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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야반도주’ 기륭전자, 회장 집 찾아갔더니…“경찰에 신고”

야반도주기륭전자, 회장 집 찾아갔더니…“경찰에 신고”
[현장] 비어있는 사무실서 철야농성 기륭전자 노조원들
"8년 6개월 만의 복직…회사를 믿었는데"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 입력 : 2014-01-02 22:37:24 | 노출 : 2014.01.03 09:12:15


전기가 끊긴 사무실은 어두웠다. 또 추웠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인 난로만이 근근이 사무실에 훈기를 주고 있었다. 난로 위에서 끓인 물로 사람들은 생강차를 마셨다. 바닥에는 냉기를 막기 위해 돗자리를 깔았다. 한쪽 구석에 누군가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며칠 전까지 출근을 하던 사무실이었다. 다만 회사가 일을 주지 않아 출근 후 할 일은 없었다. 회사는 출근카드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출근카드 대신 출퇴근 기록을 사진으로 남겼다. 외출이나 휴가도 총무부장에게 보고한 뒤 사진으로 기록했다. 총무부장은 당황스러워 하며 "알아서들 하시라"고 했다.

그래도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들은 지난 8개월 동안 신대방동 태웅빌딩 8층으로 출근했다. 8년 6개월을 기다린 복직이었다. 지난 2010년 11월, 회장은 국회에서 연 노사합의 조인식에서 "오늘 합의로 기륭전자는 탄탄대로에 서게 됐다"며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 10명의 정규직 고용을 약속했다. 복직투쟁 6년만이었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최 회장은 즐거운 일터를 만들겠다고 했다"고도 말했다.

▲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이 기륭전자가 있던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태웅빌딩 7층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그후 회사가 2년 6개월을 유예해 실제 복직은 2013년 5월에야 이루어졌다. 그리고 8개월 동안 일 없는 '업무대기' 상태가 지속됐다. "당장 복직을 해야했지만 사측의 요구로 유예기간을 인정했고 상당히 양보했다. 합의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양보하지 말껄"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이 말했다.

회사를 믿고 회장을 믿었지만 회사는 양보의 대가로 '야반도주'를 선물했다. 조합원들의 말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30일 기륭전자 사무실에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들이닥쳐 집기를 옮기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 출근했을 땐 이미 짐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어디로 사무실이 이전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한 조합원이 2일 오전 길에서 회사 총무부장을 만난 것. "총무부장이 순간 얼음이 돼서 길을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미행해서 본사를 점거할까봐"

이사 간 곳을 모르니 기존 사무실에서라도 농성을 시작했다.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은 "어디로 가는지 이야기를 안 해주는데 이곳을 빼고 나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다. 이렇게까지 사태를 만든 건 기륭전자한테 책임이 있다. 들려나가면 들려나가는 거지만 그 전까지는 우리발로 나갈 수 없다. 어디로 이사 갔는지 밝혀지기 전까지는 건물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10명 조합원이 전부 사무실에서 철야농성을 하지는 못하고 3명씩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킨다. 적어도 세 명은 있어야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칠판에는 철야농성 일정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다시 시작되는 투쟁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한 조합원은 깊은 한숨만 쉬었다.

▲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태웅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최동열 회장의 집도 찾아갔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대신 경찰이 왔다. 김 전 분회장은 "벨을 눌러도 답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경찰이 왔는데 최동열 회장이 신고를 했다고 했다. 어떤 목적으로 찾아왔는지 묻더라. 우리가 경찰에게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보고하고 집에 찾아가야 하냐"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배신감은 컸다. 김 전 분회장은 "1895일을 싸우면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한 마디 통보도 없었다. 그래도 가족과 보내고 싶은 연말에 조합원 전체가 철야농성을 했다. 참담하다"고 말했다. 유 분회장은 "노조는 최선을 다했다. 회사가 어려우면 했던 약속을 안 지켜도 되는건지 묻고싶다. 회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안 지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태웅빌딩에는 기륭전자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1층 안내표지판에 붙어있던 ‘7층 기륭전자’ 스티커는 떼어지고 하얀 흔적만 남았다. 7층을 올라가도 마찬가지였다. 금속으로 된 간판도 떼어졌다. “관리비가 체납됐다”는 경고장만 회사 입구에 붙어있었다. 조합원들은 “5억의 이익을 내는 회사가 5000만원이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기륭전자측은 한겨레에 "회사 규모가 축소돼 예전 기륭사옥 옆 ㅅ오피스로 이전했다. (노조원들이 회사를)불법 점거하려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우리 회사 노조원들이 아니다. 지금은 회사가 너무 어렵다"고 해명했다. 미디어오늘이 최 회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출처 : ‘야반도주’ 기륭전자, 회장 집 찾아갔더니…“경찰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