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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블랙리스트를 넘어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블랙리스트를 넘어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박근혜와 함께 청산해야할 과제 - 문화예술
[민중의소리] 배인석 화가, 한국민예총 사무총장 | 발행 : 2017-01-03 11:50:10 | 수정 : 2017-01-03 11:50:10


고백할 것인가? 고발당할 것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2016년 10월 10일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자료를 분석한 도종환 의원에 의하여 최초로 폭로되었다. 이틀 뒤 한국일보는 <세월호 선언 등 9,473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확인> 보도를 통해 2015년 5월 작성된 블랙리스트의 명단을 세세하게 공개했다. 그 날로 문화예술계와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박근혜 정권은 탄핵의 사유가 된다며 강하게 내질렀다. 자연스럽게 사건의 진상규명이 꼭 필요한 정국이 조성되었다.

이후 국회에서는 11월 1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첫 회의를 시작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다음 날인 11월 18일 한겨레는 <조윤선의 정무수석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주도>란 기사로 복수의 전·현직 문체부·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달을 주도했음을 밝혔다.

분노한 문화예술계는 11월 4일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무기한 예술 행동에 들어갔으며, 12월 12일에는 블랙리스트 작성과 문화예술계 검열 사태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을 특검에 제출했다.

12월 2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동안 청와대와 문체부가 부정해 왔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날 SBS는 블랙리스트 파일의 실체를 공개하고 이는 일부이며 실제로 더 방대한 규모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보도를 덧붙였다.

그리고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또한 블랙리스트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돼 문체부로 넘어왔다고 폭로하고, 조현재 전 문체부 1차관 역시 조윤선 장관이 블랙리스트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2월 28일 국조특위에서 조윤선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고 특검에서 밝혀줄 것이라 확신을 하였다.

그러나 12월 30일 특검팀은 오히려 국조특위에 위증혐의로 조윤선 장관과 김종덕 전 장관, 정관주 전 1차관을 위증 혐의로 고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국조특위는 다가올 2017년 1월 9일 결산청문회에서 이들에게 위증혐의에 대한 최종 해명 기회를 줄 것이라 공표하였다.

과연 이들은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것인가? 아니면 고발을 당할 것인가?


직권 남용인가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죄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리 통치자의 입장에서야 공무원의 직권남용 정도에 해당하지만, 주권자이기도 한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고 정권에 의한 검열이자 사찰이므로 박근혜 정권의 탄핵은 헌재에서 마땅히 인용되어야 한다. 그럼 문화계에서 박근혜와 함께 탄핵당하여야 하고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만 간단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간보고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공무원 하기 좋은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물며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란 게 창조니 융합이니 낱말 놀음을 하며 결국 최순실과 차은택에게 예산 몰아주기에 급급하였다는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반면 예술가들은 탄압과 사찰로 예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거나 길들이기를 시도하여 자신들의 악행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도록 위협하였다.

이 사건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이는 국가운영을 담당하는 공무원 사회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줄 세우기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문체부의 관료들이 예술이 펼쳐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알아듣기에 더 노력하기보다는 부당한 정권의 수족으로 전락하는 공무원의 영혼 제거 작업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정권이 요구한 부당한 업무를 거부하면 사퇴시키고 경질하거나 좌천시키는 일들이 벌어져도 시민사회에 어떠한 신호도 보낼 수 없는 곳이 우리의 관료사회임을 심각하게 확인한 것이다.

아쉽게도 박근혜 정권의 문화융성은 블랙리스트 사건이 원초적으로 실행하기에 불가능한 소신 있는 관료사회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에서 나름대로 타격이 큰 곳이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관료사회라고 본다. 때문에 문체부등 그와 관련한 공직자들이 소신껏 일을 하고 문화예술의 원리에 맞게 직분을 지키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공무원 노조의 노동 삼권과 내부고발제도, 정보공개 등 공직사회가 바로 설 수 있는 다양한 방안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비밀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곳이 공직사회가 되어야 하므로, 그동안 필요 없는 보안 조치와 비밀의 해제로 공무원 하기 좋은 사회를 문화 종사자 등 시민사회와 함께 꿈꾸어야 한다.

▲ 1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관련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증거인멸 중단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화는 주권자의 근원적인 권리

문화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분명 문화도 생물이며 진화하거나 퇴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화도 생명체로 살아가기 위한 자양분이 필요하고 이를 지켜내고 보장하는 제도와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분명 헌법의 가치는 주권자를 중심으로 그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속에서 문화의 권리는 헌법의 핵심가치에 부합되는 정책으로 진화하여야 한다. 문화는 인간의 기본 인권의 한 형태로 개념을 확장하고 물권과 환경권에 부합하는 가치를 더 넓게 포괄하여야 한다.

이미 2005년 문화헌장을 준비했던 노명우의 문화헌장 제정과 문화정책의 과제를 보면 “문화헌장은 체계 없는 문화정책의 기본 골간이 되는 문화정책의 철학을 수립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문화통제라는 과거의 권위주의 국가의 유산을 시민의 문화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사회 협약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이다”라고 했으며 또한 “문화정책에 대한 홀대는 문화 관련법들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 관련 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들은 문화적 원리를 반영한 법이라기보다 영역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법률이라는 성격이 매우 강하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문화 정책의 반동 현상을 분명히 느끼기에 족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의 정책 수립과 실천은 주권자인 시민의 근원적인 권리이자 이 권리에 대한 보위는 국가와 정권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문화 다양성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장예술을 중심으로 근원적인 문화의 가치와 원리를 밝혀내고 제도화하는 힘과 이를 지켜나가는 힘이 바로 문화혁명이 아닐 수 없다.


출처  [배인석 칼럼] 블랙리스트를 넘어 ‘문화혁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