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에 이어 농심도 밀어내기... 특약점과 사실상 ‘노예계약’
본사, 대형마트에 20~25% 무상제공... 특약점도 경쟁 위해 저가판매
계약해지땐 채무 즉시변제해야... ‘못 갚을땐 연 16% 이자’ 계약도
[한겨레] 허재현 기자 | 등록 : 2013.06.09 20:36 | 수정 : 2013.06.09 22:42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택(50)씨는 2010년 9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특약점 사업을 시작했다. 농심 영업담당 부장은 매출의 6%가 넘는 순이익을 낼 거라고 설명했다. 보통 특약점이 월 매출 2억원을 올린다고 하니, 대략 월 1200만원은 벌 거라고 셈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팔면 팔수록 손해만 보는 구조에서 도통 벗어날 수가 없었다. 농심의 ‘이중 가격 정책’ 때문이었다. 농심은 대형 할인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등과 직접 거래하면서 주문량의 20~25% 정도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대형 할인마트 등은 그만큼 싸게 물건을 팔 수 있었다. 특약점과 거래하는 소매점들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원가보다 싸게 물건을 납품해달라고 요구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소매점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특약점의 적자는 불가피했다.
김씨는 건축업을 하다 접고 남은 돈에 은행대출을 합쳐 1억5000만원을 들여 특약점을 열었지만, 첫달부터 1000만원 넘게 손해를 봤고, 그 뒤로도 평균적으로 매달 300만~400만원씩 적자를 계속 봤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주말도 없이 뛴 결과”였다고 김씨는 말했다.
적자만 이어진다면 지속하기가 어려웠을 테지만, 농심은 판매장려금으로 특약점주들을 길들였다. 판매장려금은 일정 수준의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김씨가 사업을 시작할 때 농심은 매출 목표의 80%를 달성하면 월 매출의 4.2%에 해당하는 판매장려금을 줬다. 매출 목표는 늘 버거웠다. 사업 뒤 첫달 매출 목표는 2억3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월 1억6000만원 정도의 매출 목표가 적당했지만 그것은 김씨의 바람일 뿐이었다.
판매장려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좀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여서 특약점들은 원가보다 싸게 소매점들에 물건을 공급해서라도 목표를 맞췄다. 겉으로 보면 남양유업처럼 강제로 물량을 밀어내는 구조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판매장려금은 되레 ‘물량 밀어내기’로 연결되는 ‘족쇄이자 당근’이었던 것이다.
지난 1월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가 특약점주 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2.7%는 “본사에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물품을 공급받아 마이너스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33명의 특약점주 전원은 본사로부터 특정 상품을 들여놓을 것을 강요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대형마트에게 농심은 을이다. 그곳에서 손해를 본 농심이 특약점주들로부터 손해를 메우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특약점 운영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거래약정서 때문이다. 거래약정서는 ‘갑과 을의 거래가 종료됐을 때, 을이 갑에게 채무를 즉시 변제하지 못할 경우 을은 연 16% 비율로 지연금을 갑에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특약점을 운영하는 조정옥(48)씨는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생긴 적자와 외상으로 물건 들여온 것들을 갚지 못해 대리점주들마다 농심에 1억~2억원씩의 빚을 지고 있다. 당장 대리점을 그만두면 이 돈을 갚아야 해서 그만둘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을 위한 항의도 어렵다. 농심과 특약점주들이 맺은 거래약정서는 농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거래약정서를 보면, ‘을의 고의, 과실, 태만 또는 판매능력 부족으로 시장을 위축·축소시킨 경우’, ‘갑의 영업정책이나 활동에 대하여 방해하는 경우’ 농심이 특약점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돼 있다. 권리금 한푼 건지지 못하고 특약점 운영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특약점주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 이후 농심이 작성하고 있는 새 계약서 역시 ‘갑’과 ‘을’ 대신 ‘공급자’와 ‘구매자’로 표현이 바뀌었을 뿐 특약점 계약 해지와 판매장려금 액수 책정은 농심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지됐고, 채무 지연 이자율도 16% 그대로다.
농심은 대리점주의 자발적 모임인 협의회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진택씨는 밀어내기 관행을 고발하는 글을 인터넷 등에 올렸다가 지난해 6월 특약점 계약을 해지당했고, 이후 50여 특약점주들을 설득해 협의회를 꾸렸다. 김씨는 “현재 200여 대리점주들이 협의회에 가입하려 하고 있지만 농심의 압박으로 못하고 있다. 농심은 남양유업처럼 대리점주 단체를 인정하고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농심 고위관계자는 “국회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면 반영하겠다. (대리점 계약 해지 때 발생하는) 미수금 이자는 실제로 그만큼 받아낸 적이 없다. 특약점이 주문하지도 않은 것을 강제로 납품하지 않는다. 대리점주 단체의 실체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협의회와 대화에 나서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는 9일 국회에서 농심의 ‘물량 밀어내기’ 등 불공정 거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10일 농심 본사를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
출처 : 남양에 이어 농심도 밀어내기... 특약점과 사실상 ‘노예계약’
본사, 대형마트에 20~25% 무상제공... 특약점도 경쟁 위해 저가판매
계약해지땐 채무 즉시변제해야... ‘못 갚을땐 연 16% 이자’ 계약도
[한겨레] 허재현 기자 | 등록 : 2013.06.09 20:36 | 수정 : 2013.06.09 22:42
▲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 회장인 김진택씨가 상품을 운반하고 있다. 김씨는 농심에서 계약해지 당했지만 주변 특약점들의 도움을 얻어 소매점에 계속 납품하면서 특약점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 특약점들은 ‘물량 밀어내기’를 통해 판매장려금을 받기 위해 어차피 손해보며 이른바 ‘삥시장’에 넘겨야 할 물건들을 김씨에게 넘겨준다고 한다. |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택(50)씨는 2010년 9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특약점 사업을 시작했다. 농심 영업담당 부장은 매출의 6%가 넘는 순이익을 낼 거라고 설명했다. 보통 특약점이 월 매출 2억원을 올린다고 하니, 대략 월 1200만원은 벌 거라고 셈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팔면 팔수록 손해만 보는 구조에서 도통 벗어날 수가 없었다. 농심의 ‘이중 가격 정책’ 때문이었다. 농심은 대형 할인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등과 직접 거래하면서 주문량의 20~25% 정도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대형 할인마트 등은 그만큼 싸게 물건을 팔 수 있었다. 특약점과 거래하는 소매점들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원가보다 싸게 물건을 납품해달라고 요구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소매점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특약점의 적자는 불가피했다.
김씨는 건축업을 하다 접고 남은 돈에 은행대출을 합쳐 1억5000만원을 들여 특약점을 열었지만, 첫달부터 1000만원 넘게 손해를 봤고, 그 뒤로도 평균적으로 매달 300만~400만원씩 적자를 계속 봤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주말도 없이 뛴 결과”였다고 김씨는 말했다.
적자만 이어진다면 지속하기가 어려웠을 테지만, 농심은 판매장려금으로 특약점주들을 길들였다. 판매장려금은 일정 수준의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김씨가 사업을 시작할 때 농심은 매출 목표의 80%를 달성하면 월 매출의 4.2%에 해당하는 판매장려금을 줬다. 매출 목표는 늘 버거웠다. 사업 뒤 첫달 매출 목표는 2억3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월 1억6000만원 정도의 매출 목표가 적당했지만 그것은 김씨의 바람일 뿐이었다.
판매장려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좀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여서 특약점들은 원가보다 싸게 소매점들에 물건을 공급해서라도 목표를 맞췄다. 겉으로 보면 남양유업처럼 강제로 물량을 밀어내는 구조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판매장려금은 되레 ‘물량 밀어내기’로 연결되는 ‘족쇄이자 당근’이었던 것이다.
지난 1월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가 특약점주 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2.7%는 “본사에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물품을 공급받아 마이너스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33명의 특약점주 전원은 본사로부터 특정 상품을 들여놓을 것을 강요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대형마트에게 농심은 을이다. 그곳에서 손해를 본 농심이 특약점주들로부터 손해를 메우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특약점 운영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거래약정서 때문이다. 거래약정서는 ‘갑과 을의 거래가 종료됐을 때, 을이 갑에게 채무를 즉시 변제하지 못할 경우 을은 연 16% 비율로 지연금을 갑에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특약점을 운영하는 조정옥(48)씨는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생긴 적자와 외상으로 물건 들여온 것들을 갚지 못해 대리점주들마다 농심에 1억~2억원씩의 빚을 지고 있다. 당장 대리점을 그만두면 이 돈을 갚아야 해서 그만둘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을 위한 항의도 어렵다. 농심과 특약점주들이 맺은 거래약정서는 농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거래약정서를 보면, ‘을의 고의, 과실, 태만 또는 판매능력 부족으로 시장을 위축·축소시킨 경우’, ‘갑의 영업정책이나 활동에 대하여 방해하는 경우’ 농심이 특약점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돼 있다. 권리금 한푼 건지지 못하고 특약점 운영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특약점주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 이후 농심이 작성하고 있는 새 계약서 역시 ‘갑’과 ‘을’ 대신 ‘공급자’와 ‘구매자’로 표현이 바뀌었을 뿐 특약점 계약 해지와 판매장려금 액수 책정은 농심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지됐고, 채무 지연 이자율도 16% 그대로다.
농심은 대리점주의 자발적 모임인 협의회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진택씨는 밀어내기 관행을 고발하는 글을 인터넷 등에 올렸다가 지난해 6월 특약점 계약을 해지당했고, 이후 50여 특약점주들을 설득해 협의회를 꾸렸다. 김씨는 “현재 200여 대리점주들이 협의회에 가입하려 하고 있지만 농심의 압박으로 못하고 있다. 농심은 남양유업처럼 대리점주 단체를 인정하고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농심 고위관계자는 “국회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면 반영하겠다. (대리점 계약 해지 때 발생하는) 미수금 이자는 실제로 그만큼 받아낸 적이 없다. 특약점이 주문하지도 않은 것을 강제로 납품하지 않는다. 대리점주 단체의 실체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협의회와 대화에 나서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는 9일 국회에서 농심의 ‘물량 밀어내기’ 등 불공정 거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10일 농심 본사를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
출처 : 남양에 이어 농심도 밀어내기... 특약점과 사실상 ‘노예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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