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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나비’들이 지켜낸 ‘위안부’ 할머니의 소망

‘소녀 나비’들이 지켜낸 ‘위안부’ 할머니의 소망
‘고등학생들이 만든 평화의 소녀상’ 프란치스코 회관 앞 건립
[민중의소리] 오민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03 19:57:22


고등학생이 함께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열렸다. ⓒ민중의소리


2015년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가 발표된 날, 정동길 한 켠에는 고등학생들이 만든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86번째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인 이날 서울 53개 고등학교 1만6천 명 학생들이 함께 만든 소녀상이 정동길을 환하게 밝혔다.

3일 저녁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 앞에서는 소녀상 건립을 축하하는 이화여고 풍물패의 공연으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시작됐다. 회관 앞을 가득 메운 각기 다른 학교 200여 명의 학생들은 제막식을 지켜봤다.

이화여고 학생회장 윤소정,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회장 권영서 양과 김선실 한국정신대책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와 호명환 작은형제회 교구장이 함께 흰 막을 벗겨냈다. “예뻐 예뻐”, “고생 많았어” 기뻐하며 서로를 다독이는 학생들 앞에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나비가 앉아있고 다른 손은 누군가를 향해 내미는 듯한 소녀의 옆에는 의자가 놓여있다. 그 의자 위에는 운명을 달리한 ‘위안부’ 할머니들과 소녀상을 연결해주는 새가 앉아있었다. 소녀상 옆에는 학생들이 메시지를 적은 노란 나비 모양의 메모지 수백 장이 붙어있었다.

고등학생이 함께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열렸다. ⓒ민중의소리


고등학생이 함께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열렸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 학생들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보내는 쪽지들이 붙어있다. ⓒ민중의소리



“할머님들도 함께 기뻐하고 계실 것... 앞으로도 함께 기억해나가겠습니다”

이화여고 학생회와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이 주축이 돼 시작된 ‘소녀상 건립’은 올해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 건립을 목표로, 직접 만든 배지를 판매한 기금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됐다. 3천만 원을 목표로 시작한 기금마련은 어느덧 4천3백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관련기사 : “우리는 잊을 수 없어요”…‘평화의 소녀상’ 만드는 청소년들)

그러나 지난해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 시작해 꽉 채운 1년이 지나는 동안 고등학생들의 힘으로 소녀상을 세우는 것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화여고 성환철(40) 역사교사는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 같다”며 소회를 전했다. “대학이라는 문을 앞두고 경쟁해야 하는 아이들이, 수업 끝나면 보충학습에 야간자율학습, 학원 수업까지….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웠어요. 틈틈이 짬 내고 밤에 서로 연락해서 일하고. 아이들이 더 하고 싶어도 못해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잘 해줬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인공들도 제막식에 함께 했다. 지난해 이화여고 학생회장 이예린, 주먹도끼 회장 오지은 양은 수능을 열흘 앞둔 수험생이지만 함께 해 자리를 빛냈다.

“단돈 10원도 없이 건립한다는 게 무모하기도 했지만, 친구들, 선생님들, 일반 시민들이 뜻을 보태주면서 우리의 염원을 확인했습니다. 서로 만난 적도 없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 모인 우리는, 우리의 꿈이 더 이상 무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에게 잊혀서는 안 될 아픈 역사, 기다릴 수 없는 우리의 역사에 앞으로도 힘을 모아 함께 할 것입니다”


"처음 가보는 길,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

고등학생이 함께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열렸다. ⓒ민중의소리


고등학생들이 만드는 소녀상이 세워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조각을 맡은 김서경, 김운성 조각가는 제작비용 정도만 지원받고 조각을 맡았다. 배지를 사고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소녀상 건립 용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극적으로’ 장소를 섭외할 수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세우기로 했는데, 문화재청 심사를 받아야 한다더라고요. 심사를 기다리면 11월 3일을 넘기게 되고…. 아이들과 마음을 비우자는 얘기도 했죠. 그게 10월 초 일이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프란치스코 회관에 알아봤는데, 신부님께서 아이들 뜻을 공감해주셨고, 예정된 날에 세울 수 있게 된 거에요.”

작은형제회 호명환 관구장은 축사를 통해 “인격을 이득의 대상으로 삼는 이 시대에, 모두의 마음이 모아진 소녀상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줄 것이라 믿는다”며 소감을 전했다.

학생들은 건립기금으로 쓰인 3천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나비기금으로 전달했다. 할머니들이 추위와 건강 문제로 함께 자리하지는 못했지만, 할머니들과 함께하겠다는 학생들의 마음도 함께 전달했다.

학생들은 다 같이 ‘학생독립선언’을 낭독하며 자리를 마쳤다.

“우리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여기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될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그 날까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희망의 나비가 되어 할머니의 뜻을 이어갈 것입니다”


출처  ‘소녀 나비’들이 지켜낸 ‘위안부’ 할머니의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