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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성조기를 든 노인들의 투쟁

성조기를 든 노인들의 투쟁
[민중의소리] 이정무 편집국장 | 발행 : 2017-03-02 08:59:27 | 수정 : 2017-03-02 09:23:08


사무실이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역 모퉁이에 붙어 있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를 접하게 된다.

점심시간에 방송차가 한바퀴 돌고나면, 오후엔 10여명의 ‘태극기’ 부대가 시위를 시작한다. 4시쯤 시작해서 5시에 끝나는 이 시위에선 어릴 때부터 들어서 익숙한 군가와 ‘건전가요’가 나온다. 이젠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할 정도가 됐다.

삼일절에는 좀 더 큰 규모의 시위대가 안국역 앞으로 행진해왔다. 큰 규모의 시위엔 으레 등장하는 성조기는 삼일절이라 그런지 좀 줄었다. 그래도 드문드문 성조기가 보이는 걸 보면 의아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들에게 성조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나마 기자의 소속을 묻지 않고 질문에 답해준 한 시위 참가자는 지금을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의 국난”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 종북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촛불 시위를 누르자면 미국의 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탄핵 정국의 어디에서 북한과 미국의 그림자를 보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거 다 유투브에 있다”고 대답했다.

국회도, 언론도, 검찰과 헌법재판관도 모두 종북이니 믿을 건 미국밖에 없다는 건데, 막상 그런 미국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 같으냐고 물으니 벌컥 화를 낸다. 대화는 여기까지 였다.

이런 인식 자체는 사실 더 논쟁할 것도 없다. 아무런 증거도 없고, 극단적인 보수 매체들도 전개하지 않는 논리이니 시간이 지나면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집회의 양상이었다.

앞서 대화에 응했던 시위 참가자도 이번이 두번째였다고 했다. 집회는 그이에게 신세계였다. 차도를 걷고, 큰 소리로 외치고, 뜻을 같이한다고 믿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로 보였다.

시위의 문화만큼은 촛불 시위를 그대로 따라간다. 방송차를 앞세우고, 짧게 구호의 뒷부분을 따라 외치고, 흔히 ‘4박자’ 구호라고 하는 4자짜리 구호를 반복하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는 현수막에 쓰인 글귀 “이게 나라냐, 이게 민주주의냐”까지 비슷했다.

돈을 주고 동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매주마다 몇 만, 몇 십 만이 모이는 시위가 처음부터 끝까지 금력을 이용한 동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조기를 든 이 시위에도 인간의 집단적 정치행동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활력은 분명히 느껴졌다.

집회를 마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잠시나마 이 사회의 주인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의지를 과시했던 사람들은 집으로, 일터로 돌아가면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잠겨든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촛불이건, 태극기(혹은 성조기)건 마찬가지다. 두 집회의 정당성이나, 역사적 의미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참가자가 느끼고 배우는 건 비슷할 수도 있다.

진정한 차이는 미래에서 생겨날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느냐, 기각되느냐 혹은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광장의 자유로운 공기가 각자의 집과 일터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쪽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촛불은 완승을 거두지 못했다.


출처  [데스크칼럼] 성조기를 든 노인들의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