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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록 “미국 대통령, 광주 5.18과 제주 4.3 앞에 사과해야”

팀 셔록 “미국 대통령, 광주 5.18과 제주 4.3 앞에 사과해야”
‘5.18과 미국’의 진실 ‘체로키 파일’, 광주에 기증하는 팀 셔록
[민중의소리] 최명규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28 20:32:09


▲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렸던 팀 셔록(Tim Shorrock) 기자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한 호텔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미국의 대통령이 광주 시민들 앞에서 공식 사과하는 날이 올까. 미국 정부는 1980년 5.18 광주에서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개입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오래된 거짓말’이다. 미국 정부의 광주항쟁 관련 비밀문건들인 ‘체로키(Cherokee) 파일’이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이 문건들을 입수해 폭로한 주인공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팀 셔록(Tim Shorrock)이다.

셔록은 5.18 광주 민중항쟁 36주년을 맞아 지난 14일부터 26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해 5월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은 지 1년 만이다. 셔록은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동안 5.18의 도시 광주와 4.3 항쟁의 제주로 발길을 향했다. 제주에서는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한 강정마을에도 다녀왔다. ‘민중의소리’는 지난 2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셔록을 만났다. 인터뷰에는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이 도움을 줬다.


“미국 대통령, 광주와 제주에 와서 사과해야 한다”

1980년 광주 5.18과 1948년 제주 4.3에는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항쟁 과정에서 군대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며 미국이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광주에서는 미국이 광주 시민을 상대로 한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묵인, 방조, 승인했다. 제주에서는 미군정이 직접 진압 작전을 지원하고 통제했다. 32년의 간극이 있지만 1948년에도, 1980년에도 한국군 작전통제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었다. 2016년인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셔록은 광주 5.18 기념식에 참석한 다음날인 19일부터 23일까지 제주에 있었다. 그 사이 4.3 평화기념관에도 들렀다. 셔록은 “그전까지 4.3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에서만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셔록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947년과 1948년, 우익 경찰의 폭력에 맞선 대중 시위와 군인들의 항거 이후 미국은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 빨갱이섬)’으로 선포하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 잔인한 진압작전을 승인했다. 서북청년단(A fascist youth group of men who'd left North Korea)은 수개월 동안 지속된 대학살을 자행했다. 그것은 미군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의 지원이 뒷받침된 현대판 홀로코스트였다.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

셔록은 “실제 4.3 평화기념관을 보고 나서 정말 할 말을 잃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며 “미국이 4.3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고 나니 미국인으로서 화가 났다. 아주 중요하지만 숨겨진 역사임을 알게 돼 충격이었다”고 토로했다.

평화기념관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이던 2003년 10월 31일 제주 4.3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하는 장면도 상영되고 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위원회(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셔록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영상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꼬집었다. 바로 제주, 그리고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셔록은 “미국 대통령도 언젠간 4.3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광주에 와서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렸던 팀 셔록(Tim Shorrock) 기자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한 호텔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셔록은 현재진행형인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 역시 미국이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관리들이나 미 해군 관계자들은 강정 해군기지를 이용하고 싶다고 수차례 얘기해 왔다”며 “한미동맹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강정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면서 강정 해군기지 건설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군부와 한국 군부가 예전부터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것이 강정마을의 핵심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는 주일미군 기지가 있는 일본 오키나와(沖繩)가 처한 상황과도 유사하다고 셔록은 지적했다. 그는 “오키나와 현지사는 미 해병대 철수를 바라고 있지만, 미국은 아베(安倍) 정부와의 공조 하에 오키나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오키나와는 미 해군 군무원이 현지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인하는 사건이 발생해 다시금 들끓고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미국은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전화 사과가 전부였다.

셔록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미국 시민들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이 해외에 700곳이 넘는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고 그 수는 더 늘어나고 있다”며 “그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과 미국’ 진실의 기록 ‘체로키 파일’, 광주에 기증하는 팀 셔록

미국 저널 오브 커머스(Journal of Commerce) 기자였던 셔록은 광주의 참상을 전해 들은 이후 1981년부터 광주를 직접 취재해 왔다. 그만큼 광주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그는 광주에 ‘특별한 선물’을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름 아닌 ‘체로키 파일’이다. 그는 지난 18일 윤장현 광주시장을 만나 이러한 의사를 전달했다.

앞서 셔록은 1996년 미국의 정보공개법(FOIA)을 활용해 광주항쟁 관련 미국 국무부의 2급 비밀문건, 이른바 ‘체로키 파일’을 입수해 공개했다. 방대한 양의 문건들 속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미국이 방조하고 승인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미국 정부는 1989년 한국 국회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조사특별위원회에 보낸 공식 백서를 통해 ‘미국은 한국 정부의 군대 동원 계획을 몰랐을 뿐 아니라 특수부대의 광주 투입을 사전에 몰랐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셔록이 공개한 미 정부의 비밀문건들은 이러한 미국의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됐다.

▲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공수부대원들이 쓰러진 한 시민에게 달려들어 곤봉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다 ⓒ5.18 기념재단

1979년 박정희 사살 뒤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한국 동향을 주시하기 위해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워싱턴과 서울 사이의 특별 대화 채널을 가동한다. 암호명 ‘체로키’이다. 여기에는 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CIA(중앙정보국), 합동참모본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서울 주한 미대사관의 최고위급 관계자들이 섭렵 돼 있었다.

1980년 5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워싱턴에 보낸 비밀전문 등을 보면 미국이 한국군 공수부대 이동 및 배치 현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부대 투입을 용인하는 대목도 나온다. 특히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정책검토회의’에서는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사용’을 결론으로 내린다. 광주항쟁에 대한 무력 진압 과정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정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셔록은 이 문건들은 ‘당연히’ 광주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주는 전두환 신군부의 손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한 곳”이라며 “당연히 문건들은 광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셔록은 ‘체로키 파일’을 포함한 비밀문건들을 기증하는 일은 5.18 광주의 역사를 복원하고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에는 이미 당시를 겪어낸 사람들이 있고, 광주는 그 자체로 역사적 현장이다. 여기에 ‘미국의 시각’이 담긴 기록을 더했을 때 비로소 5.18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셔록의 생각이다.

그는 “문건들은 단순히 5.18 광주뿐만 아니라 박정희가 사살되기 전부터 시작해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미국의 역할과 정책을 다루고 있는 문서들”이라며 “미국의 시각이 담긴 문서들이 없으면 광주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셔록에 따르면 ‘체로키 파일’은 방대한 양의 비밀문건 들 중 극히 일부라고 한다. 나머지 문건들 중에는 주한 미 대사관에서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에 보내는 각종 전문들이 포함돼 있어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셔록은 설명했다. 야당 인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YH 사건과 같은 노동운동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고 한다.

셔록은 “이번 기증으로 광주시가 체로키 파일과 문건들을 받게 된다면 많은 연구자들이 미국의 당시 역할과 정책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증할 문건들은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셔록은 말했다. 그는 문건들이 PDF 파일로도 만들어져 더 많은 연구자들과 대중에게 공개돼 5.18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 지난해 5월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재출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팀 셔록 ⓒ양지웅 기자

셔록은 5.18 광주를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1985, 이하 ‘넘어 넘어’)의 유일한 공식 영문판으로 1999년 출간된 ‘광주일지’(Kwangju Diary: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에 저자로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워싱턴의 시각’(The View from Washington)이라는 글을 통해 ‘체로키 파일’이 담고 있는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5.18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책은 지난 2005년부터 절판된 상태이다.

셔록은 “광주항쟁 과정에서 하루하루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물인데 재출간이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 광주에 대해선 영어로 된 출판물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넘어 넘어’는) 미국이나 해외 영어권 시민들에게도 가치있는 자료들”이라며 “하루 속히 영문판이 미국에서 재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판권을 사서 재출간이 될 경우 추가로 비밀해제 된 내용들을 포함시켜 ‘워싱턴의 시각’ 챕터를 수정·보강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광주 정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 5.18 광주민중항쟁을 세계에 알린 외신 기자들이 5.18 36주년을 맞아 다시 광주를 방문했다. 노만 소프·브래들리 마틴·팀 셔록·도널드 커크가 16일 오후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김주형 기자

셔록은 광주 방문 기간에는 5.18을 세계에 알렸던 외신기자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과 마지막 인터뷰를 한 브래들리 마틴(Bradley Martin, 당시 볼티모어 선)을 비롯해 도날드 커크(Donald Kirk, 시카고트리뷴), 노만 소프(Norman Thorpe,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가 그들이다. 이들은 16일 5.18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고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추모식에 참석했다. 힌츠페터는 5.18을 처음으로 외부에 알렸던 독일의 기자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는 이들에게 명예기자증을 수여했다.

셔록은 이들과 함께 광주의 시민과 학생들도 만났다. 그중에는 아버지가 시민군으로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셔록은 “중학생들의 경우에도 정치나 언론에 대해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들을 해서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셔록은 “광주가 5.18을 기억하는 분위기였다. 전 세계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회했다.

셔록은 5.18 전야제 행사에도 참석해 금남로에서 펼쳐진 민주행진에 함께했다. 시민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는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며 “정부는, 어떤 사람들은 광주 정신을 폄훼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광주 정신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 17일 오후 광주 광주공원에서 열린 2016 민주대행진에서 백남기 농민의 가족과 농민들이 금남로로 향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셔록은 박근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식 제창 불가 방침을 내린 데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면서 일어나는 문제가 어떻게 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며 “이는 명백히 광주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성토했다. 또 “광주 사람들이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았으면 그에 대해 화해의 조치들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분란만 일으키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5.18 기념식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유족들의 항의를 받아 쫓겨나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셔록은 ‘광주 정신’의 핵심 중 하나로 ‘연대’를 꼽았다. 그는 “5.18은 단순히 시민군만 아니라 광주 시민 전체가 다 함께 계엄군에 맞서 싸우며 민주화운동을 벌인 것이다. ‘주먹밥’ 에피소드만 봐도 알 수 있다”며 “평범한 시민들은 특전사가 벌이는 참혹한 일들을 보고 시민군에 합류하거나 연대하는 모습들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셔록이 광주뿐만 아니라 제주 강정기지, 노동자·농민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탄압, 오키나와 주일미군 문제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그러한 ‘광주 정신’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셔록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인 24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6개월이 넘게 의식 불명 상태로 누워 있는 칠순의 농민 백남기 씨와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앞서 셔록은 지난해 12월 미국의 주간지 더 네이션(The Nation)에서 백 씨가 참여했던 민중총궐기와 관련해 ‘한국에서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In South Korea, a Dictator's Daughter Cracks Down on Labor)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칼럼이 한국에서 번역돼 알려지자 박근혜 정부는 뉴욕총영사관을 통해 언론사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셔록은 24일 백남기 씨의 딸 백도라지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와 그의 가족들과 연대하겠다. 나는 (미국에) 돌아가면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이다.”

▲ 5.18의 진실을 알린 미국의 저널리스트 팀 셔록(Tim Shorrok, 왼쪽)은 한국을 방문 중이던 5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6개월이 넘게 의식 불명 상태에 있는 농민 백남기 씨의 가족들을 만났다. 오른쪽은 백남기 씨의 장녀 백도라지 씨. ⓒTim Shorrok 페이스북


출처  [인터뷰] 팀 셔록 “미국 대통령, 광주 5.18과 제주 4.3 앞에 사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