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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한명숙 판결에 다른 잣대 내미는 조중동

이재용·한명숙 판결에 다른 잣대 내미는 조중동
26일치 사설에서 5년형 선고한 1심 판결 비판
“묵시적 청탁 인정은 형사법 대원칙 어긋나”
“정치적 외풍, 여론몰이에 영향 받아”
앞서 한명숙 판결 비판한 여당엔 “사법 독립 침해”

[한겨레] 이춘재 기자 | 등록 : 2017-08-26 18:02 | 수정 : 2017-08-26 21:31


▲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의 5년 징역형 선고가 나온 다음날(26일)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위부터 차례대로) 사설들.

<조선> <중앙> <동아>가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된 다음 날인 26일 사설을 통해 일제히 1심 판결 내용을 비판하고 나섰다. 재판부가 이재용과 박근혜 간의 ‘묵시적 청탁’ 관계를 인정한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하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명시적으로 청탁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삼성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있는 이재용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 곧 박근혜에 대한 금품 제공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두 피고인이 ‘묵시적 부정 청탁 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과 대통령 말씀 참고 자료, 장충기 전 사장의 휴대전화 문자 등의 증거와 정유라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이재용의 뇌물 공여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청와대가 준비한 말씀 자료에 ‘지배구조 개편’, ‘임기 내 승계 문제 해결’ 등의 내용이 등장하고, 정씨가 “엄가가 ‘삼성에서 말을 바꾸라고 한다’고 했는데, (삼성에서 말 교체를) 어떻게 모를 수 있는지 더 의문”이라고 증언한 것 등이 묵시적 청탁을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조중동은 이런 증거들이 이재용에게 유죄를 선고할 정도의 ‘스모킹 건’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뇌물로 볼 수도 있고, 뇌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 정황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형사법의 원칙에 어긋나게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선>은 재판부가 ‘이재용 5년형 선고 이유를 마음속 청탁’으로 판단했다고 깎아내렸다. ‘서로 마음속으로 청탁을 주고받았는지는 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이심전심 청탁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일 수도 있다. 이쪽이면 유죄고 다른 쪽이면 무죄다. 이는 증거가 아니라 판사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라고 전제한 뒤, ‘국민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명쾌한 판결을 기대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치 외풍과 여론몰이 속에 진행된 재판의 판결 이유가 석연찮은 이심전심의 묵시적 청탁이다’라고 비판했다.

<중앙>도 ‘법리와 증거에 기반한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정황증거를 받아들였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기업이 권력의 반복적이고 적극적인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한 점을 감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도 ‘수동적 뇌물공여 법리가 논란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사설을 실었다.

조중동은 앞서 지난 23일 한명숙 전 총리의 석방을 계기로 여당이 당시 법원 판결을 비판한 것을, ‘헌법 질서와 사법부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꾸짖었다. 특히 <조선>은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를 향해 삿대질하는 사람들이 지금 정권을 잡고 있다. 사법 독립성을 위협하고 재판 권위를 부정하는 권력의 공공연한 발언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 전 총리 사건도 돈을 건넨 건설업자가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 없다. 한 전 총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며 진술을 번복하는 등 ‘명시적 청탁 관계’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1심 재판부가 “돈을 줬다는 직접적 증거가 건설업자의 검찰 진술뿐인 상황에서 진술의 일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처럼 유무죄가 엇갈린 사건에서 한 전 총리의 친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쓴 1억 원짜리 수표를 ‘결정적 증거’로 판단해 유죄를 확정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법원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던 조중동이 이재용에 대한 1심 판결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판단했다’는 이유로 깎아내린 것이다.


출처  이재용·한명숙 판결에 다른 잣대 내미는 조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