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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 140억 반환 청와대 개입”

“다스 140억 반환 청와대 개입”
주진우 문서가 드러낸 증거들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7.10.07 14:30:01 | 수정 : 2017.10.07 17:15:18


BBK 실소유주 논란, 드디어 마침표를 찍나 청와대가 스위스 김경준 계좌에서 다스가 140억 원을 반환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문건들이 공개됐다. 사진은 지난 2015년 11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장을 찾은 오사카산 쥐새끼 이명박. / 김창길 기자

·“문건 내용 사실이라면 MB 직권남용, 재산상 범죄 성립”

“국정원 댓글사건의 윗선을 규명하려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MB) 책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 140억원은 다르다. 서류들은 MB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재임 중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걸로 보낼 수 있다.”

9월 27일 기자를 만난 주진우 <시사인> 기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 8월 말, ‘제보자’로부터 여러 청와대 및 다스 내부서류들을 입수해 공개했다. 영화(‘저수지 게임’)와 책(<주진우의 이명박 추적기>)도 펴냈다.

주 기자의 단독 기사를 받은 언론은 거의 없었다. 시사주간지 탐사보도와 관련해선 흔히 겪는 일이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주간경향>의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과 김정남 커넥션 보도도 그랬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는 언론사 관행 때문일 수 있다. 출입처와 무관하게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보도이기 때문이다. 주 기자 보도와 관련, MB 측은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나마 출입처 내지는 커버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MB 측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관련 보도도 나오기 힘들 공산이 크다.

주 기자는 “소송을 전담해 다스와 청와대를 오갔던 다스 팀 일원. 다스 회장 이상은과 MB의 직속 가신들 여럿이 주제보자”라고 밝혔다. 2007년 이후 잠복해 있던 BBK 실소유주 논란의 진실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일까.


김경준 “주진우 주장 잘못되었다” 반응

“주진우 기자보다는 내가 사건의 사실관계를 더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주려 한다.” 기자가 주진우 기자를 만난 날 저녁, 김경준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주 기자는 9월 25일 저녁 MBN의 시사토크 프로그램 ‘판도라’에 출연해 다스 140억 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3월 28일, 기자는 유원일 전 의원·박범계 의원과 함께 천안외국인교도소를 방문해 김씨를 만났다. 호송차에 탄 김씨의 얼굴은 다소 창백한 인상이었다(실제 설사로 며칠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언론에 포착된 마지막 모습이다.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김씨는 유 전 의원과 박 의원과 1시간가량 면담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박 의원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도 BBK 주가조작과 관련해서는 유죄이며, BBK 사건과 관련해 50대 50의 지분을 가지고 관여했고, 투자금이 흘러간 내용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김씨가 말했다”고 밝혔다.

LA로 돌아간 김경준씨는 현지 한국 언론들과 접촉해 인터뷰를 했다. JTBC 뉴스룸, MBC 시사매거진 2580 등 국내 방송뉴스에도 출연했다.

“다스에 140억원을 송금한 이유는 MB의 대통령직이 끝난 후에 밝히겠다.”

김씨가 2012년 옥중에서 펴낸 책 에서 밝힌 내용이다. 박 의원에게 말한 ‘결정적 자료’도, 왜 다스에 140억원을 송금했는지 딱 떨어지는 답변도 김씨는 아직까지 내놓지 않았다. 김씨는 그의 미국 이름 Christopher Kim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여러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중 상당수가 ‘BBK와 관련된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김경준 증거 ‘BBK는 MB소유’ 뒷받침하나

▲ 지난 3월 28일 출소한 김경준씨는 미국에 건너가 SNS를 통해 “BBK의 실소유주는 MB” 주장을 활발히 펴고 있다. 사진은 김경준씨의 트위터. / 트위터 캡쳐
MB가 BBK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아래와 같이 마음대로 BBK에서 돈을 인출할 수는 없다. MB가 BBK 자금의 인출권이 있다는 사실은 그가 소유자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검찰은 이런 사실들을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9월 29일, 김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김씨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서류는 지난 2000년 3월 24일부터 2004년 11월 30일까지 ‘이명박 엘케이이뱅크’의 유동성 거래내역이다. 서류는 2005년 5월 25일 오후 3시15분41초에 사당역점에서 ‘890053’이라는 직원이 조회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서류에는 ‘비비케이 투자자’가 2000년 4월 3일 2195만7310원, 다시 300원, 4월 14일 10억원과 9억4000만원, 5월 2일 700만원, 5월 3일 194만9211원을 입금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서류상으로는 입금이지만 ‘비비케이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빼간 것이라는 점에서 “LKe뱅크가 BBK의 돈을 빼간 것”이라는 김씨의 설명은 맞다.

“BBK가 김경준의 회사면 그게 가능할까”라고 김씨는 반문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을 체크해야겠지만 답은 ‘BBK의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가능하다’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법인의 거래가 아니라 법인과 법인 사이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인감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검찰은 이런 사실들을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는 김씨의 주장은 사실일까.

답은 사실이 아니다. MB와 김경준씨가 동업해 만든 LKe뱅크가 설립된 날은 그해 2월 18일이었다. 초기 자본금 20억원은 MB가 전액 납입했다. 검찰의 논리는 이렇다. MB와 김경준씨는 5대 5로 동업했다. 두 사람은 LKe뱅크의 공동대표다. 이름에서 L은 이명박, K는 김경준씨다. (뒤에 붙은 ‘e’가 에리카 김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이것은 양측 모두에게서 부인된다.) 초기자본금 20억원은 MB가 냈기 때문에 이후 증자과정에서 김경준씨는 동일한 액수를 내야 한다. 실제 40억원의 유상증자가 이뤄진 것은 6월 16일이다. MB는 이미 20억원을 냈기 때문에 10억원만 내면 되지만 김경준씨는 30억원을 내야 한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김경준은 LKe뱅크 증자대금 3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BBK에 투자된 돈을 유용했다. 그 무렵 BBK에 들어온 투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의 LKe뱅크 지분 출자에 썼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30억원을 LKe뱅크에 빌려준 것처럼 회계 처리한 것이다.”

물론 다른 식의 설명도 가능하다. 김경준씨는 MB가 납입한 설립자금 20억의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 돈으로 BBK를 설립할 때 e캐피털로부터 차입받은 15억원을 해결했다. BBK에 e캐피털은 3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경수종금’이라는 회사를 통해 15억원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마련한 것이며, ‘30억원을 증자하면서 소유권을 유지하는 솔루션’으로 MB가 고안해낸 것이다”(김경준, 앞의 책 306쪽)

누가 맞을까. 김경준씨가 올린 위 서류만으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확인되는 사실은 “2000년 4월 3일부터 한 달 사이에 총 6회에 걸쳐 BBK의 돈이 빠져 LKe뱅크의 계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MB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사실을 왜곡했을지는 모르지만 검찰이 이 거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주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운명이 바뀐 2001년 4월 18일

‘BBK 사건’에서 핵심이 되는 날짜는 2001년 4월 18일이다. 이때까지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동업관계였다. 그리고 이날 MB는 LKe뱅크 대표이사를 사임한다. 김경준씨는 과거 <주간경향>에 보낸 편지에서 “MB만 사임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사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BBK투자자문은 이해 2월까지 총 712억원의 ‘투자’를 유치한다. 투자금 유치에는 1년 전인 2000년 2월 10일 삼성생명 100억원 투자가 큰 선전 역할을 한다. MB도 언론인터뷰를 하는 둥 회장으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 삼성생명 투자와 관련, 직원 서명이 위조가 된 것을 삼성생명 측에서 발견하면서 문제는 불거진다. 금감원이 나서 BBK투자자문에 대한 감사가 있었고, 등록 취소와 대표이사 김경준씨의 해임권고를 의결한다(4월 3일). LKe뱅크 대표 사임에 앞서 MB는 EBK증권 중계 증권업 허가신청을 철회한다(4월 6일).

4월 18일, 많은 일이 일어난다. 이날 BBK투자자문은 법인등기부 목적 중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을 삭제하고 상호를 BBK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로 변경한다. 동시에 대표로 미국인 크리스토퍼 김, 미국인 스티브 발렌주엘라를 내세우고, 이사로 미국인 산드라 모어, 감사로는 미국인 길레스 신을 임명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김경준씨와 크리스토퍼 김은 동일인이다. 나머지 임원들은 모두 조작되었다.

MB 측은 이때를 기점으로 김경준씨에게 속은 것을 깨달아 손을 뗀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나중에 주가조작으로 문제를 일으킨 옵셔널벤처스와 관련한 작업이 이뤄진 것이 그 전이라는 것이다. 상장을 목적으로 뉴비전벤처캐피탈을 인수해 옵셔널벤처스로 이름을 바꾼 것은 그해 2월 26일이다. ‘BBK투자자문’의 실소유주가 누구냐가 2007년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 핵심이지만 정작 특수본이 이 사건에 부여한 이름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이다.

김경준씨 등에 의해 이 주가조작 사건이 벌어진 것은 두 사람이 결별한 이후의 일인 것은 사실이다. MB 그리고 회사 ‘다스’도 “김경준 사기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2007년 검찰은 그 주장의 손을 들어준다. 해가 바뀌어 특검과 재판의 결론도 그랬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2008년 4월 17일 1심 재판 선고에서 윤경 재판장이 거론한 고사성어다. 태산이 들썩이도록 요란했지만, 정작 나온 것은 쥐 한 마리였다는 것이다. 3심까지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김씨 사건은 잊히는 듯했다.

BBK 사건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된 것은 2011년 2월 한 달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2007년 대선과정에서 국내 논란과 별개로, 미국에서는 2002년 이후 옵셔널벤처스 관계자들, 그리고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다스와 LKe뱅크, 그리고 김경준씨 측이 지난한 3자 민사소송을 벌여왔다. 소송구도는 복잡하다. 김경준씨의 재산을 불법으로 형성했다고 보는 미국 연방정부의 몰수소송과 옵셔널벤처스와 다스, LKe뱅크 측의 이해가 대립된 소송이었다.

한국에서 김경준씨가 1심에서 징역 10년에 벌금 150억원을 선고받은 나흘 뒤인 2008년 4월 21일, LKe뱅크의 소송은 소송취하로 종결된다. LKe뱅크가 소송을 취하한 것은 당시 다스와 옵셔널벤처스가 공동 손해배상청구 협약을 맺음으로써 LKe뱅크 측의 피해는 보상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서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 연방정부의 김경준씨 재산에 대한 몰수소송에서 미국 정부가 진다. (김경준씨는 자신의 책에서 그때까지 들였던 변호사 비용 15억원을 미국 연방정부가 물게 됐다고 밝힌다) 옵셔널은 승소한 반면, 다스는 김경준씨와의 소송에서 진다.

주진우 기자가 이번에 공개한 문서들은 여러 모로 주목된다.

첫째로, 2008년 11월 10일과 2009년 9월 30일자로, 다스가 작성한 회의록이다. 첫째 회의록은 옵셔널 측과 소송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회의록이고, 두 번째는 김경준씨 측과 소송전략을 논의하는 회의록이다. 이 회의들은 미국 LA의 찻집과 변호사 사무실에서 열리는데, 특이한 것은 미국 측 변호인단에 당시 김재수 LA 총영사가 회의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9월 30일자에는 김경준씨 측과 ‘합의문안’에 대한 품의도 붙어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1. 140억원과 법정이자 56억8250만원를 반환하며, 2. 사과서면 작성 송부 3. 쌍방 화해문서 작성 교환 4. 쌍방 소 취하. 5. 스위스 계좌 압류해제 요청, 6. 소송비용 각자 부담. 7. 합의서는 서면작성”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문서에는 김경준씨 측 변호인에게 보내는 다스 미국 변호인 아킨 검프와 존 카라진스키가 작성한 위 내용과 대동소이한 제안서도 첨부되어 있다.

▲ 9월 25일 MBN에서 방영된 시사토크 프로그램 <판도라>에 출연한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MBN 방송화면 캡쳐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문서는 김경준씨 측과 합의할 항목을 정리해놓은 문서이지 ‘합의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제안이 실행되었고, 다시 김경준씨 측과 원활히 합의되어 순서대로 이뤄졌다면 최종적으로 합의서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합의문이 바로 지금 회자되는 ‘140억 송금 관련 이면합의서’일 가능성이 높다. 문건 제보자는 주 기자에게 “대부분의 문서는 파쇄되었으며 제보한 문서는 일부 남은 문서들”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이 합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위 제안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서면 작성된 합의서는 MB 측과 김경준씨 측이 각각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입수한 서류 중에는 훨씬 뒤인 2012년 3월 19일 작성된 ‘공동방어협약서 대응방안’이라는 문건도 있는데, 옵셔널과의 소송에서 김경준씨 측과 다스가 공동대응을 논의하는 서류다. 이 서류에도 김재수 변호사가 등장한다.

입수한 서류들을 검토하다 보면 LA 영사관 김재수뿐 아니라 ‘MB 청와대’와 관련된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제보자가 청와대 프리젠테이션용이라고 밝힌 PPT 파일을 보면 다스의 북미 소송 전반을 담당한 아킨 검프(김석한, 카라진스키 변호사)는 ‘김백준 비서관’이 선임했으며, “김백준 비서관과의 구두합의를 통해 영입되었기 때문에 DAS와 별도의 수임계약은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PPT 자료와 함께 입수된 ‘김경준 관련 LA 총영사의 검토 요청 사안’ 문서나 ‘스위스 Alexandria 계좌 압류 관련 진행상황’ 등은 청와대 보고용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경준은 140억 보낸 걸까, 뺏긴 걸까

“첫째, 누나(에리카 김)를 통해 내가 MB를 만났다. 둘째 나와 계속 통화하고 있다. 세 번째로, 140억 송금 대가로 나를 석방하고 누나를 불기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세 가지는 사실이 아니다.”

9월 27일 MBN 시사토크 프로그램 <판도라>에 출연한 주진우 기자의 주장을 김경준씨가 반박하며 올린 주장이다.

김경준씨는 에서 1999년 초경에 “현대종금 대표를 역임했다”는 김백준 비서관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MB를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한 데 자신이 응하면서 MB와 관계가 시작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는 주진우 기자와 마지막 통화한 것이 지난 8월 말이라고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른바 140억 반환과 관련된 것이다. 김씨는 주 기자가 공개한 ‘예비합의문’ 문서에는 주 기자가 말한 이면합의의 내용이 없다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이 석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계약이 있다면) 자신이 계약위반으로 소송을 했을텐데 하지 않은 것은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감옥에 있는 김경준씨가 ‘스위스 계좌의 돈을 어떻게 다스 측에 건넬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과 관련, 김씨는 8월 12일 올린 글에서 “자신이 인스트럭션(instruction)을 해준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MB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입수된 문서 중 ‘‘스위스 Alexandria 계좌 압류 관련 진행상황’에는 미 법무부와 다스 측의 스위스에서 김경준씨 측 계좌 압류 진행일지가 정리되어 있는데, 일지를 보면 미국 법무부 요청으로 2004년 9월 23일 스위스 법무부가 계좌를 동결시킨 데 이어 2007년 다스가 민·형사 압류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이 나온다.

이 서류는 2009년 중순까지의 상황을 정리한 것인데, 정리된 내용에 기초해 이후 진행된 결과를 보면 다스는 스위스 형사절차를 근거로 연방검찰이 동결한 김경준씨의 스위스 계좌를 이중으로 압류했고, 140억은 스위스 검찰의 명령에 따라 김경준씨 계좌에서 강제로 ‘이체당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시점의 ‘절묘함’이다. 다스가 140억을 빼내간 시점은 2011년 2월 1일이다. 공교롭게도 9일 뒤인 2월 10일 미국에서 가택연금 및 법원 보호관찰을 받고 있던 에리카 김의 보호관찰 기간이 끝난다. 그리고 2월 25일 에리카 김은 자진입국해 조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4월 4일 다스는 소송을 취하해 다스 소송은 종결된다.

다스로서는 앞서 주장한 법정이자는 돌려받지 못했지만 140억은 이미 돌려받았기 때문에 김경준씨와 소송을 더 할 필요는 없다.

옵셔널 측은 뒤늦게 다스가 돈을 빼내간 것을 알고 5월 16일 다스에 합의금 반환 명령신청을 내지만, 6월 17일 미국 법원은 다스 측의 위반사실이 없다고 결정을 내린다.

앞서 입수된 2012년 3월 19일자 ‘비밀유지협약서’는 다스와 옵셔널 측의 이 반환금 소송과 관련해 김경준씨 측과 다스가 맺은 협약으로 보인다. 140억 반환과 관련한 김경준씨의 진술은 비교적 일관적이다. 앞서 9월 27일 올린 글에서 김씨는 “주 기자가 주장한 내용(송금 대가로 석방, 에리카 김 불기소 등)은 계약서(이면합의서)에는 없다”며 “그런 내용의 계약서가 제출돼 공개되면 국민들은 허탈해할 것이고, MB와 자유한국당을 돕는 꼴이 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한편, 김씨는 9월 30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다스 측 주장 반박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강제 이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10월 1일) 김씨는 “다스에게 한 140억 송금은 1. 다스가 스위스 사건을 취하함으로 140억의 동결이 풀렸고 (미국 사건과 상관 없이) 2. 내가 140억을 다스로 송금하는 지시를 스위스에 있는 은행에 했고, 3. 다스가 미국 소송을 취하 했다. 이 절차는 당연 다스와의 합의 아래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 지난 2007년 11월 16일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 이동관 공보단장, 박흥신 공보총괄팀장(왼쪽부터)이 여의도 당사 6층 공보상황실에서 TV를 통해 김경준씨의 입국을 지켜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주가조작 가담자들, 왜 MB청와대로 갔을까

결국 더 이상의 반전 카드는 없는 것일까. 다시 핵심은 2000년 4월 18일 이후 김경준씨와 함께 한 MB 측근들, 구체적으로 김백준 비서관과 이진영씨다. 이들은 2007년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청와대로 들어갔다.

미국 재판에서 사전 증인심문 등의 자료를 보면 이진영씨가 LKe뱅크에 입사한 것은 2000년 5월 2일로, 당시 BBK투자자문에서 일하던 김윤경씨의 소개로 4월에 MB·김백준·김경준·이보라의 면접을 보고 들어왔다. 그의 첫 직책은 이명박 회장의 비서였다. 타이핑과 편집 등 문서정리만 하던 이진영씨는 김경준씨의 지시로 펀드업무도 봤다. 2001년 2월, 트레이딩룸으로 옮긴 이진영씨는 옵셔널로 소속을 바꿔 일한다. 김백준씨와 이진영씨는 MB가 공동대표를 사임한 한참 뒤, 주가조작이 이뤄지는 시점까지 회사에서 일한다. 그리고 MB는 대통령이 된 후 그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인다. MB가 김경준씨의 범죄와 무관하다면 김경준씨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청와대에 불러들이지 않는 것이 맞다. 범죄와 연관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MB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청와대 부속실에서 일을 한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기자는 여러 해에 걸쳐 MB 청와대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이진영과 김백준의 근황을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미 해외로 나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140억 다스 반환과 관련해 MB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문서에 대해 MB 쪽의 반응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9월 27일 MBN <판도라>에 출연한 주 기자는 “이 일에 당시 민정수석실과 김재수, 그리고 BBK 특수본 검사인 김기동 검사가 관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준씨가 <주간경향>에 보낸 편지 등에서 주장한 검찰의 형집행 순서 변경으로 미국 이송 제안 등과 다스 140억 반환대책이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2011년 2월 다스가 김경준씨 계좌에서 140억을 인출하는 데 청와대가 개입되었다면 위법일까. 판사 출신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사실이라면 직권남용에 해당하며 재산상 범죄도 사실관계에 따라 성립할 수 있다”고 답했다. 9월 29일 <주간경향>의 질문에 현재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동 검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황당한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출처  “다스 140억 반환 청와대 개입” 주진우 문서가 드러낸 증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