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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오죽했으면 소 끌고 서울 올 생각을 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소 끌고 서울 올 생각을 했겠습니까"
40여년간 축산업에 종사한 농민 김명재(64)씨
[민중의소리] 정혜규 기자 | 입력 2012-01-05 17:52:21 l 수정 2012-01-05 22:41:25


▲ 5일 오전 경기도 평택 경부고속도로 평택·안성 나들목 인근에서 평택, 안성, 용인지역 축산농업인들이 소값 폭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가운데 소와 개의 매매가를 비교한 피켓이 눈이 띈다. ⓒ이승빈 기자

“오죽했으면 소 끌고 서울 올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누가 우리 목소리 들어준 적 있나요? 정말 속상해서 못살겠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한우 농사를 지어온 김명재(64)씨가 5일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현재 강원도 원주에서 아내와 함께 소 1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김씨,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날마다 폭락하는 소값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이날 소를 끌고 서울로 올라오려 했다.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한우 암소 송아지 가격은 92만1천원을 기록, 지난해 평균 가격 217만4천원 대비 57%나 떨어졌다. 600kg 숫소의 경우도 지난해 평균 가격 533만7천원 대비 40%하락한 319만3천원을 기록했다. 끝없이 추락하는 소값 때문에 울분을 터뜨렸던 농민들은 전국에서 소 1000여두를 끌고 와서 청와대, 기획재정부 앞에 내려놓는 투쟁을 하려 했다.

하지만 57개 중대를 투입한 경찰에 막혀 고속도로에 진입조차 못했다. 김씨는 청와대 앞에서 개최할 농민들의 기자회견에 참가하기 위해 따로 이동,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다른 축산 농민들은 올라오지 못했다.

▲ [인포그래픽] 한우 생산비와 가격 변동 추이 ⓒ민중의소리 유동수 디자인실장

▲ 한우 100두를 키우는 김명재(64)씨는 5일 소값 폭락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동료 농민들과 함께 소 2000여두를 청와대, 기획재정부에 끌고가는 투쟁을 시도했다. ⓒ민중의소리
김씨에게 ‘소’는 삶의 전부였다. 낙농업으로 시작한 김씨는 자신을 돕던 아들의 다리가 절단된 것을 계기로 보다 안전한 한우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한우를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키웠고 소를 판 돈으로 아들 둘을 장가까지 보냈다.

지난해 구제역 파동도 운 좋게 비켜나갔다. 아내와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만 남은 김씨였지만 ‘소값 하락’이라는 폭탄만은 피하지 못했다.

“우리가 뭐 아는 게 있어. 고기질이 좋아야 소비자들이 맛있게 먹는다는 생각에 잘 키우려고 노력했어. 250~300만원 주고 사온 소를 3년 동안 키웠어. 소 한 마리당 매달 10kg 들어가는 사료도 꼬박꼬박 먹였어. 그런데 예전에 1000만원 했던 소가 지금은 500만원도 못 받으니 우리 보고 어떻게 살라고 하는 거야.”

최근 1년 사이에 그가 판 소는 20여두. 소값 하락 때문에 모두 적자를 봤다. 사료는 기존에 7~8000원 하던 것이 최근에는 1만3천원까지 올랐다. 반면 소값은 점점 떨어지면서 한 마리 소를 팔았을 때 적자폭이 200만원까지 치솟았다. 적자가 늘어날수록 빚은 늘었고 다 합치면 모두 1억 원 가량이나 됐다.

소값 하락 폭탄을 맞아 농가는 휘청이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한미FTA를 추진해 미국산 쇠고기까지 수입하면서 한우값은 날마다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예전에 한우가 장사가 잘된다고 하니까 농가에서 모두 한우 농업에 뛰어들었다”며 “모두가 덤벼드니까 소 마리수가 늘면서 가격이 많이 하락했다. 정부에서 적절하게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가격이 떨어지고 난 뒤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FTA 때문에 수입고기도 많이 들어와서 소값은 더욱 하락하고 있는데 정부는 자동차 팔 생각만 하지 농가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 5일 오전 경기도 평택 경부고속도로 평택·안성 나들목 인근에서 평택, 안성, 용인지역 축산농업인들이 소값 폭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가운데 경찰이 소가 실린 트럭을 막고 있다. ⓒ이승빈 기자

평생을 농민으로 살아온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 정책에서 농업이 뒷 순위로 밀리고 생계마저도 보장이 안 되면서 한우농업을 책임질 후배들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김씨는 “시골에 가면 60~80대 노인들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누가 한우 농사를 지으려고 하겠느냐”며 “더 이상 한우농사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수입고기 가격이 올라갔을 때 누가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우리가 소를 끌고 올라가려고 했을 때 경찰들이 막은 것에 대해 다 이해한다. 그 심정 모르는 것 아니다”며 “우리도 난리치려고 소를 끌고 오려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 절박한 심정, 농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생각하게 됐다. 대통령이 농민들의 마음을 안다면 더이상 피해가 없도록 소를 제값에 사주던가 아니면 북한에 남는 소를 보내 소값을 안정화시켜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출처 : "오죽했으면 소 끌고 서울 올 생각을 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