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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외부인으로서 한국에 한마디 하겠다"

"외부인으로서 한국에 한마디 하겠다"
[인터뷰] 홀렁 베이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수석부대표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도균, 이주영 | 13.07.07 11:17 | 최종 업데이트 13.07.07 11:17


▲ 국제민주법률가협회 홀렁 베이(93세) 수석부회장. ⓒ 권우성

"외부인으로서 한 마디 하겠다. 자유는 유엔 인권헌장 따라 보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다. 만약 국가가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를 둘러싸고 '독재'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이 한국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를 두고 홀렁 베이(Roland Weyl)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수석부대표가 던진 일침이다. 프랑스 출신의 법률가인 그는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면서도,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더 큰 기준에 따라 한국 사정에 쓴 소리를 남겼다.

그의 충고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국가정보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들을 관통한다. 지난해 국정원은 북한 찬양 글을 트위터에서 리트위트(RT)한 박정근(26)씨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여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이른바 '댓글 공작'을 펼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질타도 쏟아졌다. 현재 국정원은 대선과 정치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지만, 이같은 행위가 '국가 보안을 위한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므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자유 보장되지 않으면 사상·사고 빈곤 야기... 진보 이룰 수 없어"

이와 관련해 베이 부대표는 "표현의 자유부터 시작해 주거 침입·개인정보 수색·구속 등으로부터의 자유도 국가에서 존중해야 한다, 다양한 정보를 누릴 자유 등도 마찬가지"라며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사상과 사고의 빈곤을 야기해 문명의 진보를 이룰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결코 국가에 이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베이 부대표는 프랑스파리변호사협회 원로로, 프랑스-알제리 전쟁 당시 알제리 시민들의 권익보호에 힘쓴 평화활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부대표로 있는 국제민주법률가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mocratic Lawyers)는 유엔 산하 기구로, 1946년 파시즘에 반대해 창립한 비정부기구이자 세계 90개국의 법률가단체와 법률가들이 활동하는 국제 평화·인권단체이다.

그가 한국에 방문한 이유 역시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을 맞아 이곳을 찾은 베이 부대표는 "정전협정에 명시된 '평화적 해결'에 따라 남북이 직접 대화에 나서 평화협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의 초청으로 오는 8일까지 한국에 머물 예정인 베이 부대표는 촛불문화제 방문과 더불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노동권과 경제권 보호를 유엔헌장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그는 쌍용차 해고 사태 해법과 관련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정치권은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실현 가능하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국가가 일자리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비준한 국가들은 그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이 직접 국가에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6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베이 수석부대표와의 일문일답 내용.


"정전협정에서 '평화적 해결' 명시... 남북이 직접 분단 상황 해결해야"

▲ 국제민주법률가협회 홀렁 베이(93세) 수석부회장. ⓒ 권우성

- 국제민주법률가협회는 어떤 단체이며 그동안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가.

"협회는 1946년 유엔과 함께 창립했고, 저는 협회 창립총회 참여자 중 마지막 생존자다. 전쟁과 파시즘이 다시는 지구상에 도래하지 않도록 하자는 목표 하에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전범을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뤼렌베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전승국가(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의 법률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협회는 유엔의 동반자와도 같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 역시 유엔헌장의 큰 원칙인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 식민지 국가 해방운동도 적극 지지했다. 최근에는 인권헌장 관련 컨퍼런스도 열어왔다."

- 한국 국가보안법이 올해로 65년째를 맞이한다. 이 법은 그동안 인권과 민주주의, 민족통일에 역행된다는 지적을 받았왔다. 국제사회에서도 전면적인 개정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법의 폐지를 놓고 그동안 한국 사회는 극심한 논란을 겪어왔다.

"외부인으로서 한 마디 하자면, 국가보안법은 한국을 둘러싼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추긴다. 매우 유감이다. 자유는 유엔 인권헌장 따라 보편적으로 존중받아야할 가치다. 만약 국가가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를 둘러싸고 '독재'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부터 시작해 주거 침입·개인정보 수색·구속 등으로부터의 자유도 국가에서 존중해야 한다. 무고한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 자유, 정의를 지킬 자유, 다양한 정보를 누릴 자유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자유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상과 사고의 빈곤을 야기해 문명의 진보를 이룰 수 없다."

- 한국전쟁은 분쟁의 일방이 유엔군의 이름을 내걸고 전쟁을 치른 최초의 전쟁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유엔헌장 27조 3항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만장일치해야 안건 승인이 가능했다. 한국전쟁 참전 여부와 관련해 당시 소련은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안건 승인이 불투명했다. 그러자 미국은 참전을 정당화시키고자 국제헌법재판소를 이용해 '거부권'이라는 걸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소련은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보고 나머지 4개국의 의사만 반영해 참전을 승인한 것이다. 제가 당시 안보리 결의 과정에 불법성이 있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이다. 현재의 남북한 정세에서 이 정전협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유엔은 일종의 '경찰'로서 한국전쟁에 개입했지, 전쟁의 당사자는 아니었다. 경찰이 개입한 뒤 철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평화가 만들어져야 상식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적으로도 문제 있다. 유엔헌장 2조 4항 보면, 국제관계에서 무력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을 금지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유엔군 행위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이와 관련해 정전협정에 의미 있는 내용이 있다. 정전협정은 유엔헌장을 존중하며, 그 내용을 구현하도록 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남북정부가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해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을 협의할 것'을 밝히고 있다. 이게 핵심이다. 남북이 직접 분단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같은 정전협정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

- 베이 부대표는 그동안 '주한미군의 존재나 한미군사훈련은 유엔헌장에 위배되는 불법'이라고 지적해왔다.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마치 본인들이 전 세계 경찰인 것처럼 행동한다. 특정 나라에 대해 권한을 허용하거나 제재하는 등 유엔헌장과 배치되는 행동들을 일삼아왔다. 국제적 사안을 결정하는 건 국제사회다. 하나의 강대국이 마음대로 정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문제 뿐만 아니다. 과연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스라엘 손을 들어줄 권리가 있는지 묻고 싶다."


"시민 지키는 국가, 금융세력 도구로 전락... 시민들은 국가 부채 갚기 바빠"

▲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정치권은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실현이 가능하다. 즉,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 홀렁 베이(93세) 수석부회장. ⓒ 권우성

- 노동권과 경제권을 유엔헌장 조항에 넣어야한다고 주장해오기도 했다.

"국가가 부채를 갚기 위해 시민을 희생시키는 게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국가는 시민들을 지키면서 이들의 뜻을 실현시키는 도구인데, 오히려 최근에는 금융세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더 나아가 국가들은 시민을 착취하며 국가의 빚을 시민 보고 갚으라며 긴축정책 등을 실시한다.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상품화하는 것도 문제다. 의약품이나 의식주 등을 국가가 아닌 기업에서 맡고 있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시민들의 권리 실현해야하는 국제법 조차 경제권을 명시 안 하고 있다. 유엔헌장이 체결되는 당시 국제경제 질서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이 체제는 보편적으로 평등하지 않았다.

따라서 '-178', G8을 뺀 나머지 178개국에서 유엔 설립 취지대로 국제사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새로운 경제적 질서를 논의해봐야 한다.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 질서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유엔헌장에서 노동권과 경제권을 보장해야하는 것이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만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쌍용차 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쌍용차 사태는) 프랑스가 직면한 문제와 비슷하다. 최근 프랑스 실업률이 사상 최대라고 한다. 매일 프랑스의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임금이 낮은 해외로 기업을 이전한다. '일자리 유연성'이라는 허황된 말이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정치권은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실현이 가능하다. 즉,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일자리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산업재해 등도 보장해주는 게 당연하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가 노동권 보호를 위해 마련한 협약들에 비준한 국가들이 있다. 비준 국가들은 협약을 이행해야 한다. 만약 비준 국가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해당 나라의 시민들은 협약을 지키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08년 노동자 무차별 해고를 금지하는 판결을 성사시켰다."

-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에 한 마디 해달라.

"국가 운영은 시민의 요구에 따라 재편성돼야 한다. 특히 유엔헌장이나 국제법의 나타난 시민의 권리가 실현돼야 한다. 그러한 권한을 누릴 시민들이 직접 나서 세계적 유산인 이 법들을 지키고, 그 내용의 실현을 위해 힘써야 한다."


출처 :"외부인으로서 한국에 한마디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