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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전무후무한 정당해산 결정, 그 뒷이야기

전무후무한 정당해산 결정, 그 뒷이야기
[기획-통합진보당 해산 1년, 한국사회 어디까지 왔나 ③]
대리인단장 김선수 변호사 인터뷰

[민중의소리] 오민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2-23 08:09:18


소송기록 17만쪽, 기일 19번, 대리인 17명, 결정문 347쪽...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이 남긴 기록이다. 1년여간 진행된 정당해산 심판의 결정은 박근혜가 부정선거로 청와대를 강탈한지 2주년이 되던 2014년 12월 19일 선고됐고, 동시에 소속 국회의원들은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과연 그 재판과정은 공정하게 진행됐을까? 22일 오후 당시 통합진보당의 대리인 단장을 맡았던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통합진보당 소송 대리인단장인 김선수 변호사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시민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

“당시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창 인기였는데, 헌법재판소 심판정이 마치 시민혁명군이 소총을 들고 중무장한 왕당파를 막기 위해 싸우는 파리 시내의 바리케이드 같았어요.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지키지 위해 맨몸으로 나서서, 중무장한 정권의 총공세를 막아야 하는 상황.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사건을 맡게 됐어요.”

어떻게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맡게 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진보정당의 역사와 그 역할에 대해 평가해야 하고 업무량이 방대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은 김 변호사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을 포용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가 아닌 전체주의 사회로 들어서는 것이고, 이를 막아내는 최전선에 서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리인 단장을 맡게 됐다.

정당해산심판 대리는 변호사들의 ‘분업’으로 진행됐다. 김 변호사의 제안과 모집으로 꾸려진 17명의 대리인단은 법리팀, 목적팀, 활동팀으로 나눠 각 팀별로 자료를 조사하고 서면을 준비했다. 외국 사례를 연구해 정당해산 법리를 정리하고,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것’이라는 정당해산 요건에 맞춰 목적과 활동에 관한 연구 및 정리과정을 진행했다.

“정부측에서 제출한 서류만 트럭 세대 분량이라고 했어요. 당시 우리 사무실에서 서면이나 관련 증거들을 받았는데, 직원들이 전쟁이었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상대방이 증거들을 모두 문서로 제출해서 사무실에서 일일이 다 받았는데, 변호사 방 두 개가 서류들로 꽉 찼었어요.”


한달도 안돼 17만쪽을? 12월 19일에 맞춘 정당해산결정선고

▲ 통합진보당 소송 대리인단장인 김선수 변호사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시민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총 기록이 17만쪽에 달하는 사건이었지만 헌법재판소는 마지막 변론기일(11월 25일)로부터 한달도 되지 않은 12월 19일 정당해산 결정을 선고했다. 통상 일주일 전에는 선고기일을 알려주는데 선고기일도 이틀 전이 되어서야 통지했다. 심지어 결정문에 소위 ‘내란 관련 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명시하는가 하면 날짜를 잘못 표기해 선고 이후 결정문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저희들은 변론 종결 후에 기록을 한번은 다 보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내란음모 사건 대법원 판결은 기다렸다 선고하지 않겠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12월 19일로 선고기일을 잡고 이틀 전에 연락을 줬어요. 대통령 당선 축하 선물로 그날로 잡은건지(웃음). 선고기일도 그렇고 결정문에 잘못된 부분들이 있는 것도 그렇고, 이미 결론은 오래 전에 내려놓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죠.”

“대법원 판결 전에 선고한 것도 의도적인거 같아요. 내란 ‘음모’ 부분은 무죄, ‘선동’ 부분은 유죄였는데, 이건 2명이 선동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응하지 않아서 음모가 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만약 대법원 판결이 먼저 나왔으면, 내란음모를 인정할만한 위험성도 인정되지 않는데 어떻게 정당해산까지 갈지, 그 논리가 막힐거 같으니까 헌법재판소가 먼저 선고한게 아닐까 싶었죠.”


“이미 정해진 ‘8대1’ 구도, 형식적인 재판이 아닌가 의문”

시작부터 끝까지 순탄치 않았을 정당해산 심판 사건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절차 진행부터 문제가 있었어요. 절차적으로도 이미 기울어진 재판이었죠. 재판관들 심증은 확정적으로 형성돼있고, 이후 과정은 그야말로 요식행위에 불과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정당해산심판은 그 절차가 따로 없이 ‘헌법소송의 본질에 반하지 않는 한’ 민사소송절차를 따르도록 헌법재판소법이 정하고 있다. 민사소송 절차에 따르면 모든 수사기록, 신문기사나 개인 블로그 글도 출처만 확인되면 증거로 쓸 수 있다. 반면 형사소송 절차에서는 증거로 쓰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작성자가 나와 자신이 쓴대로 적혀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당시 대리인단은 이를 지적하며 헌법재판소 법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정확한 사실확인을 위해 증거조사가 필요한 정당해산심판에서는 형사소송처럼 증거인정도 엄격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4년 2월 27일 선고 결과는 8대1 합헌 결정. 정당해산결정과 같이 김이수 재판관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관들이 이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 8대1 구도가 최종 결정에도 똑같이 이어지죠.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이 (해산결정문) 보충의견에서 통합진보당에 동조하거나 그 해산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희화화한 부분이 있어요. 대리인단도 그렇게 보고 지극히 형식적으로 심판절차를 진행한게 아닌가 의문이 들죠.”

▲ '헌법소원 제기 및 내란음모사건 기록 현출의 문제점에 관한 소송대리인단 기자회견'에서 단장인 김선수 변호사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사진) ⓒ양지웅 기자


뿐만 아니라 법규정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현재 진행 중인 형사사건’ 기록은 법원이나 검찰에 보내달라고 요구할 수 없지만, 헌법재판소는 당시 1심 재판 진행 중이던 이석기 전 의원‘내란음모사건’ 기록을 수원지방법원과 수원지방검찰청에 요청했다. 대리인단은 이의신청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었기 때문에 요청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원지검은 바로 기록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로 인해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증거로 쓰일 수 없었던 무수한 수사기록, 신문기사, 블로그 글들이 모두 증거로 쓰였어요. ‘쓰레기 증거’들로 넘쳐났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죠.”

재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지적됐던 정당해산심판 사건이지만, 김 변호사는 그 과정에서 감동을 받았던 순간을 전했다.

가장 마지막 증인이 권영길 전 대표였어요. 몸이 좋지 않아 증인으로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 나왔죠. 비록 탈당한 상태였지만, 4시간 넘는 신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본인의 입장을 피력했어요. 자신의 전 인생을 걸어 만든 정당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대남혁명노선’을 따르는 정당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해산심판 청구한 것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그동안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겼죠.


“결국 정치가 중요... 민주적 정권 만들고 헌법재판소, 대법원 구성을 다양하게 해야”

정당해산 결정 직후 김 변호사는 “이 결정을 극복해야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진전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킨 결정이라고 봐요. 민주주의 기본인 다양성과 관용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 연장선상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그 존립근거를 부정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헌법재판관 구성을 보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하고 여당, 야당, 여‧야 공동추천 각 1명씩인데, (대통령, 대법원장, 여당의 입장이 비슷한 상황에서) 소수자를 대변하는게 거의 불가능한 구조가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구성을 바꾸는건 헌법개정까지 필요한 사항이고... 정권을 바꾸면 헌재도 대법원도 구성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해산)결정문에서, 보편적 민주주의가 다 맞는데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유보돼야하는게 아니냐는 부분이 제일 황당해요. 유신독재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며 정당화했는데, 그런 논리를 언제까지 유지할건지... 결국은 정치가 가장 중요한게 아닌가 싶어요. 민주주의 후퇴에 저항하고, 민주적인 정권을 창출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통합진보당 소송 대리인단장인 김선수 변호사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시민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출처  전무후무한 정당해산 결정, 그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