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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측근들의 강한 충성심으로 ‘전두환 추징’ 어려웠다

“95년 뇌물죄 수사 때 전두환 국외재산은 손대지 못했다”
당시 수사검사 3명이 보는 ‘전씨 비자금’
“국세청 등 협조 얻어 범정부 추적조사반 구성해야”

[한겨레] 고나무 김경욱 기자 | 등록 : 2013.07.03 22:11 | 수정 : 2013.07.04 14:00


‘5·18 특별수사본부장’ 최환
“비자금 추징, 검찰 전체의 사건
추가 환수 첫째 덕목은 집요함”


▲ ‘5·18 특별수사본부장’ 최환
과거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전직 검사 3명은 지금까지 검찰의 전 전 대통령 은닉 자금에 대한 추징 노력이 미약했다고 지적했다. 국외 재산은 아예 수사하지 못한 점 등 당시 수사의 한계와 함께, 금융실명제법의 처벌 조항 강화 등 제도적 개선점도 지적했다.

1995년 9월~1997년 1월 서울지검장으로 근무하며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죄·뇌물죄 수사를 총지휘한 최환(70)변호사는 지난 2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검찰이 지금까지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집행에서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고 짚었다.


‘내란죄 수사팀’ 검사
“국세청 등 행정기관 협조 얻어
범정부 추적조사반 구성해야”


▲ ‘내란죄 수사팀’ 검사
“검찰청법은 검찰의 기본이다. 검찰청법 4조 1항 4호가 ‘재판 집행 지휘 감독’이다. 재판의 집행이라는 게 다시 말하면 벌금 집행도 있고 추징금 집행도 있는데, 전 전 대통령 추징금은 당연히 들어가는 것 아닌가. 당연히 (서울지검) 검사장의 책임이다. 검사장이 자기 책임 아래서 (전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을) 추징했어야 했다. 그걸 지금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특별팀을 만든 것인데… (특별팀이) 안 나오도록 했어야 했다. 검사장급 이상 되는 간부들은 추징이 전 검찰의 일이라고 보고 고액 추징금 미납자에 대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최 변호사가 지휘한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1995년 12월 13명의 검사로 구성됐다. 채동욱 현 검찰총장은 내란죄 수사팀 소속이었고,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과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던 김용철 광주시교육청 감사관이 비자금 수사팀 실무를 맡았다.


‘비자금 수사팀’ 김용철
“전씨 자녀 재산형성·소득출처
스스로 밝히게 하는 법안 필요”


▲ ‘비자금 수사팀’ 김용철
당시 서울중앙지검 소속으로 내란죄 수사팀에서 일했던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국세청을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적 사유로 익명을 요구한 이 변호사는 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 수사팀은 모든 검찰력을 동원해 행정기관의 협조를 받아서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국세청 같은 곳에도 협조를 구해야 한다. 범정부적으로 추적조사반이 구성돼야 한다. 검찰만 뛰어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는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면서 시효까지 늘었으니 광범위하게 파야 한다. 돈 한푼 없다는 전직 대통령이 지금 사는 것을 보라. 아들들 재산이 몇천억원이라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가 기강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반쪽 금융실명제법’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을 돕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용철 광주시교육청 감사관은 지난달 25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금융실명제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금융실명제법에는 차명계좌를 만든 사람과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고 차명계좌를 개설해준 금융기관에 대한 처벌조항만 있다. 제정 당시(1993년) 정치인 등이 반대해서 그렇게 됐다. 이 때문에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숨기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부동산의 경우는 차명등기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처벌조항이 있는데 금융의 경우 차명계좌가 (경제에 끼치는) 피해가 더 큰데도 처벌조항이 없다.”

19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에는 금융기관의 계좌를 만드는 데 주소나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가 필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사람 명의로 개설한 ‘허무인 계좌’도 가능했다. 김 감사관의 설명을 들어보면, 1995년 당시 금융정보분석원과 같은 기관이 존재하지 않은 탓에 시중은행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의 모든 거래 자료를 제공받아 일일이 분석해야 했다. 전 전 대통령 비자금 관리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주소와 비슷한 주소와 돌림자를 쓴 가명으로 허무인 계좌를 만들어 마치 ‘김대중 비자금’으로 보이게끔 한 정황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김 감사관 등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들의 강한 충성심 때문에 계좌 추적과 추징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 계좌의 개수가 적고 단일 계좌에 담긴 액수는 커 추적이 비교적 쉬웠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측근들이 비자금을 작은 액수로 쪼개 수많은 계좌에 나눠 숨겼다. 비자금 담당자가 자진해서 검찰 수사에 응한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전 전 대통령 비자금 관리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나오지 않은 점도 수사에 걸림돌이었다.

김 감사관은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수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면서도, 이를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 자녀 등에게 재산 형성의 소득 출처를 스스로 밝히도록 하는 법안도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미국에서 마피아인 알 카포네를 수사할 때 스스로 재산 형성을 소명하지 못할 경우 범죄수익으로 판단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 3인의 전직 수사팀 설명을 종합하면, 지금 검찰 추징팀이 1995년 검찰 수사의 한계를 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국외재산 수사가 대표적이다.

1988년 국회 5공비리 청문회 등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국외 은닉재산에 대한 의혹이 여러차례 제기됐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조차 전 전 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 전 오스트레일리아대사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현지에 농장과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을 5공비리 조사 대상으로 제안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기업 지분 소유 의혹도 제기됐다. 외무부는 1988년 전 전 대통령 일가 11명의 인적사항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 건넸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조사 계획도 당시 한국 언론에 여러차례 보도됐다. 그러나 이후 조사 결과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국제 수사 공조체제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탓에 1995년 수사팀은 국외 재산을 아예 수사하지 못했다. 김 감사관은 “그땐 스위스은행이 고객 정보를 정부에 제공하지 않던 시절이다.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54)씨가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외 은행계좌를 소유한 사실이 최근 드러난 데 대한 현 검찰 추징팀의 수사가 주목되는 이유다.


출처 : “95년 뇌물죄 수사 때 전두환 국외재산은 손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