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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함으로 가득했던 김기춘 50년 악행의 마침표

추악함으로 가득했던 김기춘 50년 악행의 마침표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발행 : 2017-01-21 03:53:57 | 수정 : 2017-01-21 03:53:57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서울구치소로 인치되기 위해서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됐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이기에 더 이상의 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로써 추악함으로 가득했던 그의 50년 악행도 마침표를 찍게 됐다.

김 전 실장의 추악한 인생의 시작은 유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에는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등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하고,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며 일명 ‘체육관 선거’를 가능케 한 대통령 간선제로 전환 등 퇴행적 조항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김 전 실장은 유신헌법 조항 중 대부분을 입안한 인물이다. 김 전 실장은 유신헌법 제정 작업에 최연소 검사로 참여했다.

김 전 실장은 이 공을 인정받아 동기들에 비해 무려 4단계 빨리 승진했으며, 불과 37세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의 자리에 앉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자행된 각종 조작 사건에 관여해 독재를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난해 조작으로 최종 판명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물론 재일교포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민청학련 사건, 2차 인혁당 사건 등 독재 정권을 유지하게 해준 숱한 조작 사건들이 모두 김 전 실장의 작품이다.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에도 그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독립운동가 출신에다 ‘재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장 선생이 어느 날 산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머리에는 대형 해머로 내려친 구멍이 발견됐다. 중앙정보부는 이 사건을 ‘실족사’로 발표했는데,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신직수였고, 신직수의 혈맹동질로 불리던 김 전 실장은 중앙정보부 5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김 전 실장의 화려한 인생은 그대로 유지됐다. 검찰총장(1988), 법무부 장관(1999), 3선 국회의원(제15~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1996~2008)을 거쳐 2013년 8월 박근혜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1992년 법무부 장관 시절 14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부산시장, 검찰총장등 기관장 불러 놓고 “민간에서 지역감정 일어나야 된다. 부산 놈들 본때를 못 보이면 다 죽어야 된다. 언론사에 돈을 주면서 선거운동을 해라”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되며 부정선거 혐의의로 처벌받을 뻔했다가 기사회생했다. 초원복집이라는 한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초원복집 사건’으로 불렸다.

한나라당 의원 시절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의결을 주도했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장이 김 전 실장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김 전 실장의 악행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언론에 처음 공개된 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업무수첩(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각종 국정에 개입해 여론조작, 사법농단 등을 주도한 정황이 발견됐다.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헌법재판소 소장과 내통해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물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총괄하고, 반정부 성향의 법조인들의 활동을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한 정황 등이 낱낱이 담겨 있었다.


출처  추악함으로 가득했던 김기춘 50년 악행의 마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