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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강탈한 ‘장물’ 영남대학을 시민의 대학으로

박정희가 강탈한 ‘장물’ 영남대학을 시민의 대학으로
[민중의소리] 정지창 영남대정상화대책위 공동대표(전 영남대 교수) | 발행 : 2017-06-18 12:42:38 | 수정 : 2017-06-19 08:46:08


저는 1984년부터 2013년까지 영남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였습니다. 30대 후반부터 근 30년을 영남대에서 보낸 셈입니다.

저는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구지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영남대재단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약칭 영남대정상화대책위)에 참여하여 박근혜의 영남학원 복귀에 반대하고 새마을 정책대학원과 박정희 리더쉽연구소의 설치를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정년퇴직과 함께 거의 자동적으로 수여되는 ‘명예교수’ 자격을 거부당했습니다.

명예교수라는 지위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정책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그 자격을 박탈한 것은 자유로운 학문연구와 토론, 비판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대학의 본질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였습니다.

당시의 교무처장이 “삼성에 근무하면서 회사의 정책에 반기를 들면 그냥 놔두겠나”라는 말로 저에 대한 명예교수 자격 거부를 정당화했다는 말을 듣고 대학이 회사처럼 변질된 데 대해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습니다.

▲ 영남대 교수회, 직원노동조합, 비정규교수노조 등 5개 단체는 지난 13일 오전 영남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재단 정상화를 위한 제 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법인 영남학원의 적폐를 청산하고 참된 학문공동체 회복을 구현하자며 캠퍼스를 돌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평생을 바쳐 제자들을 가르쳤고, 교무부총장 등 보직을 맡으면서 헌신해온 대학이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팠습니다.

대다수의 교수들과 직원, 동창, 학생들이 박근혜의 정치권력에 기대어 학교를 발전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의 뿌리깊은 박정희 신화가 영남대학을 일종의 신앙공동체로 만들어버린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정희 신화는 겉으로는 자유로운 듯이 보이는 영남대학의 실질적인 토대이고 그 구성원들의 내면화된 의식이라는 것을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1980년대의 영남대는 박근혜의 품안에서 그녀가 파견한 비선 실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4인방이라 불리는 박근혜 이사의 측근들은 총장을 비롯한 학교 보직자들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각종의 비리와 권력남용으로 대학을 농단하였습니다. 급기야 1988년에는 입시비리가 발각되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4인방 가운데 한 명이 구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국회의 국정조사단이 영남대를 방문하여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입시부정을 비롯한 각종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최근 국회의 청문회와 특검의 수사를 통해 밝혀진 청와대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은 이미 1980년대 영남대에서 벌어진 비선실세들에 의한 학원농단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국정조사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정관 1조에 명기된 “교주 박정희”라는 문구였습니다. 김동영, 이종찬, 박관용 등 국회의원들이 영남대에 한 푼도 출연한 적이 없는 박정희를 “교주”로 못박은 것은 시대착오적인 처사라며 정관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였고, 조일문 이사장도 “교주” 개념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개정을 약속하였습니다. 이후 박근혜는 입시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영남학원 이사진에서 불명에 퇴진하였습니다.

박근혜와 그녀의 비선실세인 4인방이 영남대학을 떠난 후 직선제로 선출된 김기동 총장은 외부로 빠져나가는 돈이 없으니 등록금만으로도 학교 운영에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근혜 지배하의 영남학원 재단은 경주 최씨 문중에서 기증했던 최씨 문중의 선산을 비롯한 부동산을 대거 매각했는데 문중에서 선산을 되사겠다고 제의했는데도 불구하고 헐값에 그 땅을 매각한 이유와 매각 대금의 행방에 대한 의혹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영남대학은 관선 이사와 직선 총장 체제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정관 제1조의 “교주 박정희 선생”이라는 문구는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 안에서는 임시이사 체제로는 학교발전에 지장이 있으니 책임감 있는 주인이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금씩 확산되었습니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로 부각되자 여론조사에서 교수와 직원, 동창의 약 80%가 학교를 다시 박근혜에게 맡기자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때서야 저는 박정희 신화가 영남대 구성원과 지역사회의 의식 밑바닥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였고, 학원민주화 이후에도 “교주 박정희 선생”이라는 문구가 왜 정관에서 사라지지 않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영남대 구성원들과 동창, 지역 시민들은 민립대학인 구 대구대와 청구대가 1967년 영남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두 대학 설립자들의 의사가 무시된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후 영남대가 박정희의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경산 캠퍼스로 옮겨와 비약적인 발전을 한 사실에 은연중 자부심을 느끼면서 오히려 ‘왕립대학’이라는 별칭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것입니다.

영남대의 특권적 지위에 대한 애착과 ’박정희 신화‘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도덕성이나 정통성보다는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가치판단의 준거로 작용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교주 박정희 선생”이라는 문구는 박근혜가 영남대에 복귀한 2009년 슬며시 “설립자 박정희”로 바뀌게 됩니다.

저는 입시부정과 비선실세의 학원농단에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박근혜에게 영남학원의 운영권이 넘어가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영남대의 통합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 5.16 군사쿠데타 직후의 박정희 ⓒ자료사진


영남대 합병 과정,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과정 보는 듯해

대구대(경주 최부자 최준 선생을 비롯한 영남 유림의 공동 출연으로 1947년에 설립된 민립대학. 현재의 대구대와는 다름)와 청구대(1950년 최해청 선생이 시민대학으로 설립)가 영남대로 합병되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처럼 보입니다.

1967년 12월 15일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두 학교의 합병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휘로 영남대설립이사회가 열려 미리 준비된 합병약정서를 통과시켰는데 사립대학의 합병을 위한 이사회에 문교부 법무담당관이 참석하여 조언을 하고 진행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회의에 참석한 경주 최부자 가문의 종손 최염 선생의 증언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문교부는 바로 다음날 설립인가를 내주었는데, 이사진은 모두 박정희의 측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의해 K스포츠 재단이나 미르재단의 설립인가가 하루 만에 나온 것과 흡사하지요.

그러나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들과 그 후손들은 이 같은 합병이 설립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박정희 권력에 의한 학원 강탈이라고 주장합니다.

대구대학은 설립자인 최준 선생이 학교 발전을 위해 삼성의 이병철에게 아무 조건 없이 운영권을 넘겼는데, 1966년 삼성이 경영하던 한국비료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한국비료와 대구대학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는 과정에서 “한국비료와는 달리 대구대학은 국가가 아닌 대통령 개인에게 헌납한 결과가 되었다”고 최준 선생의 손자인 최염 선생은 증언합니다.

헌납과 통합에 반대하던 최준 선생은 통합이사회에 참석했다가 각본에 따라 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중도에 퇴장했습니다. 청구대학의 설립자인 최해청 선생과 그 아들인 최찬식 선생은 1967년 청구대학이 신축교사 붕괴 사고로 위기에 처했을 때, 최해태 학장과 이은상, 심재완 교수 등 일부 인사들이 설립자와 상의도 없이 박정희에게 대학을 상납했고 이 과정에서 설립자인 최해청 선생은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청구대 설립자인 최해청 선생은 영남대를 “장물(臟物) 학교”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최찬식 편저, 『靑丘證言』 참조). 대구대 설립자인 최준 선생의 손자 최염 선생은 이러한 시각에서 영남학원은 정수장학회와 더불어 ‘쌍둥이 원조 장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거시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영남대학교의 설립은 청구대와 대구대를 설립한 독립운동가인 최해청, 최준 선생으로부터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및 정권의 실세들)가 약탈하는 과정”이며 “영남학원의 학원민주화운동은 끊임없이 영남학원이라는 ‘공익재단’을 ‘사유화’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영남대정상화대책위의 함종호 공동대표는 정리하였습니다.

2006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육부는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던 사립대학들을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종전의 비리재단에게 돌려주는 일에 앞장섭니다. 보수적인 법관들이 주도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를 이용하여 분쟁 대학의 운영권은 무조건 종전 재단에게 넘겨준다는 비교육적인 원칙에 따라 2009년 영남대도 재단의 운영권이 지난 1989년 입시부정으로 불명예퇴진한 박근혜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박근혜는 형식논리만을 내세워 자신은 영남학원의 이사가 아니므로 법적으로 영남학원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7명의 이사 가운데 4명의 추천권을 행사하고서도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은, 건전한 시민의 상식에 비추어 사리에 맞지 않는 유체이탈화법에 불과하지요.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2012년 1월 4일자 사설에서 박근혜가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질타하였겠습니까?

이후 영남대는 박근혜 정부의 지원 아래 ‘박정희 리더쉽연구소’와 ‘박정희새마을정책대학원’ 등을 통해 새마을운동을 국제적으로 보급하는 일에 앞장섰고 숱한 국책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상당한 지원금을 받아 ‘왕립대학’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교명을 ‘박정희 대학’으로 변경하는 데 반대한 영남학원 산하의 영남이공대 임정철 교수가 파면을 당하는 등 학내의 언로가 막히고 대학이라는 자유로운 학문공동체는 일종의 박정희-박근혜 신앙공동체로 변질되었습니다. 게다가 2016년에는 영남대의 재정파탄이라는 믿기 어려운 사태까지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함께 박근혜와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비리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영남대의 정통성 문제가 다시 특검의 수사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무상한 정치권력에 빌붙어 대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애당초 실패의 씨앗을 내장하고 있는 무모한 시도였다 치더라도, 이제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남대학의 정통성 회복과 진정한 재단정상화는 학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가 과제가 되었습니다.

▲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영남대 교수들 ⓒ뉴시스


박근혜 일가 영남대에서 손떼야

이제 저는 영남대의 정통성 회복과 진정한 재단정상화를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선 영남학원은 독재자 박정희가 절대권력에 의해 강탈한 ‘장물’이므로 이를 환수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고 영남학원의 정통성을 되살리는 진정한 재단정상화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박근혜 일가는 영남학원의 운영에서 손을 떼어야 합니다. 박근혜를 비롯한 박근령, 박지만은 부친인 박정희가 권력을 이용해 강탈한 영남학원이라는 ‘장물’을 상속할 자격이 없습니다. 박정희-박근혜 일가는 영남학원에 단 한 푼의 돈도 출연하지 않았으므로 사분위가 정한 재단정상화 1순위 당사자인 재단의 설립자나 기본재산의 3분의 1 이상을 출연한 자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설립자나 그 후손들이 장상화의 1순위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영남대학교의 교육이념은 그 모태가 되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건학이념을 계승하여야 합니다. 대구대학이 표방했던 지역 인재 육성과 청구대학이 추구했던 민주시민대학의 이념을 살려 미래지향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난 세기의 새마을운동과 독재자의 리더쉽을 21세기의 대학 교육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은 박정희 향수에 기댄 시대착오적인 복고주의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학문공동체인 영남대학을 박정희-박근혜 신앙공동체로 변질시키고 재정파탄을 초래한 현재의 영남대학 재단은 퇴진하고 박근혜-최태민‧최순실 비리에 관련되지 않은 참신하고 덕망있는 인사들에게 재단과 학교의 운영을 맡겨야 합니다.


출처  [기고] 박정희가 강탈한 ‘장물’ 영남대학을 시민의 대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