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허재호 1000일 노역,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

"허재호 1000일 노역,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
[인터뷰] 서기호 정의당 의원... '황제노역 방지' 법안 발의
[오마이뉴스] 구영식 | 14.04.13 09:36 | 최종 업데이트 14.04.13 13:34


▲ 수백억원을 탈세하고도 '황제 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오후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황제노역' 논란이 크게 일었을 때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지난 1998년 사법연수원 시절에 쓰던 <형사재판실무>라는 교재가 생각났다. 손때가 묻은 교재를 다시 들추자 벌금형과 관련해 이런 내용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벌금 2000만원 이하일 경우는 1일 2만원, 1일~1000일,
벌금 2000만원 이상일 경우는 벌금액수의 1000분의 1, 1000일


이렇게 사법연수원에서 배운 내용에 따라 2000만 원 이상 고액 벌금도 1000분의 1로 환산해 노역장 유치 환산금액(환형유치금액)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 서 의원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벌금 254억 원을 선고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도 현행법상으로 1일 2540만 원으로 계산해 100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는 판결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허 전 회장은 일당 5억 원에 49일만 노역하면 254억 원의 벌금을 전부 탕감받을 수 있도록 판결 받았다. 이는 항소심 판결이 내려진 지 4년이 지나 '황제노역' 논란으로 이어졌다.


"황제노역 판결은 봐주려고 작정한 판결"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551호실에서 만난 서 의원은 황제노역 판결을 두고 "봐주려고 작정한 판결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황제노역이라는 표현에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라며 "전형적인 봐주기 판결이다"라고 지적했다.

"허 회장이 포탈한 세금과 가산세를 합쳐 800억 원 이상 납부한 것을 고려해 노역장 유치일수를 줄여주는 쪽으로 판결했다. 벌금액이 하도 커서 선고유예를 내리기는 어려우니까 그렇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판사가 양형 재량권을 남용한 대표적 사례다."

형법 제69조 2항과 제71조에는 각각 벌금 노역장 유치와 유치일수 공제가 규정되어 있다. 두 법조항의 핵심내용은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최장 3년의 노역장에 유치하고, 벌금의 일부를 납입할 경우 그 액수에 비례해 노역장 유치일수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이 법조항들은 지난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문제는 1일 환형유치금액의 '상한선'을 전혀 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판사는 1일 환형유치금액을 제한 없이 정할 수 있고, 피고인은 수백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더라도 최장 3년만 노역하면 벌금을 전부 탕감받을 수 있다.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2000년이 넘어서 100억 원 이상의 고액 벌금형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3년의 노역장 유치로 벌금을 탕감 받아도 문제가 없었다. 허재호 회장처럼 일당 5억 원이 나오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액 벌금형이 나오면서 법조항의 문제점이 계속 제기됐다. 환형유치금액이 판사 재량에 맡겨지다 보니 내부기준이 있어도 안 지키면 그만이다. 그러니 허재호 회장 사건처럼 봐주기 판결이 생겼다."

서 의원은 "환형유치금액에 제한이 없지만 사법연수원에서 배운 기준도 있고, 법원 내부에서 통용되는 기준도 있다"라며 "그런데 허재호 회장의 경우에는 그런 기준에서도 일탈한 판결이다"라고 말했다. "판사의 눈높이에도 안 맞는 판결이다"라고도 했다.


'서기호 형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허재호 회장은?

▲ 서기호 정의당 의원. ⓒ 남소연

결국 '황제노역' 판결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 의원은 최근 황제노역을 방지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환형유치금액을 1일 100만 원 이하로 제한하고, 최장 유치일수(3년)를 초과하는 벌금이 있을 경우 이를 별도로 납입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서 의원은 형법 개정안 '제안이유'에서 "본래 노역장 유치제도는 가난해 벌금을 납입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나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대한 벌금 탕감 차원에서 마련된 것인데도 벌금 납부 능력이 충분한 재벌 등 고액소득자나 죄질이 중한 10억 이상의 고액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조차 벌금 탕감에 초점을 맞춘 재판실무 관행이 있었다"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그로 인하여 그동안의 재판실무는 3년을 초과하지 않도록 1일당 환형유치금액을 정해야 한다고 해석해 왔고, 그런 나머지 환형유치금액이 1일 1000만 원, 1억 원, 5억 원처럼 합리적 기준도 없는 고무줄 잣대식의 판결, 지나치게 높게 정하는 비합리적 판결이 종종 발생하게 됐다. 그러나 이는 노역장 유치제도의 본래 취재와 다르므로 향후에는 벌금 탕감의 수단보다는 벌금의 성실 납부를 유도하고 강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형법이 개정된다면 은닉재산이 발견될 경우 미납 벌금의 강제집행이 가능해진다. 서 의원은 "노역장 제도의 허점 때문에 49일이든 3년이든 노역장 유치로 벌금을 완전 탕감받기 때문에 검찰도 숨겨진 재산을 찾아서 벌금을 강제집행하려고 하기보다는 노역장에 유치 시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다"라며 "3년을 초과한 미납 벌금을 강제집행할 수 있게 한다면 검찰은 은닉재산을 찾아야 할 의무가 생긴다는 점에서도 제가 발의한 법 개정안의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 의원 외에도 권성동·김재원·박민식 새누리당 의원과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도 비슷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권성동·박민식 의원안은 환형유치금액에 상한선이 없고, 김재원·이상규 의원안은 환형유치금액의 상한선(300만 원, 50만 원)은 있지만 최장 유치일수를 초과한 벌금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서 의원안과 큰 차이가 있다.

서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을 적용해 단순 계산할 경우, 허 회장은 3년(1000일)의 노역을 하고도 244억 원의 벌금을 별도로 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허 회장처럼 쉽게 '벌금을 몸으로 때우겠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 서 의원의 판단이다.

서 의원은 "3년을 꼬박 채우고도 남은 벌금을 반드시 내야 한다면 그 부담 때문에 벌금을 완납해야겠다는 심리적 강제가 생긴다"라며 "허재호 회장처럼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받겠다고 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황제노역 판결'이 4년 지나서 전국 뉴스가 된 이유

또한 서 의원은 "허재호 회장의 황제노역 판결은 (항소심이 난 지) 4년이 지나서야 언론에 부각됐다"라며 "허 회장이 광범위한 인맥 등을 통해 지역 법조계는 물론 지역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서 한참 지난 후에야 전국 단위 뉴스가 됐다"라고 꼬집었다.

서 의원은 "선진국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천되지 않고, 돈 많은 경제인들이 세금 떼먹고 재산 숨겨놓고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교묘히 빠져 나간다"라며 "검사, 판사들이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이렇게 부도덕한 상류층에게 철퇴를 가하기보다 역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이들을 비호하는 법집행을 해왔다"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검사, 판사 등 법조인들이 재벌을 비롯한 경제인들에게 법적인 논리가 아닌 경제적 논리를 들이대면서 (기소하거나) 판결해 왔다"라며 "이것은 평상시에 상위 경제인들과 법조계 고위층의 유착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 의원은 "국민들이 판사 판결을 무조건 존중하고 따르는 시대는 지나갔다"라며 "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판결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거나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의문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부적절한 판결이 된다"라고 말했다.

서 의원은 "그동안 판사들이 법률 전문가의 마인드나 관점을 관철하는 때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제는 평균적인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 정의 관념 등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특히 이번 기회에 검사의 수사·기소 재량권과 판사의 양형 재량권의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출처 : "허재호 1000일 노역,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