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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되고 삼성은 안되고? 직업병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SK는 되고 삼성은 안되고? 직업병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SK 하이닉스, 직업병 문제 해결 물꼬를 트다
[민중의소리] 오민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2-03 13:29:09


지난달 25일 SK하이닉스(이하 ‘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는“인과관계 확인을 유보하고 심각한 질병에 대해 포괄적으로 지원보상해야한다”고 SK하이닉스에 제안했고 하이닉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7월 반도체사업장 내 직업병 문제가 불거지자 “객관적인 실태조사를 받겠다”고 공언한지 1년여만의 일이었다.

▲ 지난달 25일 오전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1년간 진행한 검증결과 발표 및 개선방안 제안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삼성전자, 우리는 다르다?

같은 날, 반올림(반도체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삼성전자 본관 앞 농성을 시작한지 50일을 맞이했다. 이날은 가족대책위 간사였던 정애정씨가 맞은편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지 71일 되는 날이었다. 지난 7월 마련된 조정위원회 권고안을 외면하고 독자적인 보상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마련,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삼성은 오늘도 외면하고 있다.

▲ 지난10월 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앞에서 이날 오후 조정회의에 참가했던 교섭단이 경과를 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해결에 나선 SK, 조사를 자청하다

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문제가 알려진건 지난해 7월 <한겨레>보도를 통해서였다. 보도 직후 박성욱 대표이사는 “객관적이고 세밀한 조사를 받겠다”고 했고, 회사 개입 없이 선정한 7명의 외부인사와 노사 각 2명으로 구성된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발족했다. 검증위원회는 검증에 필요한 연구를 기획했고, 실제 연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독립적으로 총괄 진행했다.


해결에 나선 삼성, “중재안 따르겠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문제가 알려진건 지난 2007년 3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명으로 사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직업병 문제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지만 삼성은 대화조차 나서지 않았다. 5년여가 지난 2012년 11월에 이르러 삼성이 반올림 측에 대화를 제안했고 1년간 협상 끝에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4년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가 “합당한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 “중재안이 나오면 따르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협상을 진행하던 중 따로 꾸려진 ‘가족대책위’와 삼성전자는 당사자간 합의는 어렵겠다며 조정위원회 구성을 추진했다. 반올림은 삼성의 직접 해결해야한다고 반대했지만 조정위는 반올림도 한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설득해 조정위가 열렸다.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s) 사업총괄 권오현 사장이 재조사 경과와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SK와 삼성에게 주어진 과제

하이닉스 검증위원회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증과정을 통해 암이나 희귀질환들은 특성상 인과관계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고 질병발생의 원인이 되는 유해인자에 어느정도 노출됐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반도체직업병을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1년여에 걸친 역학조사 결과 ‘인과관계’ 확인을 통한 직업병 문제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검증위원회의 제안

하이닉스 검증위원회는 심각한 질병에 대한 인과관계 확인을 유보하고 치료와 일상유지에 필요한 기본수준을 지원하는 ‘포괄적 지원보상체계’를 제안했다. 대상자에 재직자, 협력업체 재직자, 퇴직자, 자녀를 포함했고 지원대상 질병에 자연유산과 희귀난치성질환, 불임, 자녀의 선천선 심장기형 등도 포함시키면서 반도체 산업과 조금이라도 상관있을 것으로 보이는 모든 암을 포함시켜 누락 가능성을 없앴다. 이밖에 화학물질 및 작업환경 분야 66개, 건강영향관리 분야 25개, 산업안전보건 및 복지제도 분야 36개 등 총 127개 개선과제도 제안했다.

▲ 지난달 25일 오전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1년간 진행한 검증결과 발표 및 개선방안 제안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삼성 직업병 조정위의 권고안

조정위원회 권고안은 삼성전자와 ‘독립’된 사회적 기구를 설립해 보상과 예방대책 사업을 총괄하도록 하고, 기구 사업수행과 운영에 필요한 기금 1000억원을 기부하도록 했다. 백혈병, 림프종 등 암뿐만 아니라 유산과 불임 등 질환도 포함하고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포함시켰다.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보상‧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사회적으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등 질환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지난7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이날 조정위는 삼성전자 측에 1천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 설립을 권고하며 반도체 사업체들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도 합당한 수준의 기부를 요구했다. ⓒ정의철 기자



검증위원회 제안 받아들인 SK

▲ SK하이닉스 ⓒ기타


하이닉스는 검증위원회 발표 직후 “외부 검증위원회를 통해 반도체 사업장에 대해 역학조사한 것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처음”이라면서 “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산업보건지원 보상시스템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빠른 시간 내에 노사와 사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 지원보상 위원회를 결성한 후 관련 질병 지원‧보상절차를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정위 권고안 외면한 삼성

조정위 권고안이 나왔지만 삼성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꾸려 보상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제3기구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삼성이 다시 삼성 내 설치된 기구를 통해 보상하고 ‘내부재해관리 시스템 강화’를 통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조정위 구성 이전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올해 12월 31일까지 보상신청 기한을 정하고, ‘최소한의 보상기준’으로 조정위가 포함시켰던 갑상선암‧직장암‧폐암‧유산‧불임 등을 보상대상에서 제외했다.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3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7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이 조정위 권고안을 수용하고 직업병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김철수 기자



달라도 너무 다른 SK와 삼성, 다를 수밖에 없는걸까

일하던 곳에서 자기도 모르게 병에 걸려야했던 노동자들, 가족을 떠나보내야했던 사람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대하는 하이닉스와 삼성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하이닉스가 약속한대로 이행할지 여부는 지켜봐야하지만, 해결방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직업병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드러난 것이다.

반올림은 하이닉스 검증위원회의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하이닉스가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은 신속하게, 독립적인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보장하는 가운데 공정하고 객관적인 절차 속에서 회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며 “삼성전자가 하이닉스를 통해 많은 교훈과 진지한 반성의 기회를 얻길 바란다”는 일침을 가했다.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직업병 피해사례는 220여명에 달한다. 개인탓으로 돌리고 ‘인과관계’를 물으며 사회적 책임을 피하고 있는 삼성. 하이닉스와 다른 행보를 보여야할 이유가 있다면 차가운 시멘트바닥 위에서 12월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해명은 해야하는게 아닐까.


출처  SK는 되고 삼성은 안되고? 직업병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