보는 2007년 검증청문회에서 “제가 아는 한도에서는 특별히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지 않으냐,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최 목사를 두둔했다.

최 목사는 1994년 사망했지만, 그림자는 남아 있다. 최 목사 딸인 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는 박 후보의 1998년 정치입문부터 함께해 2004년까지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도 ‘삼성동팀’이란 비선팀을 이끌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동은 박 후보 자택이 있는 서울 삼성동을 지칭한다.

“정씨는 박 대표가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행사에 가면 가끔 마주쳤다. 공식적으로는 활동하지 않을 때라 정윤회가 몹시 민망해했다”(2007년 경선캠프 인사)는 전언도 있다.

이후 그는 박 후보와 공식적인 관계는 끊은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2007년 이후 정씨는 사라졌다. 알면 피곤하기 때문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모른다”고 했다. 박 후보도 2007년 검증청문회에서 “(관계가) 없다”고 했다.

다만 정씨와 최순실씨의 재산 형성 의혹은 제기될 수도 있다. 최씨는 현재 서울 신사동과 역삼동에 150억원대 건물 2채를 보유 중이며, 정씨와 공동명의로 서울 역삼동에 40억원대 단독주택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산을 놓고 과거 육영재단 재산을 빼돌리거나 각종 이권 개입으로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이 대물림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박 후보 측은 “그들의 재산과 박 후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 박근혜의 집과 돈

박 후보가 직접 돈을 받은 경우는 두 번이다. 박 후보는 1979년 10·26 직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으로부터 생계비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았다.

박 후보는 2007년 검증청문회에서 “전 전 대통령 심부름을 왔다는 분이 만나자고 해 청와대 비서실로 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시다 남은 돈이다. 법적 문제가 없다. 생활비로 쓰시라’고 해 감사하게 받고 나왔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에서 탈당해 한국미래연합 총재가 됐던 박 후보는 2002년 한나라당과 합당하면서 김영일 당시 사무총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 박 후보는 2007년 검증청문회에서 “복당해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래서 사무총장에게 확인했는데 2002년 11월26일과 12월7일에 각각 1억원씩 2억원을 선거활동비 운영자금으로 받았다. 합당조건으로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 재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1억8104만원이다. 서울 삼성동 단독주택이 19억4000만원을 차지한다. 박 후보는 예금만 7815만원이고 주식은 없다. 박 후보는 청와대를 나온 뒤 4차례 이사했다. 10·26 직후 서울 신당동 집으로 돌아간 뒤 1982년 성북동 주택으로 옮겼다. 이 집을 팔아서 1984년 장충동으로 갔다가 1990년 지금의 삼성동으로 이사했다.

성북동 주택은 당시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전두환 대통령의 요청으로 지어주면서 무상 취득 논란이 일었다. 박 후보는 “신당동 집이 좁아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신기수 회장이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분이니, 좀 도와주겠다는 생각으로 성북동에 집을 마련했으니 이사를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있어서 받아들인 것”이라며 “법적으로 세금 관계나 모든 것을 알아서 하겠다고 했기에 믿고 맡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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