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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수사팀 요구대로 컴퓨터 분석했다면 “댓글 없다” 발표 불가능

수사팀 요구대로 컴퓨터 분석했다면 “댓글 없다” 발표 불가능
서울경찰청, 4개 키워드만 분석… 반나절 안돼 발표
권 과장 “한마디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협박 받아”

[경향신문] 이효상 기자 | 입력 : 2013-04-23 06:03:38 | 수정 : 2013-04-23 06:03:38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해 12월16일 오후에야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해온 수서경찰서 수사팀과 국정원 직원 김모씨(29)의 컴퓨터 분석에 활용할 대선 및 정치 관련 키워드를 4개로 줄이는 데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은 대선 후보 3차 TV토론회가 있었던 날로, 서울경찰청은 오후 11시19분에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노트북에서 “대선 관련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청이 핵심 키워드를 4개로 줄이는 데 수사팀과 합의한 뒤 불과 반나절도 안돼 수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핵심 키워드는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 4개로 줄었는데, 당초 수사팀이 제시한 100여개의 키워드 중에는 ‘반값 등록금’과 같은 대선 정국에 이슈가 됐던 정치·사회적 단어들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서서의 요구대로 100여개의 키워드로 김씨의 컴퓨터를 분석했다면 대선 직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한 영향을 미친 경찰의 보도자료는 나오지 못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정원’ 축소 수사 의혹에 휘말린 경찰 이성한 경찰청장은 22일 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과정에서 경찰 윗선의 수사 축소·은폐가 있었는지에 관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어지럽게 얽힌 전선 너머로 경찰청사가 보인다. | 김창길 기자


■ 중간수사 발표 반나절 전에 키워드 4개 합의

경향신문이 22일 수서서 문서수발대장을 확인한 결과 수사팀은 서울경찰청 수사과에 지난해 12월 14일 2차례에 걸쳐 100여개의 키워드로 김씨 컴퓨터를 분석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이를 묵살하고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4개의 키워드로만 김씨 컴퓨터를 분석했다.

서울경찰청은 수서서에서 의뢰한 키워드로는 너무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수서서와의 ‘상의’하에 핵심 키워드 4개를 추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은희 당시 수서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은 “서울청이 키워드의 개수를 줄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거절했다”며 “상의라는 표현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수서서는 12월 16일 오후에야 서울경찰청에 키워드를 4개로 줄이는 데 동의한 수정 공문을 보냈다. 서울경찰청은 이후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이날 밤 11시쯤 “김씨의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수서서가 서울경찰청에 보낸 키워드 중에는 정치 관련 단어도 포함돼 있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수서서 수사팀이 분석을 요구한 키워드 중에) ‘반값 등록금’ 이런 내용도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서울경찰청은 “ ‘호구, 가식적, 위선적, 네이버’ 등 대선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단어가 대다수였다”며 수서서가 제출한 키워드를 분석에 활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권 과장은 “당시 우리가 보낸 키워드는 수사팀이 나름대로 인터넷 사전조사를 거쳐 가능성이 높은 단어들을 선정한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가 인터넷에 작성한 글에는 ‘무상보육’ ‘4대강’ ‘제주해군기지’ 등 대선 직전 정치·사회적 이슈가 된 단어가 다수 포함돼 있다. 수서서가 당초 검색을 요청한 100여개의 키워드 중 이 같은 단어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고, 서울경찰청이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할 때 발견될 수 있다. 이 경우 경찰은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 권은희,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협박 받아

권 과장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1월5일 국정원 김씨를 2차 소환했을 당시 경찰 고위층으로부터 협박성 발언이 전달됐다고 밝혔다. 권 과장은 “김씨를 재소환할 때 경찰 윗선에서 내가 (언론에)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이 같은 협박을 여러 차례 전달받았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권 과장이 제기한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의혹이 제기된 만큼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우선 사건을 수사했던 전 수서서 지능범죄수사팀장 등 수사팀을 소환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향후 권 과장과 서울경찰청에서 수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에 대한 줄소환도 이어질 예정이다.

경찰은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권 과장이나 수사팀에 대한 감찰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 과장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출처 : 수사팀 요구대로 컴퓨터 분석했다면 “댓글 없다” 발표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