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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원전론자의 ‘역습’, 그들이 말하지 않는 5가지

원전론자의 ‘역습’, 그들이 말하지 않는 5가지
발전소는 남아도는데 왜 계속 원전 짓자고 하는가
온실가스냐 원전이냐의 양자택일로 몰아가지 말아야
수출 많이 할 수 있으면 무슨 물건이든 팔아도 되나
시민배심원 탈원전 결정 위해 투명한 정보제공 필수

[한겨레]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등록 : 2017-07-18 10:45 | 수정 : 2017-07-18 15:47


‘화장실 없는 맨션 앞의 변기’. 원전은 폐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찾지 못해 흔히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 불린다. 공사가 잠정 중단된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원전 5·6 호기 현장 앞 서생면 골매 마을의 철거 중인 빈집에서 주인 잃은 변기가 하늘을 보고 있다. 울산/김봉규 기자

초로의 남자 넷이 길가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런 걸 졸속으로 결정하고 말이야.”, “그러게, 원전 하나 수주하면 얼마짜리인데….” 최근 이루어진 정부의 ‘탈원전’ 결정을 성토하는 대화였다. 지난 주말 경기도 고양시의 한 도서관 앞에서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결정을 놓고 논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 원전을 짓느냐 마느냐가 저녁 자리의 화제로 등장했다. 탈원전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연일 언론을 통해 증폭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시도하는 대한민국의 에너지-환경 패러다임 변화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흔들고 있다. 새 정부와의 본격적인 정치적 대결이 탈원전을 무대로 벌어질 기세다.

탈원전을 뒤집으려는 쪽에는 전력산업 종사자 핵공학 교수 및 연구자, 원전 건설업체, 민자발전업체와 일부 언론이 포진해 있다. 포문은 연구자들이 열었다. 국내외 60개 대학 공대 교수 417명은 5일 국회에서 성명을 냈다. 값싼 전기를 통해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 온 원자력 산업을 말살시킬 것이라며 졸속으로 추진되는 탈원전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국회와 같은 공식적인 국가 의사결정 체계에서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를 통해 장기적인 국가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라고도 했다.

앞으로의 더 격해질 싸움은 ‘여론전’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의 ‘문지방’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 여부가 여론을 중시하는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 방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임시 이사회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정지를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이관섭 사장도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 백지화(영구중단) 결정이 나지 않도록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등 여론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17일 밝혔다.

나와 가족의 미래가 걸린 사안을 시민사회의 숙의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시민배심원제는 참여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균형 잡힌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원전 옹호론자(이하 원전론자)의 주장을 놓고 어디까지 진실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숙의의 근거를 제공하는 취지에서 최근 쏟아져 나오는 원전론자의 핵심 주장을 소개하고, 탈원전 입장에서 이 주장들의 한계를 짚어본다.


 전기가 모자라서 발전소를 계속 짓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력 수요는 경제 성장에 따라 계속 늘어날 것이다. 2011년 순환 정전사태와 2012년 전력수급 위기에서 보듯 전력은 언제 모자랄지 모른다. 싼 가격에 기저부하를 안정적으로 담당하는 원전이 아니면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원전이 아니면 전기요금도 크게 오를 것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발전소는 이미 너무 많다. 2014년 이후 신규로 가동된 발전소가 늘어나면서 ‘전력위기’란 말은 쏙 들어갔다. 연중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에도 전국의 발전소 4개당 1개가 쉬고 있다.

원전론자의 예측대로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 해도 2020년께는 전체 발전소의 30%가 남는 상태다. 한 기에 수백~수천억 원짜리인 비싼 발전소를 이렇게 놀리게 된 것은 정부가 수요를 늘려잡고, 예비전력도 넉넉히 확보하도록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 정부가 내놓은 2030년까지의 최대전력 수요. 2015년 예측보다 2017년 수요예측은 원전 11기를 짓지 않아도 될 만큼 줄어들었다.

정부는 2년 마다 향후 15년 앞을 내다보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세워 발표한다.

이 계획에는 수요예측이 들어가고 이에 맞춰 발전소를 더 지을지 결정한다. 2013년의 6차, 2015년의 7차 계획에서 했던 전력 수요예측은 지난주에 크게 수정됐다.

올해 말 발표될 8차 계획을 위해 수요예측을 한 결과, 2030년의 전력 수요는 2년 전 예상보다 10%가 줄어든 것이다.

7차 때는 비상시에 대비해야 한다며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전 11개를 짓지 않아도 되는 수요가 나왔다.

저성장과 고령화, 산업의 탈제조업 추세에 따라 전력 수요예측이 변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니까 전력 수요예측도 코드 맞추기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간의 수요예측이 과도했다는 비판은 2년 전에도, 4년 전에도 전문가들 사이에 계속 나왔다.

경제 성장률을 15년 내내 3.5%로 잡은 것이 대표적으로 과도한 추정이었다.

▲ 설비예비율 추이와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5년)에서 설정한 설비예비율 목표.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

수요도 그렇지만 ‘적정 설비예비율’을 과도하게 높여 잡은 것도 발전소가 남아도는 이유이다.

설비예비율은 냉·난방기를 최대한 가동하는 시기의 최대 전력사용량보다 발전설비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6차와 7차 기본계획에서 이 비율을 22%로 잡았다. 지금 짓는 발전소가 완공되는 2020년께는 이 비율이 30%까지 오르게 된다. 미국과 유럽은 이 비율을 15% 내외로 권고한다. (국회예산정책처)

수요예측과 설비예비율을 놓고 볼 때 정부는 그동안 너무 많은 발전소를 짓는 쪽으로 계획을 짠 것이다.

정말 전기가 필요해서 이렇게 발전소를 짓고 있는 것일까?

환경론자들은 정부가 발전업계와 건설업계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차라리 신재생 에너지 수출국을 꿈꾸자

그들은 말한다. “원전은 자동차, 반도체 못지않게 경쟁력 있는 수출산업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원자력 건설이 늘어나 국제무대에 600조 원짜리 원전 시장이 열리고 있다. 우리가 탈원전을 하면 국내 산업기반이 무너질 뿐 아니라, 수출에도 타격이 올 게 분명하다. 자신은 없애고 있는 원전을 사달라면 어느 나라가 믿겠는가? 특히 원전은 정부 간 계약이 많은데. 탈원전 하겠다는 정부가 수출에 열성을 보이겠는가? 50년 쌓은 한국 원전 산업의 기반을 5년짜리 정부가 허물고 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유능한 회사의 경영자라면 미래를 보고 투자할 것이다. 아무리 당장 잘 팔리고 수익성이 높다 해도 담배나 DDT 같은 유해성 상품에 회사의 미래를 거는 경영자는 현명한 리더가 아니다. 원전은 환경 위험이 크고 사후 처리에 답이 없기 때문에 투자가 늘어나기 힘든 사양산업이다.

그간 미국, 독일 같은 나라가 기술과 돈이 없어서 원전에서 손을 떼고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에 집중했겠는가?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앞으로 이쪽에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기술개발과 효율화에 집중해온 측면도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이런 노력 끝에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 면에서 자동차에 비견되는 중요한 산업이 됐다.

우리가 원자력에 기술을 축적했지만 신재생 에너지 쪽은 앞서나기지 못하는 것도 원전에 쏟는 만큼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았기에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높고, 그러니 원전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순환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원자력 분야에는 한국연구재단을 통한 3천억 원 등 연간 5천억 원이 넘는 연구개발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승수,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한티재)

이 돈을 재생가능에너지 연구에 돌려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독일처럼 재생가능에너지 수출국이 못 될 것도 없다.

원전에 투자하더라도 건설 쪽이 아니라 세계가 앞으로 고민해야 하는 해체 기술 쪽으로 집중할 수도 있다.

수출만 많이 하면 어떤 산업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레이철 카슨의 베스트셀러 <침묵의 봄>은 DDT라는 살충제의 가공할 위험을 폭로했다.

DDT는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이가 옮기는 발진티푸스 퇴치에 효과가 좋아 1940년대에만 5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고마운’ 살충제였다.

그런데 개발자에게 노벨상까지 안겨준 이 화학약품은 독성이 너무 강하고 잔류기간이 길어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이 드러났다.

미국에서 사용을 반대하는 운동이 점점 거세졌고 이는 현대 환경운동의 시작이 됐다.

미국 정부는 1972년대에 DDT의 국내 사용을 금지했지만 이를 생산하는 미국 화학 회사들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정부가 수출은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은 DDT 수출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우리가 원전을 줄여야 중국에도 짓지 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판도라>는 비현실적 설정으로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대통령이 탈핵을 결심했다는데 어이가 없는 일이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 때문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이었고, 울타리만 높게 세웠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기술적으로도 국내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 달라 그런 큰 사고가 날 가능성은 작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나기 전에는 기술적 완벽성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쓰나미가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처럼 아무리 자신해도 원전사고는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어 일어날 수 있다.

원전이 밀집한 경북 동해안은 지난해 경주 지진에서 보듯이 지진 안전지대가 결코 아님이 드러났다. 7기의 원전이 밀집된 울진군·기장군의 경우 반경 30㎞ 안에 320만 명이 살고 있다.

원자로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원전마다 수백 개씩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다발이다.

최소 10만 년을 밀봉 보관해야 하는데, 그 처리 방안을 확정하지 못해 원전 내 임시 수조에 보관돼 있다.

이 임시 보관시설은 원자로처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봉인된 것도 아니어서 물이 새거나 할 경우 원자로 못지않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수조를 암반 위에 바로 만들었다고 안전한 게 아니다. 수조 바닥이 지진으로 갈라져 누수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판도라>의 설정이 오히려 실감이 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국내에서도 국민 불안감이 높아지자 정부는 “편서풍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태평양으로 날아가니 우리는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당시에는 다행이었을 편서풍이 치명적인 ‘비수’가 될 때가 있다. 바로 중국이 우리 서해안 쪽에 맹렬하게 짓고 있는 원전에 사고가 났을 때이다.

지난해 가동된 신규 원전의 절반은 중국에 지어졌다. 지금도 20기의 원전을 짓고 있다. 중국 원전은 기술적으로 우리나 일본보다 한세대 뒤진 것으로 파악돼 안전상의 우려도 그만큼 크다.

중국 해변의 원전이 후쿠시마 같은 사고를 일으킬 때 우리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서해에서 잡힌 생선을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원전을 줄일 때 중국에도 당당히 안전 조처를 요구할 수 있다.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새 정부의 탈원전 결정 과정이 졸속의 연속이다. 울산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중단하는 결정을 국무회의에서 불과 20분 동안 논의한 뒤 내렸다고 한다. 백지화 여부는 3개월간 공론조사를 거쳐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한다고 한다. 비전문가인 소수의 시민배심원이 짧은 기간에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책임성 있는 에너지정책 수립이 아니다. 심지어 무모하기까지 하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적절한 정보를 주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다면 시민들도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의 지속 여부나 전력 정책의 방향 같은 것은 시민의 상식으로 얼마든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갓 완공된 원전 2기를 폐쇄하는 대신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키로 했고, 이탈리아도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결정했다.

특히 무슨 무슨 ‘족(族)’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얽히고설킨 전문가 집단이라면, 그들에 맡기는 것보다 이해관계 없는 시민들이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에 적용하기로 한 공론화위원회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 말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과학기술 영역에서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제도)가 필요함을 인정했고, 독일은 ‘핵폐기장 부지선정 시민소통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있다.

한국도 2006년 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가 첨단기술에 대한 기술영향평가를 내리는 과정에서 시민 배심원제를 활용했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2009년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 이를 운용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012년 서울시가 ‘2030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짤 때 운용했다.

물론 3개월이란 기간이 짧을 수 있다.

또 얼마나 투명한 정보와 토론 기회가 보장되고, 전문가들의 균형 잡힌 조언이 전달돼 시민들이 정치, 정부, 원전론자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시민배심원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잘 안착하면 앞으로 난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그간 전력 정책, 특히 원전과 같은 정책은 비밀주의와 전문가 주의가 지배했다.

주권자인 국민은 제대로 된 정보나 참여를 보장받지 못했다. 발전소, 송전탑 건설을 위해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형식에 그치는 때가 많았다.

대신 일방적인 홍보가 행해졌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 홍보에 연간 100억 원 이상을 지출한다. 대체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홍보가 대부분이다.

원자력의 위험성이나 신재생 에너지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원전의 경제성을 능가하리란 내용의 홍보는 없다.

원전 산업의 지나친 비밀주의, 부품 시험평가서 조작 같이 잇따라 터지는 안전 관련 비리는 원전 전문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전문가만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화석연료나 원전이냐, 양자택일 문제는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보고 원전을 세우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이 당면 과제가 되자 원전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력 1㎾h 당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석탄 991g, 천연가스는 549g인데 원전은 10g에 불과하다. 원전 없이 깨끗한 에너지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때 30년간 중단된 원전 건설을 재개했고,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일본도 원전수명을 연장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변화도, 원전에 의한 환경 위험도 우리가 극복할 대상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서울 10배 면적의 남극 빙산이 떨어져 나간 데서 보듯 기후변화는 우리 앞에 닥친 위기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당분간 원전과 화석연료 발전을 섞어 쓸 수밖에 없더라도 몇십 년 앞을 내다보고 둘 다를 줄이는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원전이 청정에너지일 수는 없다.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지 몰라도 그 못지않은 환경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방사선 차폐복 등 중저준위 폐기물은 300년을, 사용후핵연료 같은 고준위 폐기물은 천연우라늄 수준으로 방사능이 낮아지는데 10만 년~30만 년이 걸리고 그동안 지하수 오염 가능성 등이 없는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폐기물을 우주선에 실어 우주에 버릴까도 생각해 볼 만큼 고심했으나 아직도 처리 방법을 못 찾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현생인류의 조상인 사피엔스가 태어난 것이 3만 년 전의 일이다. 30만 년이란 보존 기간은 인류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화석연료도, 원전도 쓰지 않겠다는 것은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인데, 이는 우리 생활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전기를 지금처럼 많이 쓰는 걸 전제하고, 원전이냐 석탄이냐를 묻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미래에 바람직한 친환경 전력수급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춰 에너지 효율화, 절전, 신재생 에너지 투자 등 대안을 만들어가는 ‘후방예측’(back casting)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 이 분야에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유증을 겪은 독일 국민이 격렬하게 반핵시위를 하고 적극적 청원을 한 덕분에 정부가 탈핵을 서두르게 됐다.

독일은 우리와 여건이 비슷하다. 에너지 빈국이어서 에너지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과 수출중심 경제구조로 되어 있다.

자연조건이 탈원전에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독일은 최근 중국이 부상하기까지 태양광 분야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북위 고도가 높아 연평균 일사량이 한국보다도 적다. 독일 가장 남쪽에 있어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의 연평균 하루 일사량은 3.02kWh/㎡로 우리나라 부산과 대구의 4.7kWh/㎡에 비해 3분의 2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태양광 투자를 늘려 최근 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 태양광 분야의 최강자였다.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가능에너지 투자 확대를 통해 석탄도 원자력도 크게 줄이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출처  원전론자의 ‘역습’, 그들이 말하지 않는 5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