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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윤석 하차 요구? 엄마부대와 다를 게 뭔가

이윤석 하차 요구? 엄마부대와 다를 게 뭔가
[주장] <강적들> 발언, 맥락상 지역 차별 및 혐오발언으로 읽히지 않아
[오마이뉴스] 박정훈 | 15.12.15 12:59 l 최종 업데이트 15.12.15 13:14


▲ 개그맨 이윤석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전라도당, 친노당'이라고 일컬었다. ⓒ TV조선 갈무리


개그맨 이윤석은 어느새 '개그'를 하기보다는, 박사학위가 주는 똑똑한 이미지를 활용해 토크쇼에 나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JTBC <썰전>의 '예능심판자' 코너가 폐지된 후, 그는 TV조선의 <강적들>로 자리를 옮겼다. 다만 <썰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분명하지 못해서 프로그램의 재미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일, 문제의 발언이 나온 TV조선의 <강적들> 109화에서도 이윤석은 이야기판을 이끌어가기보단 듣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평소 '있는 듯 없는 듯'한 그가 논란이 되는 발언을 던져서 검색어 1위까지 오른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전라도당·친노당' 발언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강적들> 109회 방송 갈무리 장면. ⓒ TV조선 갈무리


이날 강적들은 "문안박 연대로 흔들리는 제1야당, 야당의 총선승리를 위한 '신의 한 수'"라는 주제로 토크가 진행됐다. 다른 패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대안을 이야기한 지 20분이 지나서야, 이윤석은 이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발언 전체를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저는 일개 연예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어차피 무당파고, 중도파고,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러나오는 대로만 말씀드린다면, 약간 보수적이지만 현재 보수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야권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라도당이나 친노당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오래됐어요, 그 이미지가. 저처럼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일단 기존에 있었던 정치인하면 싫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엔 이번에 전면전을 치를 수 있도록 (남의 군사 빌려서 한번 전쟁 시원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해준다면 저 같은 사람들은….

(중략) 저희(중도파) 원하는 건 바둑이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자 우리가 판 새로 만들었으니까 알까기 합시다. 아주 쉬워요. 아주 간단해요. 우리 새로운 알까기 선수 짰어요. 정치에 관심 없었던 분들, 이제 재미있게 한번 해볼게요. 와서 보세요.' 그럼 관객이 생긴다는 거죠."


이윤석은 자기 생각을 너무 '순진하게' 밝혀서 문제가 된 것에 가깝다. 정치적으로 식견이 없다고,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을 볼 때 이윤석 발언 자체를 '지역 혐오 및 차별' 혹은 '야당 비하'로 몰아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하차 요구는 부당해, '표현의 자유' 존중해야

▲ 좋아하는 대통령을 물어보자 이윤석은 박정희, 노무현 두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 TV조선 갈무리


이윤석의 '전라도당·친노당'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더불어 과거에 했던 말들도 주목받고 있다. 이윤석은 처음 <강적들>에 합류한 지난 7월 8일 방송에서 좋아하는 대통령을 묻는 질문에 "굳이 꼽자면 한 분을 꼽는 건 어렵고,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를 이만큼 살게 해준 분이라서 좋아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은 건가 고민을 하게 해준 분이라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8월 26일 방송에서는 친일파 청산과 관련해 "친일파 청산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다만 지금 와서 환부를 도려내고 도려내다 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까 상처를 보듬고 아물도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좋아하는 대통령'과 '친일파'에 관한 의견 그리고 이번 발언까지 놓고 봤을 때, 이윤석은 정치·사회적 이슈에 한해서는 요즘 말로 '뇌청순'에 가까워 보인다. "박정희도 좋고 노무현도 좋다", "친일파는 나쁘지만 지금 와선 청산이 어려우니 힘을 합치자", "전라도당·친노당은 싫다, 기존에 있던 정치인들 싫고 쉽게 판 짜자" 등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는 그의 성향은 '보수'나 '극우'가 아니라 '몰이념', '몰주관'에 가깝다.

그러니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하차 요구는 부당할 수밖에 없다. 야당을 '전라도당·친노당'으로 일컫거나, 과거 '친일파' 관련 발언만 놓고 볼 때 역사 프로그램의 패널 자격이 없는가? 그렇다고 답할 만큼 이윤석이 혐오나 갈등을 조장하고, 부적절한 역사의식을 드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내가 듣기 싫다"는 이유로 야당 지지자들이 이윤석을 하차시키려고 할 경우, 반대로 여당과 정부를 비난한 연예인도, 같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엄마부대봉사단, 탈북엄마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월 20일 오전 서울 목동 SBS사옥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방송인 김제동씨 연예계 퇴출과 <힐링캠프> 폐지를 촉구하며 상복시위를 벌였다. ⓒ 사진제공 미디어몽구


지난 11월 20일, 방송인 김제동이 국정교과서를 반대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 등이 SBS 목동 사옥 앞에서 퇴출요구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다행히 김제동은 여전히 <힐링캠프>의 MC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번에 이윤석이 퇴출당하는 선례가 남을 경우, '야당 옹호 혹은 국정교과서 반대' 의견을 표명한 연예인들 역시 몰매를 맞고 퇴출당할 가능성을 열게 된다. 정치적 의사 표명에 대한 부당한 압력까지 정당화될 수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거나 조장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을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 혹은 유명인들의 더 많은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전략적'으로 하차 요구는 거두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말 못하게 하는 시대'에, 굳이 시민들까지 나서서 누군가의 입을 막을 필요는 없다.


출처  '전라도당' 발언 이윤석, 하차해선 안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