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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한·미 FTA 이게 문제다] ③ 농업

[한·미 FTA 이게 문제다] ③ 농업
식량주권 훼손돼도 속수무책
[경향신문]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전 농림부 장관) | 입력 : 2011-11-28 22:05:26ㅣ수정 : 2011-11-29 15:42:28


영토·국민·주권은 국가존립의 3대 요소이다. 영토로서의 농어촌, 국민으로서의 농어민, 기본주권으로서의 식량주권, 이 세 가지(조규일, 2011)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결딴이 날 운명에 처해 있다. 중소상공인·자영업자·노동자·서민들도 직간접으로 된서리를 맞게 될 운명이다.

다행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황식 국무총리도 농업 분야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느끼는 모양이다. 미국 농무성 경제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미국산 농축산물의 대(對)한국 수출액이 연평균 19억3000만달러, 즉 2조876억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5년 동안 31조3140억원이 넘는 미국산 농축산물이 수입된다. 우리나라의 연간 총 단순 농업생산액 약 40조원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정부 산하 농촌경제연구원은 매년 약 4000억원씩, 15년 동안 약 6조원어치가 수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수치에 비해 무려 5배나 낮게 전망하고 있다. 그러하니 동 연구원이 우리나라 농수축산업 부문 15년간 생산감소액을 12조7470억원이라 예측했는데 이 또한 현저히 할인된 숫자가 아닐지 의심된다. 평균 2~4배나 값이 싼 미국 농축산물의 국내 수입액보다도 농수축산업의 생산감소액 전망치가 3배 가까이 더 적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순진한 분석이다.

151명의 결사대 의원들이 최루가스로 눈물을 훔치며 통과시킨 한·미 FTA가 내년 초 발효되면, 그 즉시 38%의 농축수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이 개방된다. 5년 이내엔 60%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그 후 10년 내에 대부분 농축산물이 같은 신세가 된다.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및 그 특정위험물질(SRM)도 관세 없이 수입될 것이라는 게 미국 조야의 행복한 전망이다. 한·미 FTA보다 더 일찍 비준된 FTA에서는 그런대로 관세폐지 예외품목을 꽤 확보했다. 한·칠레 FTA에서는 쌀, 사과, 배, 쇠고기 등 29%를, 그리고 포도의 경우 국내 생산출하기엔 수출 안 하는 약속,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33.3%, 한·EFTA(유럽자유무역연합) FTA에서는 65.8%, 한·아세안 FTA에서는 30.9%나 예외로 인정받았다. 심지어 한·EU FTA에서도 2% 이상의 예외품목을 두고 있다. 오로지 한·미 FTA에선 그나마 지킬 것 같았던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마저 무관세로 몽땅 내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FTA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농축산물이 홍수처럼 수입되어 국내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SSG/ASG)의 발동요건도 까다롭게 했거나 1회에 한해서만 허용했다. 그나마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발동요건은 아예 비현실적으로 되어 있다. 수입량이 폭주하여 똥값으로 떨어져도,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인 사태가 다반사로 일어날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동 협정이 발효되면 2차 보전, 친환경 무상급식 등 현행의 각종 농업 및 식품 관련 지원정책이 까딱하면 투자자의 소송 대상이 돼 아예 폐지되거나 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이 한·미 FTA 결과 크게 훼손, 붕괴돼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우루과이라운드 때 WTO가 먼저 성안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채택하고 있는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은 농림업이 비단 식량과 목재, 섬유원료의 생산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환경생태계와 기후변화 보전기능, 홍수·가뭄 등 자연재해 완충기능, 식량주권과 안전성 확보기능, 전통문화 보전기능 등 화폐로 거래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나라 농림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은 대략 연간 70조원 이상의 값어치를 제공한다. 일본의 노다 총리가 지난 11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조야는 농업생산액 절반의 감소(약 8조엔), 식량자급률 14% 감소, 그리고 화폐로 평가한 농업의 다원적 가치, 즉 연간 기준 3조7000억엔의 상실 등을 추계하여 공론화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우리 농업을 이번 기회에 지도를 잘하여 바로 세우시겠다고 수출농업지상주의를 부르짖는다. 현재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은 2010년 기준으로 불과 5억1900만달러이다. 그것도 라면, 초코파이, 커피, 음료수, 담배 등을 빼고 나면 순수 국내산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의 수출액은 몇 푼일지 계산하기 부끄럽다. 같은 해 한국은 미국서 59억6000만달러의 농축산물을 수입했다. 농업 부문 무역적자만 한해 54억4100만달러이다. 이 수치는 FTA 발효 이전 40% 내외의 관세를 물고 수출입된 금액을 비교한 것들이다.

총리가 발표한 향후 22조원의 농업피해보전 대책은 눈을 씻고 보아도 수출농업육성 항목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해마다 국가 전체예산은 4~5%씩 늘어나는데, 농림축수산 예산은 실질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미 FTA 피해대책 22조원도 대부분 밑돌 빼어 웃돌 괴기, 관련이 먼 항목을 FTA로 포장하기, 미집행 예산을 합산하기, 조건부 예산 항목을 시행할 것처럼 보쌈 싸기, 기존의 예산항목에 이름표 바꿔 달기 등, 그런 액수를 합쳐 7년 또는 10년을 곱하여 합산한 것들이다. 필자도 정부에 있어봐서 아는데 그런 노하우(전문기술)는 기획예산부서에 잔뜩 쌓여 있다.

자, 그러면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첫째도, 둘째도 한·미 FTA 발효시기를 늦추거나 폐기하고 진솔하게 그 피해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FTA 협상을 내년 1월 개시하겠다는 것은 농업종결 완결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지금은 25%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쌀 제외 4.5%) 세계 최하위권의 현실을 타파하는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농축산업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는 생태공동체 농업으로 탈바꿈하여야 살아남는다. 환경도 살리고, 기후도 살리고, 국민·소비자의 건강도 살리며, 농어민의 생존을 보전하는 생명농업의 전국화와 1촌1품의 추진 말고는 대안이 없다.


출처 : [한·미 FTA 이게 문제다] ③ 농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