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심장에 격문을 쓰노라
백남기 동지의 쾌유를 빌며...
[민중의소리] 한도숙(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 최종업데이트 2015-11-23 08:57:59
이렇게 허망토록 쓰러지기 위해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었지 않는가. 한줌, 아니 티끌 만큼도 하늘을 우러러 거역하지 못하는 농사를 이렇게 빼앗기려고 진통제로 버텨온 세월이 아니지 않은가. 아서라. 나는 이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생명의 물줄기를 부여안고 생명지기로 여름지기로 꿋꿋하게 서리라. 보아라 너희들 권력과 자본이 내 앞에 무릎 꿇게 되리니...
40여년을 농사 지었다. 그득한 논물에 마음이 취해 흥얼거리며 씨를 넣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이고 순리라 생각했다. 해가 뜨면 바짓가랭이 걷고 들로 나가 풀들과 싸움을 하고 허기진 배를 안고 돌아와 먹는 한 그릇의 쌀밥은 힘이었고 기쁨이었고 희망이었다. 뜨거운 한낮의 폭염을 피해 원두막쯤에서 달게 낮잠을 자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생뚱맞은 말이 농촌에 광풍처럼 밀려왔다. 그 말은 농사를 접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국가와 자본의 폭력 앞에 맥을 출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짐을 쌌다. 하염없이 탈농의 대열이 길어 졌다. 그래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농사가 사람을 살릴 것이란 믿음 하나로 버텼다. 내 땅에서 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만들어 내는 먹거리들이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안식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걸 버릴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런데 이제 함께 버텨주던 사람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가고 있다. 이웃이 사라지고 땅이 사라지고 있다. 고샅길 돌담이 힘없이 무너지는 황폐한 마을이, 손이 가지 못하는 버려진 땅들이 서럽게 우는데, 남아있는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갈 밖에... 언제고 생명의 먹거리를 우습게 여기다가 큰 코 다칠 것이라고 객기도 부렸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신자유주의 미친 바람 뿐이다. 자본과 권력의 가공할 위력 앞에 농사꾼, 농부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난 농민으로 섰다. 세차게 밀려오는 바람 앞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구르다 말일이 아니다. 이렇게 구르다 썩어갈 일이 아니다. 이렇게 발바닥에 밟혀 꺼꾸러져 먼지가 될 일이 아니다. 가진자들의 노래를 꺾어야 한다. 자본의 미친 광기를 맞받아쳐야한다. 권력에 온몸을 내던지며 우리가 사람임을, 우리가 생명임을 외쳐야 한다. 그래서 난 농민이다. 내 이름이 농민이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의 언어를 우리의 무기로 삼아 대지에 충만한 생명을 되살리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발등에 떨어질 불덩이를 안고 가는 사람들은 지금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있지만, 우리가 외친 우리들의 언어는 역사가 기록할 것이기에 소리쳐야 한다.
우리가 빼앗기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저 갑오년 우리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결기를 세우고 광풍처럼 세상을 바꿔내지 않았던가. 모두가 붉은 피로, 비명으로, 눈물 콧물로 산천을 울리지 않았던가. 우리가 넘어서지 못하는 언덕이 있었는가. 우리가 넘지 못한 고개가 있었는가. 우리는 미친 듯이 언덕을 넘었고 광풍처럼 고개를 넘었다. 우리가 넘다 꺾인 것일지라도 훗날엔 결국 고개를 넘었다.
아시는가. 내가 물대포를 향해 앞으로 가야하는 것을. 내가 차벽을 건너 저 청와대를 향해 소리쳐야 하는 것을. 물대포는 내게 장애물이 아니다. 물대포는 내게 공포가 아니다. 차벽이라고 나를 막을손가. 난 이미 차벽을 넘어섰고 난 이미 물대포를 넘어섰다. 내 손에서 호미자루를, 내 손에서 꽹과리를 빼앗으려는 부도하고 광폭한 권력에 이미 난 모든 분노를 쏟아낸 것이다. 농민을 살려내라. 농업을 살려내라.
UR이 시작 됐을 때부터 농사는 고통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희는 천연덕스럽게도 관심 밖으로 내돌렸고, 이경해 열사가 머나 먼 칸쿤에서 가슴을 끌어안고 나뒹굴어도 개의치 않았다. 농민들의 외마디는 피로 점철되었고, 곤봉과 방패는 농민들의 뒷통수로 날아 들었다. 쌀을 지키자며 절규하다 전용철이 쓰러지고 홍덕표가 쓰러져도 농사는 갈갈이 찢겨진 헌 비닐처럼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나는 농사가 자랑스럽다. 허나 세상은 농사가 다된 한물간 것으로 따돌리고 있었다. 그래도 누가 호미자루를 쥐고 이 땅을 지킬 것인가.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틴 세월이 30년이다. 그런데 지금 쌀값이 개사료 값만도 못한 세상이 되고 보니 가만있으면 내가 개가 되는 것이다. 아니 생명을 내 던지는 내 땅에 씨앗을 뿌리지 못하는 세상에, 농민으로, 농민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목줄을 조이며 죽어야 한다고 끌고 가는 길을 따라 나서야 한단 말인가. 나와 동지들의 어깨를 걸고 머리띠를 질끈 매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새벽밥 해먹고 농민가를 부르며 청와대로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농민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 이 땅의 생명지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헤진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피흘린 농민이 길거리에 뒹군다 한들 공포를 물리치고 나서야 한다.
너희들은 아느냐. 내 이름 농민, 산산히 부셔져 버린 커쿨진 내 노래를. 너희들은 아느냐, 이 땅의 서러운 모퉁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농민의 한을. 너희들은 아느냐, 들판에 푸른싹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어오는 광풍이 어찌 나락목아지를 꺽어 버리는지.
생각해 보라 너희들 권력자들아, 누가 네 입에 단맛을 느끼게 하며, 누가 네 팔뚝에 굵은 힘줄을 세우게 하는지. 난 오늘도 보리씨를 뿌리고 하늘의 조화에 귀 기울이고 동토를 뚫고 일어서는 저 새싹들의 외침을 듣노라.
아, 광란의 살인자들아, 하늘을 가리는 철면피들아, 너희의 믿음이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구나.
생각해 보라 너희들 자본가들아, 씨를 뿌리지 못하는 대지는 너희들의 발밑에서부터 썪어갈 것이니...
나는 이제 뚜벅뚜벅 달려가 내 온몸으로 너희들 심장에 격문을 쓰노라. 이제 생명의 노래를 불러다오.
출처 [한도숙 칼럼] 저들의 심장에 격문을 쓰노라
백남기 동지의 쾌유를 빌며...
[민중의소리] 한도숙(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 최종업데이트 2015-11-23 08:57:59
이렇게 허망토록 쓰러지기 위해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었지 않는가. 한줌, 아니 티끌 만큼도 하늘을 우러러 거역하지 못하는 농사를 이렇게 빼앗기려고 진통제로 버텨온 세월이 아니지 않은가. 아서라. 나는 이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생명의 물줄기를 부여안고 생명지기로 여름지기로 꿋꿋하게 서리라. 보아라 너희들 권력과 자본이 내 앞에 무릎 꿇게 되리니...
40여년을 농사 지었다. 그득한 논물에 마음이 취해 흥얼거리며 씨를 넣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이고 순리라 생각했다. 해가 뜨면 바짓가랭이 걷고 들로 나가 풀들과 싸움을 하고 허기진 배를 안고 돌아와 먹는 한 그릇의 쌀밥은 힘이었고 기쁨이었고 희망이었다. 뜨거운 한낮의 폭염을 피해 원두막쯤에서 달게 낮잠을 자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 경찰 물대포 직사를 머리에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병문안을 온 보성군 웅치면 마을 주민들의 위로를 받고 있다. ⓒ양지웅 기자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생뚱맞은 말이 농촌에 광풍처럼 밀려왔다. 그 말은 농사를 접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국가와 자본의 폭력 앞에 맥을 출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짐을 쌌다. 하염없이 탈농의 대열이 길어 졌다. 그래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농사가 사람을 살릴 것이란 믿음 하나로 버텼다. 내 땅에서 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만들어 내는 먹거리들이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안식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걸 버릴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런데 이제 함께 버텨주던 사람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가고 있다. 이웃이 사라지고 땅이 사라지고 있다. 고샅길 돌담이 힘없이 무너지는 황폐한 마을이, 손이 가지 못하는 버려진 땅들이 서럽게 우는데, 남아있는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갈 밖에... 언제고 생명의 먹거리를 우습게 여기다가 큰 코 다칠 것이라고 객기도 부렸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신자유주의 미친 바람 뿐이다. 자본과 권력의 가공할 위력 앞에 농사꾼, 농부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난 농민으로 섰다. 세차게 밀려오는 바람 앞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구르다 말일이 아니다. 이렇게 구르다 썩어갈 일이 아니다. 이렇게 발바닥에 밟혀 꺼꾸러져 먼지가 될 일이 아니다. 가진자들의 노래를 꺾어야 한다. 자본의 미친 광기를 맞받아쳐야한다. 권력에 온몸을 내던지며 우리가 사람임을, 우리가 생명임을 외쳐야 한다. 그래서 난 농민이다. 내 이름이 농민이다.
넘지 못할 고개는 없다, 빼앗기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의 언어를 우리의 무기로 삼아 대지에 충만한 생명을 되살리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발등에 떨어질 불덩이를 안고 가는 사람들은 지금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있지만, 우리가 외친 우리들의 언어는 역사가 기록할 것이기에 소리쳐야 한다.
우리가 빼앗기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저 갑오년 우리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결기를 세우고 광풍처럼 세상을 바꿔내지 않았던가. 모두가 붉은 피로, 비명으로, 눈물 콧물로 산천을 울리지 않았던가. 우리가 넘어서지 못하는 언덕이 있었는가. 우리가 넘지 못한 고개가 있었는가. 우리는 미친 듯이 언덕을 넘었고 광풍처럼 고개를 넘었다. 우리가 넘다 꺾인 것일지라도 훗날엔 결국 고개를 넘었다.
아시는가. 내가 물대포를 향해 앞으로 가야하는 것을. 내가 차벽을 건너 저 청와대를 향해 소리쳐야 하는 것을. 물대포는 내게 장애물이 아니다. 물대포는 내게 공포가 아니다. 차벽이라고 나를 막을손가. 난 이미 차벽을 넘어섰고 난 이미 물대포를 넘어섰다. 내 손에서 호미자루를, 내 손에서 꽹과리를 빼앗으려는 부도하고 광폭한 권력에 이미 난 모든 분노를 쏟아낸 것이다. 농민을 살려내라. 농업을 살려내라.
UR이 시작 됐을 때부터 농사는 고통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희는 천연덕스럽게도 관심 밖으로 내돌렸고, 이경해 열사가 머나 먼 칸쿤에서 가슴을 끌어안고 나뒹굴어도 개의치 않았다. 농민들의 외마디는 피로 점철되었고, 곤봉과 방패는 농민들의 뒷통수로 날아 들었다. 쌀을 지키자며 절규하다 전용철이 쓰러지고 홍덕표가 쓰러져도 농사는 갈갈이 찢겨진 헌 비닐처럼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 2005년 징을 치고 있는 백남기 농민(앞에서 두번째)과 이웃 농민들. ⓒ가톨릭농민회 제공
나는 농사가 자랑스럽다. 허나 세상은 농사가 다된 한물간 것으로 따돌리고 있었다. 그래도 누가 호미자루를 쥐고 이 땅을 지킬 것인가.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틴 세월이 30년이다. 그런데 지금 쌀값이 개사료 값만도 못한 세상이 되고 보니 가만있으면 내가 개가 되는 것이다. 아니 생명을 내 던지는 내 땅에 씨앗을 뿌리지 못하는 세상에, 농민으로, 농민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목줄을 조이며 죽어야 한다고 끌고 가는 길을 따라 나서야 한단 말인가. 나와 동지들의 어깨를 걸고 머리띠를 질끈 매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새벽밥 해먹고 농민가를 부르며 청와대로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농민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 이 땅의 생명지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헤진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피흘린 농민이 길거리에 뒹군다 한들 공포를 물리치고 나서야 한다.
너희들은 아느냐. 내 이름 농민, 산산히 부셔져 버린 커쿨진 내 노래를. 너희들은 아느냐, 이 땅의 서러운 모퉁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농민의 한을. 너희들은 아느냐, 들판에 푸른싹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어오는 광풍이 어찌 나락목아지를 꺽어 버리는지.
생각해 보라 너희들 권력자들아, 누가 네 입에 단맛을 느끼게 하며, 누가 네 팔뚝에 굵은 힘줄을 세우게 하는지. 난 오늘도 보리씨를 뿌리고 하늘의 조화에 귀 기울이고 동토를 뚫고 일어서는 저 새싹들의 외침을 듣노라.
아, 광란의 살인자들아, 하늘을 가리는 철면피들아, 너희의 믿음이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구나.
생각해 보라 너희들 자본가들아, 씨를 뿌리지 못하는 대지는 너희들의 발밑에서부터 썪어갈 것이니...
나는 이제 뚜벅뚜벅 달려가 내 온몸으로 너희들 심장에 격문을 쓰노라. 이제 생명의 노래를 불러다오.
출처 [한도숙 칼럼] 저들의 심장에 격문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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