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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종교와 개독교

이근안 목사는 `값싼 은혜`의 증거?

이근안 목사는 '값싼 은혜'의 증거?
김근태 상임고문 별세 계기로 목사 안수 남발 비판론 제기
[뉴스앤조이] 김태완 기자 | 2012.01.01 19:14:06


▲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김 상임고문은 1985년 9월 4일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이근안 씨(73)에게 안기부(현 국정원)로 끌려가서 20여 일간 무차별 고문을 당했다. 김 상임고문은 고문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진제공 유성호)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별세와 맞물려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가 목사라는 부분이 부각되면서, 한국교회의 무분별한 목사 안수 남발과 삶의 변화가 없는 회개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근안 씨(73)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김근태 상임고문을 1985년 9월 4일 안기부(현 국정원)에 끌고 가서 20여 일간 무차별 고문했다. 김 상임고문은 고문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근안 목사는 2008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7년의 옥살이 동안 과거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며, 회개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하지만 최근 "내가 한 일(고문)은 애국이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할 것이다", "범죄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좌절감을 느낀다" 등의 발언으로 과거의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근안 목사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시기는 1998년, 수배를 피해 집 벽장에 숨어 지낼 때였다고 한다. 그는 2011년 6월 18일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10년 10개월을 숨어 지내면서 성경을 70번 읽었다. 어느 날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라는 구절을 적으며 나도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며, "공소시효를 1년 남기고 성경 말씀을 의지하여 자수할 용기를 가졌다"고 간증했다. 그는 또 복역 중에는 욥과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근안 목사는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고, 여주교도소에서 7년 동안 복역했다.

이근안 목사와 두란노 아버지학교는 인연이 깊다. 2004년 5월 여주교도소에서 열린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이 목사는 회심했다고 한다. 2004년 5월 13일 <온누리신문>에 따르면, 이 목사는 제5공화국 때 자신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사람들과 마음고생을 한 그들의 가족들을 생각할 때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눈물로 사죄하고 싶다고 했다. 이 목사는 출소 후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수차례 간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근안 씨는 2008년 10월 30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 목사가 안수를 받은 이유는 교정 선교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브레이크뉴스> 인터뷰에서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도 교회를 차리고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재소자들과 함께 신앙생활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자가 과거사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앞으로 십자가만 바라보고 살겠다"고 하면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현재 이 목사는 예장합동 개혁 측 소속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신앙 간증 위주로 목회 활동을 펼쳤던 이근안 목사는 2010년부터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하는가 하면, 국가 안보를 강조하는 등 지난 공안 시국 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010년 2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이근안 목사는 자신의 고문 행위를 애국이라고 했다. 그는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없는 일이므로 과거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또 자신을 "고문 기술자가 아닌 신문(訊問) 기술자"라고 지칭하며, "신문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는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며,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나님나라를 찾게 됐다"고 했다.

이근안 목사는 2010년 12월 14일 국제외교안보포럼 조찬강연회에서는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교육을 하고 이를 간첩죄로 잡아들여도 재판 과정에서 무죄로 풀려나더라"며, "이 나라의 공안 기능이 무너져 이들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피해자 김근태 상임고문이 고문 후유증으로 별세하자 가해자 이근안 목사의 이러한 발언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비판받고 있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대)는 '고문은 애국'이라는 이근안 목사의 발언에 대해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을 사랑하는 애국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2011년 12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날 우리 주변 곳곳에서는 한미 FTA가 애국,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애국, 무상 급식 반대가 애국, 반북이 애국, 비판 없이 정부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애국이라는 구호가 넘쳐난다. 그 애국이라는 실체 없는 맹목이 김근태 민주 투사를 죽였다. 또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또 다른 김근태를 고문하고 죽이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씨알재단 백찬홍 운영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근안은 신에게 회개했다고 했지만 지금도 자신의 행동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독일 신학자 본회퍼의 '값싼 은혜', '회개 없는 용서', '삶을 바꾸지 않는 용서만 가르치는 것'을 언급하면서, "진심 어린 회개 없이 목사가 된 이근안이나 그에게 안수를 준 한국교회나 모두 '값싼 은혜'의 산물이다"고 비판했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 역시 이근안 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한국교회와 해당 교단을 비판했다. 이 사무처장은 12월 31일 <미디어오늘>에 실은 글에서 "이근안이 목사가 된 것은 한국교회가 깊은 병에 빠졌다는 증거다. 설사 이근안이 목사 되기를 원했다 해도 한국교회 모든 교단은 이를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이근안 목사의 최근 발언들은 정의와 윤리가 없는 한국교회의 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근안이 자신의 행위를 애국으로 강변하고, 자신이 파괴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정을 욕보이고 있다. 정의 관념과 윤리적 미감, 역사의식이 부재한 한국교회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했다.


출처 : 이근안 목사는 '값싼 은혜'의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