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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박정희 ‘원뿌리’… 기시 노부스케

박정희 ‘원뿌리’… 기시 노부스케
‘A급 전범’과 ‘군사반란’는 절친…
[진실의길] 耽讀 | 등록 : 2013-03-18 13:50:50 | 최종 : 2013-03-18 15:04:54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6장 24절)

‘최후의 만찬’때 예수님이 자신을 팔 가룟 유다를 두고 한 말이다. 태어나지 아니했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말만큼 그 사람에 대한 모욕은 없을 것이다. 기독인들에게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판 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가룟 유다가 스승 예수를 팔지 않았다면,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또 다른 가룟유다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가룟유다에게 빚진 자다.


‘A급 전범’과 ‘군사반란’는 절친…

지난 해 12월 19일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다. 외국 언론은 그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했다. 며칠 앞서 일본 국민들도 새 총리를 뽑았다. 우리 언론들은 그를 “‘A급 전범‘ 전총리 외손자”,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 “독도 도발 전문가” 따위로 표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박근혜이고, 일본 총리는 아베 신조다.

흥미로운 것은 아베 신조가 지난 달 22일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의 할아버지와 박정희는 절친(best friend)이었습니다. 또 박정희는 일본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또 “한국은 일본의 가장 중요한 이웃이다. 박근혜 당선인도 두번이나 만나 식사를 같이했다”는 말도 했다. 조부와 아버지만 절친이 아니라 손자와 딸도 절친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박근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대한민국 대통령 아버지와 일본 총리 외조부가 절친인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한일 우호관계가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악영향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아베가 말한 박정희와 절친이었던 외조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안다면.

아베 신조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기시 노부스케きし のぶすけ,1896년 11월 13일~1987년 8월 7일)는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에서 최고위직인 국무원 총리을 지냈다. 일본 패망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복역했지만 다른 전범처럼 처형당하지 않고, 기사회생해 1955년 자유민주당 간사장, 1956년 외무상, 1957년 2월에 총리가 됐다.

▲ 1961년 11월11일 일본 총리 관저 만찬회에서 이케다 하야토 총리와 담소하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가운데). 왼쪽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집

‘만주국’하면 떠오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있다. 바로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은 결심”이라며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황군장교 출신 박정희이다. 그럼 어떻게 박정희와 기시는 ‘절친’이 됐을까? 1961년 5월 16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는 그해 11월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를 기시는 “우리 젊은 육군 군인들이 군사혁명에 나선 것은 구국의 일념에 불탔기 때문인데, 그때 일본 메이지유신 지사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일념”이라며 “메이지 유신 지산”에 비유한 기시 말에 박정희는 얼마나 감격했겠는가?

박정희도 일본의 만주 인맥과 아카사카의 요정에서 만나 유창한 일본어로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며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라고 밝혀 동석한 일본 정객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 2012.03.09 <한겨레> 박정희 취임식서 일본 특사 “아들 경사 보러왔다”

박정희는 이후 한일협정체결에도 큰 도움을 받았고, 1971년 일등수교 훈장을 수여했다. 박정희 의식을 지배한 것은 ‘일본’ 그 자체였고, 자게 몸에 배인 일본제국주의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이식시키려고 했다.


기시와 박정희…‘귀태’ (태어나서는 안될)

그러므로 기시와 박정희 두 사람은 절친일지 몰라도, “태어나지 말”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아니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1972년 한국을 방문해 “나는 해방되었다”고 선언하고, 일본 이름 ‘나가노 데츠오(永野鐵男)’를 버리고 한국이름으로 살아가는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와 <한국의 디지털 데모크라시>를 지은 현무암 훗카이도 대학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연구원 준교수가 그들이다.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저자들은 ‘제국주의의 귀태(鬼胎)’라고 정의했다. 귀태란 ‘태어나지 말아야’한다는 의미다 ⓒ 책과 함께
두 사람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박정희와 기시를 ‘제국주의의 귀태(鬼胎)’에 자주 비유한다. 귀태란 관동군의 독주에서 패전에 이르는 시기를 일본역사의 “비연속적 시대”라고 규정했던 작가 시바 료타로의 조어(造語)로 ‘융모막 조직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이상증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의학용어를 ‘태어나서는 안될’ 것이라는 의미로 썼다.

책 부제는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이다. 즉 두 사람은 1961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만주국이 그 뿌리는 말이다.

강 교수는 “무엇보다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두 인물을 통해 만주국과 전후의 일본 그리고 해방 후 한국의 연속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정희와 노부스케. 이 둘의 인연은 일본 제국주의가 낳은 기형아, 만주국에서 시작됐다”면서 “만주국의 통제경제 실험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기시 노부스케의 아이디어는 훗날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재현됐다”고 적었다.

“박정희에게 ‘만주체험’은 분명 운명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만주인맥’을 중심으로하는 ‘친일파’가 훗날 ‘독재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아성이 된 데 그치지 않는다. 만주제국에서 시행한 통제경제 ‘실험’은 한국의 개발 독재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추진했던 병영국가적인 국력배양과 총력안보라는 ‘한국적 민주주의’에는 만주제국의 유산이 고동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유산을 낳은 주인공이야 말로 ‘만주국 산업 5개년계획’ 실시의 중심으로 활약한 기스 노부스케였다.”

기시가 만주국에서 실행했던 정책들이 박정희 의식 구조에 이식되었다는 말이다. 박정희가 독재를 했지만,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발전’이다. 박정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기시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둘은 ‘뜻밖의 행운’이었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없어야 했던 불행’

어긋날 수밖에 없다. 만주국은 괴로국이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둘은 만날 수 없는,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없는 정치체다. 하지만 박정희는 기시의 정치이념과 정책을 민주공화국에서 이식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체제를 병영국가라고 규정했었다. 박정희가 민주공화국이 아닌 병영국가로 대한민국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을 강상중과 현무암이 지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알듯이 박정희는 ‘빨갱이’이었다가 전향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시 역시 A 급 전범이었다. 지은이들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 및 냉전이 기시를 유폐의 나날에서 해방시켜준 절호의 기회였던 것처럼 박정희에게 냉전과 분단은 ‘친일파 군인’이라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깨끗하게 지워 줄 ‘뜻밖의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A급전범 기시는 일본국 총리, 황군장교였던 박정희는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기시와 박정희에게는 ‘뜻밖의 행운’이겠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없어야 했던 불행’인 셈이다. 그러므로 기시와 박정희는 자연스럽게 ‘귀태’로 이어진다.

기시는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농업이다. 농촌이 확고하게 서지 않고는 제대로 될 리 없다”고 박정희에게 말한다. 박정희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는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인 새마을운동 원뿌리는 기시에게 있다. 박근혜가 제2새마을운동을 얘기하고 있고, 기시 외손자는 절친이라고 외친다. 참 묘한 일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추진한 국민교육헌장, 애국조회, 군사교육, 재건체조, 학생웅변대회 따위가 다 기시의 만주국에 그 뿌리다.


‘너 뿌리를 알라!’

“‘군인’으로서 박정희와 ‘정치가’로서 기시 노부스케의 출발을 지켜보았던 만주제국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 한국과 일본의 깊숙한 곳에 말뚝처럼 박혀 있다. 거기에 적혀 있을 법한 말 ‘너의 뿌리를 알라!’는 말은 지금도 묵직한 물음으로 우리를 짓누를고 있다.”

그리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북한 김일성까지 포함해, 아주 재미있는 진단을 한 적이 있다.

“기시가 만주국을 사실상 설계했고,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으로 만주군에서 복무했으며, 김일성은 일제와 만주국 괴뢰정권을 상대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점을 들어 동아시아에 만주국 시절의 대립구도가 부활했다.” - 2012.12.21 <한겨레> 신유신의 밤, 그대 곁엔 누가 있는가


출처 :박정희 ‘원뿌리’… 기시 노부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