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언론과 종편

요즘 기자들이 하는 '짓'

신상털기, 과거캐기, 물어뜯기... 요즘 기자들이 하는 '짓'
[게릴라칼럼] 직접 쓰는 기자조차도 부끄럽게 만든 '어뷰징 기사'의 늪
[오마이뉴스] 하성태 | 14.03.11 17:33 | 최종 업데이트 14.03.11 17:33


'엘렌 페이지', '김연아', '박은지'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할리우드 여배우, 전세계적인 피겨 선수, 고인이 된 노동당 부대표라는 세 사람의 머나먼 간극을 채우는 것은 이른바 어뷰징(Abusing·남용) 기사의 희생자들이라는 점이다. 이 셋 중 수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엔 와 본적도 없는 할리우드 스타가, 선수 생활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려는 김연아 선수가, 고된 노동운동을 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정당인이 인터넷 기사의 폭탄에 기대어 취할 이름값이 있을 리 없다. 그 수혜는 값싼, 그러나 돈이 되는 열매는 오로지 '기사 폭탄'을 포털에 전송해 클릭 장사에 매진하는 일부 혹은 다수 언론들의 몫이다.


김연아, 박은지, 엘렌 페이지의 공통점

▲ 할리우드 여배우의 커밍아웃에 '멘탈붕괴'된 동아. ⓒ 네이버 캡처

지난 달 14일 커밍아웃을 한 여배우 엘렌 페이지에 대한 관련 기사는 주말 내내 포털을 지배했다. '충격', '멘탈붕괴', '커밍아웃' 등의 선정성 다분한 단어들이 기사 제목을 장악했다. <동아> <조선>을 위시한 언론사 닷컴은 만 하루도 안 돼 수십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여배우의 동성애 커밍아웃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낚시'를 하기에 최적화된 소재였다. 기자 이름도, 취재 내용도 없는 단신 기사들이 제목만 바뀐 채 변신술을 부렸다.

지난 6일 이후,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인 '김연아 열애설'과 관련해서는 수 천 건이 넘는 기사가 양산됐다. 이 어뷰징 약탈전은 김연아 선수의 단순한 이성 교제 뿐만 아니라 상대인 김원중 선수의 신상털기, 과거 캐기 등 악의적이고 비생산적인 기사들로 이어졌다.

심지어, 원천소스의 제공자인 '파파라치 저널리즘' 디스패치는 김연아 측으로부터 고소 소식이 들리자 10일 내놓은 해명글에서 "○○일보요? 200개 넘는 기사를 생산했습니다. ○○닷컴은 150개, ○○경제 110개…. 그렇게 3일 동안 3000여 개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연아 선수 사생활 캐기의 책임을 '어뷰징' 기사들을 쏟아내며 후속보도로 장사에 나선 여타 매체들에게 돌린 것이다.

정점은 지난 주말 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사망 소식이 찍었다. SBS <짝> 출연자 자살 사건(조선닷컴은 하루에만 120여개의 기사를 쏟아냈다)과 '김연아 열애설' 이후 먹잇감을 찾던 매체들은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 그와 관련된 기사 한 줄 써본 적 없을 대다수 기자들이 '자살', '충격', '아들'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채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네이버 중복 송고, <민중의소리>는 안 되고 다른 곳은 된다?

▲ '2013 충격 고로케 어워드' 결과 ⓒ 충격고로케 캡처

물론 낚시성 기사들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충격과 멘탈 붕괴에 빠진 언론사들을 조롱하는 '충격 고로케' 사이트가 등장한 것도 1년이 넘었다. 오로지 네이버 검색어에 목을 매단 채, '실시간 검색어'만을 쫓는 기사들이 양산되는 매체 환경에 대한 지적도 누구들에겐 쇠귀에 경읽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그 양상이 더 심화되고(그 밥에 그 나물이지만) 질이 한층 낮아졌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뉴스나 소식이 가장 빨리 유통되는 곳은 트위터다. 사용자들이 라디오 구독 개념으로 일컫는 이 트위터 자기 계정에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같은 내용을 단어 몇 개만 바꿔 올린다면, 그 계정은 언팔(구독 중지)을 당하거나 외면을 받기 마련이다. 언론사 트위터 계정도 같은 기사를 반복해서 전송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털은 사정이 판이하다. 하루만에 수십개씩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전송하는 언론사 닷컴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도, 받을 필요도 없다. 매체 윤리도, 언론 생태계에 대한 고민도 없다. 그저 온라인 광고 수익을 올리는데 클릭수를 이용할 뿐이다. 제재가 없으니 반성도 없다.

흥미로운 것은 2011년 네이버에서 퇴출당한 <민중의 소리>의 예다. <민중의 소리>는 특정 연예뉴스를 중복 전송했다는 이유로 네이버와의 검색 제휴 계약이 해지 됐고, 이에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2011년 어떤 매체에게는 계약 해지 사유였던 이 중복 전송이 최근들어 '충격'과 '멘탈붕괴'에 빠진 언론사닷컴들을 먹여 살리는 수입원 중 일부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영글어 가고 있는 2014년 '어뷰징의 봄'

▲ <기자협회보>에 올라온 어뷰징 관련 기사. ⓒ 기자협회보 캡처

이 어뷰징 기사의 주요 생산자들이 언론사닷컴을 위시해 각 매체 인턴기자들이라는 점은 꽤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이버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IT 생태계와 언론 환경을 좌지우지하는 네이버 검색어 장사를 위해 경력도, 연봉도 일천한 인턴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개에 달하는 기사를 기계적으로 토해 내는 중이다. (관련기사 : "나는 트래픽 올리는 기계에 불과했다" 2014년 03월 04일 기자협회보)

이미 포털 위주로 매체 환경이 재편되면서 공고화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수 년째 그 실상이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는 사이, 군소매체들이 연예뉴스를 비롯해 검색어 장사에 뛰어들면서 시장은 포화상태가 됐다. '네이버 검색어'을 둘러싼 매체들의 전장에 젊고 어린 말단 기자들이 어뷰징 기사란 보잘 것 없는 무기를 든 채 내몰린 형국인 셈이다.

특히 네이버가 뉴스캐스트를 버리고 뉴스스탠드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어뷰징' 기사들의 난립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뉴스캐스트 시절엔 기사 한 건에 많게는 100만 건에 달하는 페이지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뷰징 기사에 열을 올리는 매체들은 수십, 수백개 단신으로 쪼개서라도 그 만큼의 페이지뷰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게 가능한 것도 인력이나 규모가 되는 언론사닷컴일 수밖에 없다.

매체들 스스로의 자정을 바라는 것은 이제 요원한 일이 된 것 같다. '저널리즘'을 들먹이기가 남부끄러운 것이 2014년의 대한민국 언론 생태계다. 6개월 간 십 수명의 기자들이 돌아가며 쫓아다닌 끝에, 김연아 선수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얻어낸 특종을 마치 동업자 정신마냥 공유하는 분위기 역시 그 단적인 증거다. CBS 변상욱 대기자는 그래서 '어뷰징, 후배들에게 부끄럽다'고 썼다.

모든 걸 포털에 쏠린 매체 지형탓으로 돌리는 것도 비겁하다. 이미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출범과 함께 슬로우뉴스 등 포털에 의존하지 않는 콘텐츠 플랫폼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충격'과 '멘붕'에 빠지기 일쑤인 매체들, 언론사닷컴들이 계속해서 수익만을 좇는 이상, 독자들은 이러한 '어뷰징 폭탄'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군소매체들이 '검색어 장사'에 뛰어드는 중이다. 그렇게 2014년 '어뷰징의 봄'이 영글어 가고 있다.


출처 : 신상털기, 과거캐기, 물어뜯기... 요즘 기자들이 하는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