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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성과연봉 옥죄면서…금융사 경영진 ‘보수환수제’ 뒷걸음

직원 성과연봉 옥죄면서…금융사 경영진 ‘보수환수제’ 뒷걸음
경영진 보수 규제 법률 만들면서 빼버려
미국·영국 등 강화 추세와 정반대 행보

[한겨레] 이정훈 기자 | 등록 : 2016-10-10 05:00 | 수정 : 2016-10-10 08:31


정부가 금융회사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고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지만, 정작 경영진의 성과를 관리할 ‘보수환수제’는 후퇴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분식회계로 조작한 성과를 기반으로 고액 보수를 챙긴 대우조선해양의 전·현직 임원뿐 아니라 부실관리 책임이 큰 전직 산업은행장들 역시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챙겨 떠났어도 이를 환수할 법적 기반이 미비한 상태다.

9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과거 금융당국이 ‘모범규준’으로 권고하는 형태의 가이드라인으로 존재했던 ‘경영진에 대한 보수 축소나 환수 등에 관한 규정’(malus or clawback arrangements)이 올해 8월부터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선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경영진의 실적 부풀리기나 비리가 사후에 드러난다 해도 이미 지급한 보수를 되돌려받거나 분할 지급하기로 했던 성과급을 추후 드러난 잘못에 근거해 축소하는 제도적 기반이 사라진 셈이다.

앞서 2010년 금융당국이 금융지주회사를 비롯해 은행·증권·보험 등 업권별 가이드라인으로 마련했던 ‘성과보상체계 모범규준’에는 경영진과 특정 직원에 대해 ‘재무성과가 목표에 미달하거나 손실이 발생한 경우 성과급을 축소나 환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이 공통으로 담겨 있었다. 경영진뿐만 아니라 주식·채권·파생상품 거래 담당 등 성과에 따른 보수 변동이 큰 투자업무를 하는 직원을 이르는 ‘특정 직원’까지도 보수 환수 대상으로 삼았다. 이로써 경영진이나 특정 직원이 높은 보수를 좇아 실적을 부풀리거나 단기 성과에 매달리고 금융 거래에서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구조적인 제어장치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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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과에 대한 사후 검증과 위험 제어장치는 점차 후퇴의 길을 걷는다. 금융당국은 업권별로 분리돼 있던 2010년 모범규준을 통합해 2014년에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새로 내놓았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보수환수’ 규정은 사라졌으며, ‘축소’ 규정만 남았다. 이어 이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지난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나, 축소 규정마저 자취를 감추게 된 셈이다. 새 법에선 임원과 투자업무를 담당하는 특정 직원에 대해 성과급을 3년 이상으로 나눠 지급(이연 지급)하라는 내용만 포함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권고 차원인 모범규준을 폐기하고 강제성이 있는 법률로 규제를 대체하다 보니, 법령엔 지켜야 할 최소한만을 담게 됐다”고 말했다.

보수환수제가 이렇게 뒷걸음친 상황에서 경영진의 급여를 환수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자체 규정을 마련한 곳은 케이비(KB)국민·신한·케이이비(KEB)하나은행 세 곳뿐이다. 삼성·한화그룹 등 재벌그룹 소속 금융회사들은 현행법이 규정하는 대로 성과급을 추후 나누어 지급하도록 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 의뢰로 작성한 ‘보수환수제도 관련 조사’ 보고서에서 “회사가 자발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금융회사뿐 아니라 상장사 전체에 대해 보수환수제를 의무화할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와 달리 미국이나 영국 등은 보수환수제를 계속 강화해왔다. 미국은 2002년 사베인스-옥슬리법에 이어 2012년 도드-프랭크법으로 보수환수 대상을 금융회사에서 상장기업으로 확대하고 환수액 범위도 1년치 성과급에서 2년치로 늘렸다.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해 내부 규정으로 이를 강화했다. 최근 미국의 4대 은행인 웰스파고 이사회가 ‘유령계좌 스캔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CEO) 존 스텀프한테 4,100만달러의 보수를 토해내도록 한 것도 이런 제도적 환경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실제 미국 경제매체 <포천>이 선정한 100대 기업 가운데 90% 이상(2014년 기준)은 보수환수제를 도입했다. 영국 보험사 로이즈도 2012년 보험상품을 불완전판매한 책임을 물어 전 최고경영자인 에릭 대니얼스 등으로부터 2년 전 지급한 성과급을 환수한 사례가 있다.

한편, 맹수석 충남대 교수(법학)는 “정부가 마련한 법률은 임원 보수의 도덕적 해이를 충분히 규율하지 못한다. 특히 경영진의 과도한 위험추구나 지배권 남용을 막기 위해 환수 제도 등 부당한 임원 보수에 대해 사후적 조정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 6일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보상을 챙겨 떠나면 그만’이란 금융권 관행을 지적받자, “보수환수제 도입 취지에 동감한다”고 원칙적인 답변을 내놨다.


출처  [단독] 직원 성과연봉 옥죄면서…금융사 경영진 ‘보수환수제’ 뒷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