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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자식이 뭐길래’ 위기의 금수저 아빠들

‘자식이 뭐길래’ 위기의 금수저 아빠들
자녀 특혜 논란으로 본 정치권 ‘자식농사’
[경향신문] 정환보 기자 | 입력 : 2015-12-04 19:54:43 | 수정 : 2015-12-04 21:19:43


자식 농사.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을 농사에 빗댄 말이다. 그만큼 때맞춰 돌보는 데 정성이 필요하고, 또 온 정성을 다하더라도 날씨 등 환경이 도와주지 않으면 뜻대로 되지 않는 농사와 같은 것이 자녀 양육과 교육이다.정치권에도 자식 논란이 한창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여야가 따로 없다. 사고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제일 곱다고 한다

“자식이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낙제를 하게 됐다고 해서, 부모 된 마음에 상황을 알아보고 상담을 하고자 (학교를) 찾아간 것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 ‘자식 농사’로 입길에 올라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63·서울 강서갑)이 내놓은 해명이다. 아들이 모대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시험에 낙제한 것이 발단이었다. 4선의 중진 의원이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얻지 못한 아들 구제를 위해 로스쿨에 압력을 행사했느냐 여부가 논란거리다.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들과 법조인 일부는 “로스쿨은 현대판 음서제”라며 거세게 들고 일어났고, 신 의원은 검찰에 고발까지 됐다. 반면 로스쿨 측에서는 “아들이 결국 낙제하지 않았느냐”면서 공정한 제도 운영의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대변인을 지낸 금태섭 변호사는 로스쿨과 사시 존폐 여부로 불길이 옮겨붙는 데 대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한다.

금 변호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수많은 평범한 아버지들이, ‘과연 우리 아들이 시험을 망쳤을 때 내가 학교에 찾아가서 교장이나 대학원장을 만날 수 있을까, 또 교감이나 부원장이 회사로 나를 찾아와서 해명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분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잘난 부모나 못난 부모나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건 인지상정이다. 아무나 넘기 힘든 벽을 넘나드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아버지를 바라보는 ‘못난 부모’들은 분통만 터뜨린다.

“딸이 대학시절 모두 A학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임에도, 취업이 쉽게 되지 않더라. 딸은 제가 전화를 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지난 8월 ‘딸 바보’ 논란을 일으킨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58·경기 파주갑)도 비슷한 사례였다. 윤 의원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딸이 2013년 LG 디스플레이에 법무팀 변호사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회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빠’ 윤 의원도 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실제 영향력을 미쳤느냐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이미 여론의 재판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정치연합은 부랴부랴 당 윤리심판원을 통해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론은 “징계 시효(2년)가 이틀 지났다”는 것이었다. “LG 디스플레이 공장은 윤 의원 지역구가 아니라 그 옆(파주을)”이라는 발언까지 나오면서 ‘금수저’를 물려줄 수 없는 부모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정치생명을 걸겠다.”

윤 의원의 딸 특혜 취업 의혹이 제기된 지 나흘 뒤 이번에는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64·경기 고양덕양갑)이 자식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 무렵 포털사이트에서 ‘윤후덕’의 연관 검색어는 ‘김태원’이었다.

김 의원은 ‘아들 바보’ 의혹을 받았다. 아들은 로스쿨을 수료해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법원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다 2013년 11월 정부법무공단에 채용됐다.

문제는 공단이 이미 공지한 채용 공고 내용이 중간에 고쳐졌다는 점이다. 지원 자격요건이 완화된 점이 의심을 샀는데, 김 의원과 당시 공단 이사장인 손범규 전 의원의 친분 때문에 의혹은 증폭됐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의 접근법과는 달리 그는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단호하게 대처했다. 해명을 해석해 보면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의 증거가 나오면 정계를 떠나겠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정치생명은 여러 개 아니냐”는 뒷공론도 나왔다.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가 보름 넘게 조사한 결과는 “(공단 채용은) 품행과 성실성 등 종합적 평가에 따른 결과였다”는 ‘허무한’ 것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제 자식의 앞길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는 꼴불견이다. 하지만 자식의 허물을 고스란히 품어야 하는 것도 부모다. 걸림돌이 된다고 내팽개칠 수도 없는 게 자식이다. 세간의 평가를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정치인이야 오죽하겠는가.

“우리 딸이 내 속을 썩인 일이 없었다. 걱정 끼친 일이 없었던 모범적 자식이고 공부도 아주 잘했다. 사랑한다고 울면서 꼭 결혼을 하겠다는데 방법이 없었다.”

지난 9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64·부산 영도)가 둘째 사위의 마약 투약 전력이 알려지자 기자들을 불러모아 전한 말이다. 김 대표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집권 여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에게 득 될 게 하나 없는 혼사였다.

김 대표는 “이 결혼은 절대 안된다. 파혼이다”라며 딸을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부모가 자식 못 이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저간의 사정이 다 들어있다. 이후 김 대표는 이화여대 강연에서 “제일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연애도 열심히 해야 한다. 연애를 해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며 장탄식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 사건이 예상보다 파장이 적은 것은 부모 심정에 호소한 김 대표의 해명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사위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데 예비 장인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또 이 사건이 만약 당 대표 선거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무성 후보’에게 벌어진 일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없다.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이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전 의원(64)은 후보수락 연설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막내아들 생각에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북받쳐 흐느끼며 연설을 제대로 잇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의 눈물은 4·16 세월호 참사 직후 막내아들이 페이스북에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한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고 올린 것에서 비롯됐다. 경쟁자를 따돌리고 여당 후보로 선출되긴 했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패배했다. 아들의 실언 또는 망언을 선거 패배의 결정적 요인으로 돌릴 순 없다. 그러나 아들이 악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월호 침몰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던 정 전 의원은 막내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 이후 지지율이 급락했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네거티브’에 의존하는 선거운동을 했고 표심은 더욱 멀어졌다. 파장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누리꾼들은 미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빚어진 사건·사고 기사에 ‘정몽주니어 1승 추가요’ ‘무패의 사나이 정몽주니어’와 같은 댓글을 달며 한국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서울시장 선거와 함께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도 ‘자식’이 선거판 전체를 좌지우지했다.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형성했던 고승덕 전 의원(58)은 장녀 희경씨(미국명 캔디 고)가 선거일 나흘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휘청이기 시작했다. 딸은 “혈육인 자녀를 가르칠 생각도 없었던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을 이끌 수 있겠느냐”며 매서운 글을 남겼다. 마지막 유세의 마지막 대목에서 고 전 의원은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이라고 말한 뒤 왼팔을 번쩍 들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라고 외쳤다. 딸은 그러나 “오 마이”라는 세 음절의 댓글만 남겼다. 딸이 거부한 ‘아빠’는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에게는 환영을 받았다. 미안하다며 절규하는 고 전 의원의 모습은 피구왕 통키, 초사이어인, 골키퍼 등으로 변신하는 등 각종 패러디의 소재가 됐다. 유세 동영상을 짜깁기해 ‘둔둔 따레 따레’하는 식으로 만든 리믹스 영상 ‘애비메탈’도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자식게이트’의 대표급 불운한 정치인으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80)가 꼽힌다. 그는 대통령 후보로 세 번 나서 세 번 떨어졌다.

실패의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들 2명 모두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단 한 줄의 사실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된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잠룡 중 하나인 박원순 시장의 아들 병역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하는 이들의 심리에도 ‘대선 후보 이회창’을 목격한 경험이 깔려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자식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들에게도 ‘자식’은 그 어떤 정치 이슈보다 다루기 힘든 난제였다. 그들도 자식을 보살피려다 또는 자식이 저지른 잘못에 발목이 덜컥 잡혔다. 대통령도 자식 앞에서는 아버지였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가운데 현대 정치인에게 가장 어려운 덕목은 ‘집안을 잘 다스려 바로잡는다’는 뜻의 ‘제가’다.

어디 정치권뿐이랴. ‘위기의 아빠들’ ‘위기의 엄마들’은 도처에 있다. 정치권을 반면교사 삼아 되새겨야 할 질문이다. 댁의 자녀는 안녕하십니까.


출처  ‘자식이 뭐길래’ 위기의 금수저 아빠들···자녀 특혜 논란으로 본 정치권 ‘자식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