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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동국대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스님, 동국대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42일째 단식농성’ 김건중 동국대 총학생회 부회장
[민중의소리] 옥기원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25 21:31:29


단식 42일째, 126끼니를 물과 소금으로 버텼다. 30kg이 빠졌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 붉은 반점이 번졌다. 몸을 가누기가 힘겨웠다. 눈꺼풀을 끔벅이기조차 힘들었다.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나쁜 생각들만 머리속을 스쳤다.

김건중 동국대 총학생회 부회장(정치외교·10)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의료진까지 나서 “시간이 더 지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단식 중단을 권유했지만, 그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무엇이 그를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었을까? 단식 42일째인 25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 앞 천막농성장에서 김 부회장을 만났다.

▲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이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내에서 42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옥기원 기자



이사장·총장 선출 논란··· 학교는 ‘모르쇠’
“차라리 학교서 죽겠다” 단식 결심

김건중 부회장은 지난 10월 15일 동국대 이사장 일면스님과 총장 보광스님의 퇴진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교내 농성, 도보 행진, 고공 농성···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학교는 언제나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민하다 단식을 선택했습니다.”

김 부회장이 단식을 결심하게 된 발단은 작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총학생회 선거에 당선되고 임기를 준비하던 중 신임총장 선출 등을 둘러싸고 학내외 혼란이 증폭됐다.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등 고위 승려들이 동국대 총장과 이사장을 불러 총장 후보자인 보광스님을 지지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후 학내 구성원 등이 선출한 총장 후보자 3명 중 2명이 자진 사퇴했고요. 대학구성원들은 일제히 “종단이 총장 선거에 개입했다”며 반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났고, 대학 이사인 일면스님의 탱화 절도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이런 논란에도 일면스님은 임시회의를 열어 자신을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고, 이후 보광스님을 총장으로 선출했습니다.”

혼란이 거세지는 과정에서 지난 4월 최장훈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15m 높이의 조명탑에 올라 45일간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지난 8월에는 학생들이 동국대 경주캠퍼스부터 부산 해운정사까지 5박6일간 도보행진을 하며 스님과 신도를 만나 동국대 사태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9월 동국대 학생 2000여명이 학생총회를 열어 일면·보광스님 퇴진, 대학 내 교육의제를 결의해 학교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인터뷰 도중 말하는 게 힘겨운지 숨을 몰아쉬었다. 물병을 들고 목을 축이는 모습도 힘겨워 보였다. 허리와 엉덩이 근육이 빠져 몸을 지탱하기 어러워 인터뷰 대부분을 누워서 진행했다.


“죽을 각오 했다. 대학·종단이 결정 내릴 때”
일면스님 농성장 방문해 “몸이 상한다”··· 김 부회장 “대학이 더 상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구성원들의 요구를 일관되게 무시하는 두 스님을 대학을 이끄는 대표자로 인정할 수 없었다”며 “학생 대표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단식까지 선택했다”고 말했다. 단식 농성 중단의 조건을 묻는 질문에 “‘일면스님, 보광스님 퇴진’과 ‘학생 요구안 실현’이 단식을 시작한 이유였으면 농성을 끝내는 이유 또한 같아야 한다”고 결연하게 답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3명의 총장을 봤지만 단 한 번도 학생 요구가 반영되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대학에서 학생 요구는 언제나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학생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학생들과 후배, 밖에서 학교를 지켜보는 선배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이사장·총장님을 비롯한 대학·종단 관계자분들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 동국대 이사장 일면스님이 김건중 부총학생회장 단식농성 42일째를 맞는 25일 오전 농성장을 찾았다. ⓒ옥기원 기자


인터뷰 도중 취임 9개월여 동안 면담에 응하지 않던 이사장 일면스님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3분여간 짧은 만남이 이뤄졌다. 일면스님은 “시간이 더 지나면 몸이 많이 상한다. 가족을 생각해서 단식을 중단하라”고 권유했고, 김 부회장은 “대학이 더 상하고 있다”면서 중단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일면스님이 떠나고 김 부회장은 “상황이 이 지경이 돼서야 농성장을 찾아 단식을 중단하라는 일면스님의 얘기에 실망감만 커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교직원도 단식농성,
거세지는 비판 여론에 대학만 ‘묵묵부답’

김 부회장이 단식을 시작한 후 동국대 본관 앞은 농성장으로 변했다. 한만수, 김준 교수도 “제자를 대신해 단식하겠다”며 16일째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교직원 김윤길 대외담당관도 단식 10일째를 맞았다.

교내에서 농성중인 한만수 교수협의회장은 기자와 만나 “제자가 몸을 해치면서까지 싸우는데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대학을 이끄는 대표라면 자신에게 불거진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일면스님과 보광스님은 해명의 기회를 침묵으로 일관하며 학내에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야기했다. 그분들은 더이상 동국대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학생·교수·교직원·동문의 의견을 받아들여 두 스님이 자진해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대한불교청년회, 바른불교재가모임, 정의평화불교연대 등 11개 불교계 단체들도 25일 성명을 통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온 학교 당국과 조계종 총무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일면스님의 이사직 사퇴 등을 촉구했다. 지난 20일에는 동국대 총동창회 원로 고문들이 총장 보광 스님을 만나 김 부회장 단식농성과 관련해 조속한 사태 해결을 당부하기도 했다.


출처  “스님, 동국대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