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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음식과 주권, 당신의 밥상은 안전하십니까?

음식과 주권, 당신의 밥상은 안전하십니까?
[점검 - 농산물 수입개방 20년 ④]
마지막 - 농업 회생,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가 출발점

[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1-03 18:12:10


지금까지 우리는 농업의 몰락을 살펴봤다. 무엇이 농업을 몰락시켰고 그 결과 우리 농업은, 그리고 우리 농민은 얼마나 피폐해져 왔는지를 주목했다. 그렇다면 농업의 몰락으로 인해 국민들은 어떤 피해를 보는 것일까.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당신이 먹는 음식은 안녕하십니까?

가장 큰 피해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안전하지 않다는데 있다. 우리는 유전자를 조작해 대량으로 생산한 사료를 먹고, 몸집을 빨리 키우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고, 병을 이기기 위해 항생제를 잔뜩 처방받고 자란 돼지의 살집을 불판에 구워 무슨 약을 쳤는지도 모르는 중국산 마늘을, 미국 어딘가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든 쌈장에 찍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 경기도 양주시의 한 양돈 농가(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한국은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수입하는 국가다. 엄청난 양의 수입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유전자조작 표시를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 최종 산물에 조작된 유전자가 일정량 남아있지 않은 식용유와 간장 등과 같은 식품은 유전자조작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유전자조작 사료를 먹인 축산물 역시 표기에서 면제된다.

농약과 비료와 같은 석유화학물질은 과거에 비해 그 사용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산업형 농업, 특히 대규모 단작화된 농업에서는 오히려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화학물질이 당뇨병과 같이 인체의 내분비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수차례 발표된 바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키우는 공장식 축산에서 각종 질병이 쉽게 발생하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항생제를 투여하고 이 항생제가 인체에 흡수되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짧은 시간에 가축을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성장 촉진제와 성장호르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음식의 안전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관심은 이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됐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로 촉발된 2008년 광우병 촛불은 음식안전의 문제가 전국민적인 정치 의제로 발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국민의 요구는 안전한 음식인데 반해 우리가 먹는 음식은 경쟁력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산업형 농업의 결과물이라는 괴리가 발생해 버린 것이다.


음식 양극화, 무전유병

상대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라고 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과 이를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은 일반 농산물과 식품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소득에 비해 높은 식품비 지출을 감내해야 하거나 아니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안전을 포기한 채 위험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같은 상황은 빈곤층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빈곤층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먹거리의 안전과 영양수준은 열악하다. 무상급식에 제공되는 음식은 주로수입 농산물과 냉동식품을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빈곤층 및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에 쉽게 노출된다.

음식 섭취의 양극화·불평등은 소득수준별 유병률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차이가 크지 않지만 소득이 낮을수록 식원성 질병의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원광대 김홍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식원성 질병으로 분류되는 당뇨의 경우 저소득층의 경우 10.7이었던데 반해 고소득층은 9.4로 낮았다. 빈혈의 경우 저소득층의 유병율은 9.9였지만 고소득층은 7.3으로 26.2%가량 낮았다.

인구 10만명 당 환자수를 살펴보면 과잉행동, 아토피, 천식 모두 빈곤층에서 고소득층의 2배 이상 나타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 서울자치구별 초중고생 비만율을 살펴보면 강북학생들이 강남보다 비만율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도 음식 불평등에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음식, 이제는 기본권이다

1996년 세계농민운동단체인 라비아캄페시나는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음식을 최우선적 기본권으로하는 ‘식량주권’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농업과 음식의 문제가 자유교역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자유교역에 반하는 각국의 농업 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다.

식량주권 원칙에 따르면 국가는 개인을 돌보는 것을 취사선택할 수 없으며 취약계층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고 음식의 태생적인 질병 위험을 감소시키며 모든 음식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한 국가의 정책이나 사회적 개임은 불가침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과 음식은 자유무역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지역, 자국의 음식 생산과 소비는 국민과 정부의 판단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한 정부의 보조금은 다른 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격지지, 생산기반 및 환경 보존 등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자국의 농민과 생산기반에 의한 생산유통소비의 선순환을 구축하고 음식에 대한 접근과 분배,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는 지역사회에 의한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개념이 바로 식량주권의 개념이다.

‘식량주권’ 개념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조사관의 2004년 보고서는 ‘식량권, 식량 생산권, 무역, 투자, 그리고 다른 정책이나 수단으로국내 생산 시스템을 파괴하는 힘과 싸울것을 주장하고 실천할 수 있는대중 및 사회의 자유와 권한’을 지지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13차 보고서에서 시민사회가 세계무역체계에 의해 초래되는 불평등 증가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협력과 연합인 생산자와 소비자연대를 증진시키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이 ‘식량주권운동’이라고 소개했다.

▲ 담양 창평_맛과 영양을 모두 갖춘 담양창평의 모 업체 '약초밥상'의 장아찌. ⓒ제공 : 뉴시스



음식, 이제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자...‘기초농산물수매제’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가 제시되고 있다. 국민에게 제공되는 먹거리를 국가가 책임지고 생산, 비축, 유통하자는 것이 이 정책의 취지다.

정부가 직접수매, 농협 등 생산자 단체를 통한 계약재배 등과 같은 방식을 통해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이를 통해 몰락한 농업이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우리 농업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을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농민들의 생산비를 보장하기 위해 품목별로 최저가격과 국민들이 수용 가능한 최고가격, 즉 품목별 하한선과 상한선을 설정해 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실시되는 직불제도와 같은 직접 소득 보장제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는 수입농산물 증가로 인해 가중된 우리 음식의 위험성을 낮추고 가격 폭등과 폭락으로 생산자와 국민 모두가 받는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출처  “WTO 20년, 새로운 농업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