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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박근혜쇼’와 태극기, 그리고 정치공작 금지법

‘박근혜쇼’와 태극기, 그리고 정치공작 금지법
[한겨레] 김이택 논설위원 | 등록 : 2017-01-26 16:30 | 수정 : 2017-01-26 20:22


인터뷰라기보다 코미디에 가까웠던 25일 심야의 ‘박근혜쇼’는 “모두가 거짓말”이고 “누군가 기획”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또 하나 ‘허걱’ 했던 건 태극기 시위대에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시위에 가겠느냐’는 의도된 듯한 질문에 “아직”이라고 여지를 남겨놓은 대목이다.

박근혜 청와대는 ‘태극기’를 손에 든 극단세력을 정치공작의 행동대로 부려왔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2014년 7~9월치엔 박사모 등을 시켜 박지원 박범계 권은희 등 야당 의원들을 고발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실제 그대로 집행됐다.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은 어버이연합을 동원한 <다이빙벨> 상영 반대 시위 등 반세월호 집회를 지시했다. 패륜적인 폭식 투쟁도 이들의 작품일 것이다.

정무수석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은 ‘국민’ 대신 극소수 특정 국민과만 소통하며 돈까지 지원했다. 허현준 행정관은 세월호 유족 반대 집회뿐 아니라,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시위에 맞설 구상을 하라고 자유총연맹 고위관계자에게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좌파’라며 블랙리스트에 올린 문화예술인과 단체의 돈줄을 끊고, 대신 반대편 우익단체들엔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자금을 지원해줬다. 폭탄주를 오른쪽으로 돌릴 땐 ‘우익보강’, 왼쪽으로 돌리면서 ‘좌익척결’을 외쳤던 공안검사 시절 다짐을 실천했다.

탄핵 가능성이 커지면서 탄핵 반대 시위대도 결집 중이다. 이들 모두 그렇지는 않겠으나 박근혜 청와대가 동원한 정치공작 행동대의 흔적이 엿보인다.

최근 집회에선 “탄핵되면 폭동”, “군대여 일어나라” 등의 수위 높은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아버지 시대 이래 수십년 쌓아온 명예와 권력까지 모두 잃고 쫓겨날 처지라면 그 앞에 나가 마지막 호소를 해보고 싶은 유혹도 느낄 법하다.

▲ 우익단체의 탄핵반대 시위


우익을 동원한 정치공작은 김 실장 때만의 문제가 아니다. 허 행정관이 자유총연맹에 문자를 보낸 시기는 2015년 10~12월로 김 실장 퇴임 이후다. 또 박근혜 청와대만의 일도 아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서 드러났듯이 국정원 심리전단의 우익단체 동원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 그대로 두면 설사 정권이 바뀐다 해도 형태만 바꿔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로 자랄 것이다. 입만 열면 빨갱이요, 현수막엔 ‘종북’투성이인 조직이 보수일 수도, 시민단체일 수도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두 재단 비리와 기밀누설 등 국정농단을 핵심 사유로 해서 특검 수사와 탄핵심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블랙리스트와 김영한 업무일지가 돌출하면서 정치공작이 그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다.

공작이 비리보다 약한 죄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뿌리 깊은 조직범죄란 점에서 헌법과 민주주의에도 더 위협적이다.

태극기 집회의 극단적 구호에서 보듯 탄핵과 대선 등 향후 일정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암세포를 서둘러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전진하고 민주주의도 정치도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특검은 검찰로 넘길 모양이다. 일정상의 제약도 고려한 것 같다. 일정을 연장하거나 별도 특검을 해서라도 정치공작의 전모를 밝히고 책임자를 단죄해야 한다.

법적 정비도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무는 정치공작을 자행해도 공직자는 직권남용 정도고, 행동대는 집시법 위반이나 폭력 등 개별범죄 아니고는 처벌할 근거가 없다. 죄악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정치공작 금지법’을 만들어서라도 엄히 단죄해야 한다.


출처  [아침 햇발] ‘박근혜쇼’와 태극기, 그리고 정치공작 금지법 / 김이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