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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부문 성과연봉제는 내재적 민영화

의료부문 성과연봉제는 내재적 민영화
[민중의소리]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 발행 : 2016-10-09 13:08:47 | 수정 : 2016-10-09 13:11:07


박근혜 정부는 지난 4년간 지속적인 민영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철도, 전기, 수도, 가스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적 영역을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민간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민영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동원되었는데, 철도의 경우는 민간자본이 투여된 다른 철도구간(수서발 구간)을 만들었다. 가스, 전기는 배급방식 등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러한 ‘민영화’ 시도 중에서 의료부문은 직접적인 ‘영리병원’ 설립시도가 있었다. 더불어 기존의 비영리법인의 사적자본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는 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설립, 병원인수합병 허용 시도등이 나타났다. 물론 민영화에 대한 대중적 반감과 노동조합의 투쟁등으로 이러한 과정은 박근혜 정부의 의도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영리병원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상 최초로 허가했지만, 제주도에 40병상수준의 피부미용병원으로 한정되어 허가되었다. 병원인수합병허용은 지난 국회 말 통과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민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현 정부가 항상 하는 이야기는 ‘민영화’가 아니라는 항변이다. 수서발 KTX도 민영화는 아니고, 효율화이며, 전기, 가스의 민간기업 분배하청도 효율화일 뿐이다. 무엇보다 의료민영화와 관련해서는 항상 하는 이야기가 ‘국민건강보험을 지키므로 민영화가 아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정부는 지난 4년간 국민건강보험을 지켰을까? 지키는 건 기대하지 않지만, 약속을 했으니 많이 망가뜨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공기업 경영평가의 그늘

우선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 들어 누적된 건강보험 흑자는 이제 무려 20조가 넘는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집권 첫해부터 누적흑자를 역대 최고로 갈아치우더니 매년 12조(2014), 16조(2015), 이제는 20조를 넘긴 것이다. 건강보험이 매년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구조라는 점에서 흑자는 그 자체로 현 정부의 의료정책 실패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년 남는 흑자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해야 할 건강보험공단조차 이를 자랑해왔다.

▲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매년 건강보험 흑자를 경영공시로 자랑한 이유는 공기업 경영평가에 흑자경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임원들은 막대한 소득을 챙겼다. 성상철 건보공단 이사장은 작년 말 취임하고도 무려 지난해만 4천348만원의 성과급을 받았고 상임이사진과 상임감사진은 각각 평균 3천478만원, 3천188만원씩을 수령했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쓰지 않았는데, 도리어 임원들은 배를 불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민간보험회사의 임원들이 받는 성과급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다 건강보험 흑자로 각종 펀드투자 및 국공채채권투자를 하는 것도 모자라, 2017년에는 흑자가 있다고 법에 명시된 국고지원금액도 축소한 상황이다. (건강보험재정 순증상황에서 무려 2000억 축소발표) 이는 건강보험제도를 전적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고, 건강보험 재정도 민간보험처럼 금융자산으로 관리하겠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이를 위한 큰 틀 중 하나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의 수익성 중심 기준이었다. 암튼 이런 정도니 박근혜정부는 건강보험을 지키기는커녕 망가뜨렸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상황은 여타 공기업도 비슷하다.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그냥 서비스 쥐어짜기, 노동강도강화, 비정규직 고용 등을 통해 흑자경영만 하면 도리어 평가점수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경영평가 지표는 실제로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에만 맞춰져 비정규직고용을 늘리고, 서비스질이 하락하면 점점 더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공기업경영지표가 수익성 중심이 되면서, 사실상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비슷하게 기능하도록 강요받았다.

의료영역에서는 건강보험뿐 아니라, 공공병원에도 이런 지표가 적용되었다. 때문에, 공공병원들도 돈 안되는 공공의료 서비스나, 적정진료보다는 비보험진료나 부대사업에 더 집중했다. 최근 들어 공공병원에 저소득층이 더 입원하기 힘들게 되고, 보라매병원등은 로봇수술 같은 고가의 비보험 수술을 할 경우 성과급을 적용하려는 문서까지 공개된 상황 모두가 이런 경영평가의 여파다. 국립대병원들도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채산성과 수익성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최근에 서울대병원은 지하 1층에 대대적인 쇼핑몰을 열려고 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따라서 공기업 경영평가는 직접적인 ‘민영화’ 조치는 아니지만, 공적 역할을 훨씬 더 영리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외재적 ‘민영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재적 민영화

이런 경영평가를 통한 전체적 ‘민영화’압력을 박근혜 정부는 행사하면서, 이번에는 또 다른 방법을 강구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현 정부는 성과급을 통해 경영효율화, 일하는 공기업을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사실 공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근간을 유지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느냐 인데 말이다.

▲ 29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파업 총력투쟁 집회에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조합원들이 성과연봉제·퇴출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 총력투쟁 사전집회를 여의도 KBS 앞에서 진행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암튼 정부 주장은 공공부문 노동자들까지 성과에 따라 임금을 구분해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기업의 상당수가 이렇게 하여 매우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앞서 보았듯이 공기업의 임원들에게 도입된 성과급을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일단 임원들의 성과급은 앞서 말한 공기업 경영성과와 연동되어 있었다.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의 임원 중 누구도 건강보험 흑자를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을 위해 사용하자고 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를 못 쓰게 쥐어짜고, 생계형 체납자들의 체납율을 낮출수록 성과급을 더 받았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을 민간보험회사와 비슷하게 만드는 효과였다.

이런 탈공공적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낙하산 임명된 건강보험의 이사장과 임원들이 모두 성과급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그동안 저항하며,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과 건강보험 강화를 위해 싸워온 것은 다름 아닌 건강보험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었다. 건강보험 노동자들의 주된 역할은 건강보험을 잘 관리해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사장이 아니라, 주로 조직된 노동조합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건강보험 노동조합은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써야한다고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해 왔다.

또한 건강보험 노동자들은 소득이나 상황에 맞추어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경감방안등을 제안하고, 눈감아준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일선에서 가난한 체납자들의 형편을 조정하는 것이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이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기존의 진급심사정도에 적용되던 징수실적이 연봉에 반영되면서, 생계형 체납자를 비롯한 빈곤층의 보험료 징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민간보험회사의 ‘보험왕’ 경쟁과 비슷한 구조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의 올바른 사용을 주장해온 노동조합도 내부의 성과급 경쟁과 분열로 전 국민의 건강권 확보에 취약해 질 수 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건강보험의 성격이 공적보험으로 공공서비스의 보루가 아니라, 민간보험사처럼 성과에 따른 연봉을 받고, 경영실적으로 평가받게 됨으로써, 사실상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의료비 긴축에 동참하게 되는 효과다.

앞서 말한 공기업 경영평가와 성과급이 모두 도입되면 건강보험공단의 메커니즘은 보장성 강화가 아니라, 보장성 답보 혹은 축소를 통한 공단의 실적 강화(흑자 유지)에 완전히 맞춰진다. 내부의 동학도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적 성과급 경쟁만이 남는다. 이는 가뜩이나 의료비 부담으로 어려운 국민들에게는 재앙이고,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과 마찬가지의 수익자부담 구조로 바뀌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민영화’와 다름없다.

이런 과정 때문에 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실상 내재적 ‘민영화’ 조치이고, 직접적으로 ‘민영화’를 주장하지 않지만, ‘민영화’로 가는 꼼수다.

▲ 12일 오전 공공운수노조 공공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원들이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성과급제 반대, 최업규칙 개악 저지' 의료공공성 확충을 위한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공기업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에 연대하자

지금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서울대병원을 위시한 병원이 파업 중이다. 주된 쟁점은 공기업 성과연봉제 저지이다. 국민건강보험은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전국민건강보험의 산물이고,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건강보험 통합운동의 성과이다. 이를 민간보험회사처럼 바꾸려는 시도 중 하나가 성과연봉제 도입이란 것을 건강보험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병원노동자들도 이미 의사성과급제로 수많은 ‘과잉진료’와 ‘인력쥐어짜기’를 경험했다. 만약 공공병원에 노동자들에게도 성과급이 도입된다면 병원에서 돈벌이경쟁이 극한에 도달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매우 더딘 과정이지만 IMF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공공서비스가 날로 영리화 되는 과정의 완결판이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근간인 노동자들의 ‘공공의식’을 말살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정신, 공공성은 물론이고, 사회전반의 공공성이 말살되게 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별다른 설명도 없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이간질하던 수법처럼, 공기업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이간질해서 마치 ‘철밥통’이 고임금을 유지하려 파업을 한다고 선동적으로 비난하는 보수언론과 정부야 말로 자신의 기득권과 뻔뻔스러움을 드려다 봐야 한다. 지금 성과연봉제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선 파업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내자. 지금 남의 일처럼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앞으로 우리가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받을 때 나와 우리 아이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 있다.


출처  [건강권 칼럼] 의료부문 성과연봉제는 내재적 민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