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상상력의 공장에선 북한 여객기도 끔찍한 무기

상상력의 공장에선 북한 여객기도 끔찍한 무기
[토요판] 군사. 무인기와 공포 조장
[한겨레]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등록 : 2014.04.11 19:28 | 수정 : 2014.04.13 12:19


▲ 지난달 24일과 31일 각각 파주(왼쪽)와 백령도(오른쪽)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 이 무인기는 언론들에 의해 새로운 위협으로 부각되었다. 무인기가 실제로 얼마나 위협적인지, 과연 이것이 군사적 기습으로 평가할 만한지에 관한 논리적 접근은 생략되었다. 국방부 제공

▶ 최근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3대가 발견되면서 한반도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방공망이 뚫렸다”며 저고도 탐지 레이더를 외국에서 구매해 요격 체계를 강화한다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무장 능력과 좌표 유도 체계 등을 봤을 때 이 무인기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 ‘과잉 안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북한은 추락할 수준의 ‘결함 무인기’를 무모하게도 마구 날리고 우리 정부는 검증도 없이 공포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실시간의 영상을 전송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날지도 못해 떨어진 작은 비행체 3대가 대한민국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애초 이 무인기가 발견된 3월 말에 군 정보기관은 “대공 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그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신문과 종편 등 언론은 지속적으로 이 조잡한 무인기를 생화학무기를 탑재한 대량살상무기로,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를 공격하는 자폭기로, 원자력발전소를 위협하는 가공할 무기로 부각시키며 한국 안보의 새로운 위협으로 몰아붙였다. 평택 미군기지와 계룡대의 육해공군 본부도 북한의 초정밀 타격에 정확히 조준돼 있는 것으로 이미지화되었다. 어떤 상식과 합리성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은 앉아서 얼마든지 대한민국 전역에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절대 강자로 또다시 부각되었다. 상상력의 공장에서 대한민국 멸망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대량생산된다.

대포나 미사일 등과 비교해서
무인기는 얼마나 위협적인가
그 위협의 개연성 과연 있는가
대한민국 파멸의 시나리오가
합리적 질문들을 잠식해 버렸다

민간기라 방심하는 허점 이용해
대량살상무기 실은 북한 여객기
한국의 고층빌딩에 충돌시키면
상상 초월하는 피해 입을텐데
이런 건 왜 안 위험하다고 할까



저고도 탐지 레이더 구매할 필요 있을까

4월7일에 박근혜가 “군의 방공망과 정찰체계에 문제가 있다”며 대책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김관진 국방장관도 9일 국회에서 “(북한이 우리의) 취약점을 매우 교묘히 이용해서 후방지역까지 침투를 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군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기습이라고 볼 수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나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과연 이것이 군사적 기습으로 평가할 만한지에 대한 논리적 접근은 생략되었다. 북한이 보낸 무인기가 맞는지에 대한 엄밀한 검증과 더불어 북한의 무인기라도 이것이 위협적인지를 판단하는 다음과 같은 분석이 있어야 했다.

첫째는 무인기를 통제하는 북한의 지휘통제 시스템이다. 북한이 무인기를 공격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 주파수와 통신체계, 좌표 유도체계가 준비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둘째는 무인기의 연료 탑재량이다. 소형 무인기라면 당연히 연료의 한계로 인해 항속거리가 제한되는데, 이번에 회수된 무인기는 3~4리터에 제한된다. 셋째는 무장 탑재능력이다. 군 당국 발표대로라도 3~4킬로그램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무장능력은 수십, 수백 킬로그램을 탑재할 수 있는 대포와 미사일에 견주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무장을 늘리면 연료량도 줄어들고, 비행제어에 필요한 유도장치도 제대로 장착할 수 없다.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북한제로 추정되는 이 무인기에 대한 북한의 의도, 운용능력, 위협의 정도를 모두 평가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1990년대부터 무인기를 개발했다는 북한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우리는 오히려 여유를 가질 만도 했다. 그러나 “방공망이 뚫렸다”는 사실 하나만 부각시켜 영공방위에 심각한 위기가 조성된 것처럼 사태를 과장하는 건 난센스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에서 풍선만 날려 보내도 마치 낙하산 부대에 영공이 뚫린 것이나 다름없이 호들갑을 떨지 말란 법이 없다. 실제로 2010년 6월에 경기도의 한 유치원 운동회에서 날려 보낸 풍선 수백개가 밤에 다시 떨어지자 군은 북한의 낙하산 부대가 침투한 것으로 오인하고 출동한 전례가 있다.

‘만들어진 공포’에서 시작된 안보 과잉의 해프닝은 계속 이어진다. 전세계 어떤 방공망이 이렇게 저고도로 침투하는 무인기를 물샐틈없이 방어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실효성도 의문이지만 군은 벌써 설익은 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저고도 탐지 레이더를 해외에서 구매하고 요격체계도 강화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내 방산업체들은 이미 육군의 저고도 방어를 위한 국지방공레이더를 개발하고 있다. 이 레이더는 북한의 소형 무인기를 탐지하는 군의 요구성능(ROC)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레이더와 별도로 고성능의 레이더를 긴급히 해외에서 구매하게 되면 사업의 중복과 예산낭비는 불가피해진다. 벌써부터 이 기회를 노려 이스라엘과 영국의 무기중개상이 국방부를 공략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언론은 하루속히 해외 구매를 하도록 압박을 넣고 있고, 정부는 이미 긴급예산까지 편성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레이더라도 사각지대가 많은 산악지형의 한반도에서는 소형 무인기를 방어하는 데 충분치 않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소리로 듣고 무인기를 탐지하는 청음부대나 육안으로 감시하는 견시부대를 추가로 투입해야 할 상황이다. 왜냐하면 무인기를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무인기 소동이 있자 국방부는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하여 “단기 및 중기적으로 (우리 군의) 방공망을 (북한의) 공격용(무인기)에 대비”한다는 국방장관 지침도 공개했다. 이어 우리 군이 보유한 송골매(RQ-101)와 곧 배치될 예정인 리모아이-006도 언론에 전격적으로 공개되었다. 더불어 “주민홍보와 신고망 재정비 등 민관군 통합방위 차원에서 대비태세를 발전시킨다”는 방침도 수립중에 있다. 주민이 간첩이나 간첩선을 신고하면 지급되는 포상금을 무인기 신고에도 적용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이 때문인지 어딘가에 더 추락해 있을지도 모를 무인기를 찾기 위해 주말의 등산객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가 무인기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 북한의 무인기는 횡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인식되기도 한다. 당장 “무인기를 보았다”는 주민 신고가 폭주하는 중이다.

▲ 4월3일 신고 접수된 삼척의 무인기는 파주에 떨어진 무인기와 같은 기종이었다. 국방부 제공


냉전 시절 소련 군비경쟁 실패의 교훈

아프리카의 물도 못 먹는 나라에서도 운용하는 수준의 저급한 무인기가 발견되었을 무렵, 이것이 우리의 국방정책을 바꿀 정도의 중대한 사태로 발전하리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북한제가 사실이라면 자주 추락하는 무인기의 결함을 보완하지도 않은 채 마구 이를 날려 보내는 북한의 행태는 무모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다. 이것은 북한의 군사조직 내에서 “무인기를 적극 활용하라”는 김정은 제1비서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관료주의의 병폐일 수도 있다. 북한발 공포를 생산하는 매카시즘이 완강한 우리 사회에 이러한 무모한 북한의 무인기야말로 좋은 먹잇감이었다. 여기에 우물쭈물하면서 무인기 문제를 얼버무린 군 당국의 석연치 않은 처사까지 발견되자 더욱 기세등등해진 여론몰이는 자기 통제력을 잃었고, 자기 파괴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마치 이 무인기가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새로운 상징으로 돌변한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작년 3월에 “현대전에 무인기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사실, 작년 9~10월께 북한에서 무인기를 운용하는 조직이 단일하게 통합되면서 각양각색의 무인기에 단일한 도색과 일련번호가 매겨졌다는 사실, 수시로 무인기 출몰의 징후가 발견되었음에도 군 지휘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점 등이 지적된 정보기관의 보고서가 4월 초에 청와대로 올라갔다. 청와대는 마치 4년 전의 천안함처럼 무언가 우리의 직관과 상식을 초월한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새로운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그것이 강도 높은 질책으로 국방부에 되돌아오면서 이제 무인기가 위협인가 아닌가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군 조직은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렸다. 한편 군 조직 내부에서는 “작년에 무인기 문제를 보고했다”는 정보 분야의 실무진과 “그런 보고 받은 적 없다”는 작전의 고위 장교들 간에도 갈등과 앙금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북한의 무인기는 우리가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위협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분석과 판단을 통해 위협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만들어진 공포’는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국방정책을 붕괴시킨다.

무인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소동이 북한에는 우리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던 1980년대에 미국은 단종할 것으로 예상되던 B-1을 개량한 B-1b를 대량생산한다고 발표했다. 고고도에서 핵을 투하하는 폭격기는 소련의 방공망에 일찍 탐지되기 때문에 저고도로 침투하는 새로운 폭격기를 배치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공포에 질린 소련은 핵심 시설과 구역에 저고도 방공망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훗날 냉전이 종식되고 많은 분석가들은 군비경쟁에서 소련이 패배한 이유 중 하나로 당시 소련이 엉뚱하게 저고도 방어망에 막대한 군비를 지출한 것을 지목하였다. 지금 국방부가 저고도 방공망 강화를 외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이렇게 우리의 국방정책이 흔들린다면 북한은 앞으로도 가끔 무인기나 그 밖의 새로운 것을 남한에 툭툭 떨어뜨려 줌으로써 우리에게 상당한 혼란을 조성할 수 있다.

무인기 소동은 단순히 우리의 국내정치를 넘어 한반도 전쟁에 대한 인식에 있어 무언가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남북한 정부에 과거의 전쟁인식은 ‘방어우위’에 입각한 전쟁관이었다. 이것은 전쟁사상가인 클라우제비츠 이래 “공자(功者)는 방자(防者)의 3배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비용이 너무 과다하기 때문에 우리 영토를 잘 지키고 방어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안전하다는 전쟁관이다. 그런데 이제는 긴 사정거리의 타격무기와 민간기술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공격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저렴한 무인기, 로봇,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군사기술의 혁신이 도래했다. 그 결과 방어보다는 공격비용이 훨씬 저렴해지는 ‘공격우위’로 전쟁관이 변화하고 있다. 방어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면 더 혁신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효과적이라는 인식이다. 북한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2015년 통일대전”, “우리식 전면전 준비 완료” 등이나, 남한에서 천명되고 있는 “능동적 억제전략”과 같은 언급들은 바로 그러한 공격적 전쟁관의 산물이다. 방자가 아니라 공자로서의 주도권을 추구하는 명확한 인식이 정립된 것이다. 이런 전쟁관이 최근 남북한 정부 양측에 똑같이 적용되면서 상대방의 군사위협으로 인한 안보 문제에 국가적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시작했고, 그만큼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의 요인이 증가했다. 무언가 조금만 새로운 위협이 발견되기만 하면, 이것은 곧 상대방이 우리에 대한 공격의 신호로 인식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번 무인기 소동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북한 군사 분야, 지나친 상호신뢰의 역설

공포를 제어할 수 없는 집단적 통제 불능은 매우 치명적이다. 오직 “북한의 무인기가 위협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통해 “위협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스스로 봉쇄하게 된다. 이렇게 따지면 북한의 다 망가진 고물 전차 하나, 심지어 몽둥이 하나도 위협이라면 위협이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북한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영토, 자원, 인구 등 모든 게 위협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질문이라면 “다른 기존의 위협, 예컨대 대포나 미사일과 비교하여 무인기는 얼마나 위협적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또한 그런 위협이 가해질 개연성이 있는지,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것이 대비해야 할 사안인지, 얼마나 급하고 중요한 것인지가 평가된다. 여러 위협을 비교하여 그 상대적인 가치를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국방정책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질문은 생략된다. 공포를 조장하는 여론이 합리적인 국방정책을 잠식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국방정책을 흔들어댈 수단이 북한에는 무한대로 있다. 심지어 북한의 여객기는 더 큰 위협이다. 민간기라고 우리가 방심하는 허점을 이용해 대량살상무기를 가득 실은 여객기를 한국의 고층 빌딩에 충돌시키면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북한에 존재하는 것 중에 위협이 아닌 것이 없다.

이런 여론몰이의 가장 큰 폐해는 북한의 위협을 곧이곧대로, 더 부풀려서 신뢰한다는 데 있다. 상대방의 위협적인 언사와 공격무기를 대폭 신뢰하기 때문에 이것이 상대방에게 상당한 전략적 이점을 가져다준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남북한은 서로를 너무 신뢰한다. 그러므로 한반도에는 별도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필요 없다. 너무나 잘 구축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구태여 새로운 무엇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것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위협에 대한 ‘의심’이다. 이것이 정말로 위협적인지, 의심하는 가운데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국방정책의 여지가 창출될 것이다.


출처 : 상상력의 공장에선 북한 여객기도 끔찍한 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