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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권은희, 대한민국 경찰

권은희, 대한민국 경찰
“어떤 계급에 있건 수사권 독립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한겨레] 허재현 이경미 기자 | 등록 : 2013.08.30 20:23 | 수정 : 2013.08.31 11:38


[토요판] 커버스토리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방해 폭로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을 만나다


▲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경찰서 1층 로비에서 활짝 웃고 있다. 권은희 과장은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던 지난해 12월 자신이 직접 담당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와 관련한 소신발언으로 주목받고 있다. 권 과장 뒤로 경찰의 사명을 함축한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다. 취재 허재현 최성진 기자,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 내부고발자들의 용기 있는 호루라기 소리가 세상을 정의롭게 바꿀 때가 많습니다. 2012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이 호루라기를 불었다면 2013년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내부 고발자’와 ‘누설자’는 구분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저 뭉뚱그려 배신자로 취급합니다. 권은희 과장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을 만나 우리에게 권 과장은 어떤 의미인지 살펴봤습니다.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을 다시 만난 것은 30일 오전이었다. 이날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외압(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에 들어서는 권 과장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당당했다. 증인석에 앉은 권 과장이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해 12월12일 이광석 수서서 서장과 수사팀 사무실에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김 전 청장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보고하자, 서장님도 ‘이날 오전 (김 전 청장에게) 영장 신청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더니 그러라고 했다가, 오후엔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설득이 안 된다. 화를 내면서 영장 신청을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태도가 (12월12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달랐다는 증언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다. 김 전 서울청장 쪽은 그동안 “(자신은) 압수수색에 동의했지만 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영장신청 재검토 의견을 전달해왔다”고 주장했다. 수사에 직접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를 피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권 과장의 주장대로라면, 김 전 서울청장은 적어도 12월12일 오후부터 직접 압력을 넣은 당사자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두번째 공판이 열린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들어서고 있다.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는 권 과장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들은 꽃을 건넸다. 류우종 기자


과잉수사·정치적 의심 모두 고려했다

권 과장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장에서도 대선 직전 경찰의 무리한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이었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 전 서울청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똑 부러지는 지적이었다. 청문회가 끝난 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증인석으로 다가가 “용기 있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그를 격려했다. 권 과장은 대답 대신 목례만 간단히 한 뒤 국회를 떠났다. 민주당·새누리당 의원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권은희 수사과장의 소신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권 과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가 어떻게 방해받았는지 가감없이 폭로하고 있다. 수사 책임자가 윗선의 압력으로 수사에 지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은 경찰 역사상 처음이다. 많은 시민은 ‘국민의 경찰청장은 권은희다’며 치켜세웠다.

30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태도가
오전과 오후에 각각 달랐다는
증언을 하는 권은희 과장은
청문회장에서처럼 당당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가
어떻게 방해받았는지 폭로한
그의 소신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시민들은 꽃을 집무실에 보냈고
동료 경찰들의 격려도 쇄도했다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권 과장의 근무지를 네차례 찾았다. 국정원 수사 과정과 관련한 인터뷰는 한사코 거절했다. “인터뷰 거절 이유가 평범한 경찰로서 남기를 원하기 때문인가”라고 묻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문회 다녀오고 업무에 복귀하니까 팀장들이 결재서류를 들고 계속 찾아오는 거예요. 역시 저는 여기(경찰서 수사과장실)에 있어야 할 사람이더라고요.” 권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경찰로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제가 7년째 수사과장 하면서 느낀 건 업무가 공정하게 진행되기 위해선 일선 경찰들의 수사권 독립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경찰조직 외부로부터의 독립, 조직 내부로부터의 독립 모두입니다. 제가 어떤 계급에 있건, 수사권 독립의 정착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경찰 권은희’가 국민 앞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8일 앞둔 2012년 12월11일 밤이었다. 이날 온 국민의 시선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 앞으로 쏠렸다. 오피스텔 건물 607호실 앞 폭 1.5m의 좁은 복도는 몰려온 취재진과 민주당 관계자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복도를 가득 채운 열기는 사람들의 옷을 땀으로 적셨다.

뒤죽박죽 섞인 인파 사이에서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나타났다. 607호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경찰이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그제야 문이 빼꼼히 열렸지만 방주인은 권 과장을 힐끗 바라본 뒤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607호 주인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29)씨였다.

민주당 관계자와 시민들이 고함을 질렀다. “왜 당장 문을 따고 들어가지 않는 거요”, “지금 국정원 직원이 증거 인멸할 시간 주려는 거요.” 권 과장은 설명했다. “김하영씨가 현행범으로 걸린 것도 아닙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없어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강제로 압수할 수 없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압수수색 영장 없이 범죄 증거물품을 압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권 과장은 선관위에 한번 더 강제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권 과장의 요청을 거절하고 철수했다. 권 과장도 이날은 더이상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김씨는 오피스텔 안에서 그가 써왔던 댓글을 지우느라 분주했다.

밤 11시께 김씨의 가족이 오피스텔 앞으로 찾아왔다. 권 과장에게 항의했다. “경찰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권 과장은 오피스텔 건물 바깥으로 김씨 가족을 데리고 나갔다. “가족께서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중대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경찰로서는 신고가 들어온 이상 수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권 과장은 이날 국정원 사건 이해 당사자 양쪽으로부터 비판받았다. 한쪽에서는 신속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정원 직원의 인권침해를 방조했다고 그를 몰아세웠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경찰관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은 “그날 상황은 경찰관 직무직행법(6조1항·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이 보장하는 즉시 강제 권한으로 압수수색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강행했다면 과잉수사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오피스텔 앞으로 몰려든 시민들을 내쫓았다면 괜한 정치적 의심을 샀을 것이다. 권 과장의 수사 지휘는 여러 상황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치성향 업무에 개입하는 모습 본 적 없다”

권은희 과장의 이름은 그로부터 넉 달 뒤인 4월 다시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대선 직전 이뤄진 경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이면에 숨겨졌던 이야기에 대해 그가 입을 연 것이 계기였다. 대선 직전 김하영씨 오피스텔 현장을 지휘하던 권 과장에 대해 그랬듯, 정치권은 이번에도 자신들 입맛대로 권 과장을 활용하거나 공격했다.

문희상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권 과장을 가리켜 “광주의 딸”이라는 표현을 썼다.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8월19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에서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 경찰이냐”라며 그를 추궁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한 사람의 순수한 직무수행을 정치적인 의도로 오해하게 만들어 버렸다. 두 정당 모두 나쁜 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시민들은 권 과장에게 많은 격려와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19일 청문회에서 경찰 지휘부의 수사 축소·외압 사실을 당당히 밝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본 많은 국민은 그를 ‘청문회 스타’로 꼽았다. 청문회 이후 권 과장의 송파경찰서 집무실에는 시민들이 보내온 각종 꽃으로 채워지고 있다. 21일 오후 송파경찰서에서 만난 권 과장은 꽃과 함께 웃었다. “보내주신 분들께 고맙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네요.”

국회 청문회 출석 요청을 받고 나서 권 과장은 일주일간 고민했다. ‘앞으로 공무원으로서 잘 버틸 수 있을까’ 그는 걱정했다. 권 과장은 청문회 출석 이튿날인 20일 병가를 냈다. 그런 그가 하루 만에 회복해 업무에 복귀한 것은 시민들의 격려를 눈으로 확인한 때문인 듯했다. 이날 동료 경찰들의 격려 문자메시지도 계속 도착했다.

권 수사과장은 1997년 전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4년 청주에서 1년간 유일한 여성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5년 그는 경찰 특별채용 시험에 응시해 경정(경찰서 과장급)으로 채용됐다. 이후 경기도 용인경찰서, 서울 서초경찰서, 서울 수서경찰서 등을 거쳐 올해 2월부터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중이다.

권 과장이 변호사 대신 경찰의 길을 택한 데에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이 작용했다. 변호사로서 모 형사 사건의 피의자를 변호하게 됐을 때 중립적 자세로 사건의 실체에만 관심을 두는 한 경찰의 모습을 보았다. 권 과장은 “기록이 아닌 현장에서 사건의 실체를 좇는 경찰을 보며 경찰이라는 직업의 가치를 느꼈다”고 말했다.

지금은 권 과장이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 있지만 경찰로서 그는 지금껏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 권 과장과 일했던 경찰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정치 성향을 업무에 개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권 과장과 사법연수원 33기 동기인 한 변호사는 “사회 의식을 적극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똑똑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권 과장의 꼼꼼한 수사 지시도 조직의 신뢰를 받는 이유다. 그와 일선 경찰서 경제팀에서 1년간 일했던 경감급(수사팀장급)의 한 경찰은 “각 수사팀이 제출하는 수사기록을 매일 검토했다. 가끔 팀장들이 과장과 생각이 다르면 수사 재지휘시 판례를 찾아 설득했다”고 말했다.


‘변절자, 소영웅주의자’ 내부 비난

권 과장을 바라보는 경찰 조직의 속내는 복잡하다.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경정급 한 관계자는 “총경 이상은 불편해하고 경정 이하는 격려하는 편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총경 이상 경찰들 중 권 과장을 “변절자”, “소영웅주의자” 등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총경은 주로 경찰서장이고 경정은 주로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 수사과장을 맡는다. 권 과장을 비판하는 경찰들은 대체로 청문회장에서 김 전 서울청장에 대해 너무 확신적인 어조로 대선 개입 의도를 비판한 점을 문제 삼는다. 또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외부에 너무 많이 얘기했다는 점도 시빗거리다.

경무관급의 한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서울청장의 대선 개입 의도에 대한 정황은 있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어 재판 결과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권 과장이 발언에 좀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이 6월 김용판 전 서울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국민 사과글을 올린 황정인 강남서 수사과장은 “김 전 청장이 재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권 과장이 부당한 개입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권 과장을 옹호했다. 권 과장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 내용 자체가 김 전 서울청장의 선거 개입 의도의 증거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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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은희 수사과장 집무실 바닥 한켠에 장미꽃이 가득 담긴 상자가 놓여 있다. 시민들은 권 과장을 응원하며 장미꽃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거울에 비친 여성은 권 과장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2001년 사법시험 합격하고
‘현장에 답이 있다’ 신념으로
2005년 경찰 특별채용 응시
“공정한 업무 위해선 경찰 조직
내외부로부터의 독립 필요하다”

총경 이상 불편해하고
경정 이하 격려하는 내부 분위기
승진 탈락 우려도 나오지만
“올해 안되면 내년에 하면 되죠”
그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김 전 서울청장의 기소 여부와 별도로, 그가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막은 것은 경찰 범죄수사규칙을 어긴 것이다. 범죄수사규칙 15조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 검증에 관한 사항’에 대해 수사지휘를 할 경우에는 서면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경찰 수뇌부가 권 과장을 대놓고 비판할 수 없는 또다른 이유다.

그럼에도 권 과장이 왜 조직 내부가 아닌 언론에 부당한 압력을 폭로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권 과장은 2월 초 송파경찰서로 발령받은 뒤 김 전 서울청장 앞에서 업무보고를 할 기회가 있었다. 권 과장은 사실 여기서 김 전 서울청장에게 항의하려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권 과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권 과장은 김 전 서울청장의 일련의 행위들이 결코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범죄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서피코 효과’ 만들 수는 없나

이러한 권 과장의 행동 때문에 그를 승진에서 탈락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찰 조직 내에서 ‘계급은 인격’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승진은 경찰 인생의 목숨과 같다. 권 과장은 올해 경정 특채 근무 8년째여서 총경 승진을 앞두고 있다. 보통 경정 승진 뒤 7~11년 사이 총경 승진 심사 대상이 된다. 총경 심사 경쟁률은 보통 10 대 1이라 치열하다.

권 과장은 이에 대해 “승진 신경 안 써요. 올해 승진 안 되면 내년에 하면 되죠, 뭐”라며 태연하게 웃었다. 승진 심사는 12월에 있다. ‘경찰 내부에서 적잖이 당신을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전하자 다소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신경 쓸 사안들이 아니에요.” 권 과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와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냥 침묵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경찰 내부의 보신주의는 심각하다. 권 과장은 그런 쪽에 서지 않는다.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그를 미국 경찰 ‘서피코’에 비유했다. 서피코는 1960년대 뉴욕 경찰 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동료 경찰들을 고발한 문제적 경찰이다. 서피코의 고발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자 미 경찰 사회에 동료 경찰의 부패를 감싸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는 교육이 시작됐다. “권은희 과장을 통해 경찰 조직이 ‘서피코 효과’를 만들어 내어야 해요. 경찰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도 권 과장 같은 사람은 꼭 필요합니다.”

퇴직 경찰 모임인 무궁화클럽의 양동열 운영위원은 “경찰 조직의 상위는 국가이다. 국가를 위해서 공무원도 내부고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권 과장은 정말 큰일을 해낸 것이다”고 평가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경찰이 정말 수사권 독립을 바란다면 권 과장을 홍보대사로 활용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1년 1월12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린 ‘경찰 지휘부 회의’에서 “상관의 불법·부당한 업무 지시를 막기 위해 ‘내부고발자 특진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 과장에게 이를 적용하겠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치안감급의 한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권 과장에 대한 징계·승진 어느 것도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권 과장을 국민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경찰로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표 전 교수는 “권 과장은 경찰관으로서 소신과 양심에 따라 할 일을 한 것이다. 여기에 지나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영웅시할 경우 순수성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9일 오후 권 과장을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도 그는 일상적 업무를 보느라 분주했다. 송파경찰서 1층 로비에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다. “불의를 증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의를 사랑하지 못한다.” 전임 경찰서장이 걸어놓은 현판이라고 했다. 권 과장은 “송파경찰서 부임 첫날 이 문구를 보고 ‘아, 멋있다’고 생각했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경찰서 문앞에서 기자를 배웅한 뒤 그는 다시 수사과장실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출처 : 권은희, 대한민국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