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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림 가면에 신변보호 요청... 성심병원 간호사의 고발

스크림 가면에 신변보호 요청... 성심병원 간호사의 고발
“‘노조 가입하면 죽어’... 부서장이 속삭였다”
[오마이뉴스] 글: 이주연, 사진: 조혜지 | 17.12.06 16:04 | 최종 업데이트 17.12.06 16:28


▲ 전국보건의료노조 한림대 의료원 지부가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직장 갑질 노동탄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선 성심병원 간호사 등 노조원들은 내부자 색출을 우려하며 '스크림' 가면을 쓰고 발언을 진행했다. ⓒ 조혜지

할 말은 많지만 가면을 썼다. 정작 문제 있는 사람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할까봐, 죄 없는 다른 노동자가 다칠까봐 택한 일이다. 한림대학교 의료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가 '스크림' 가면을 쓴 채 6일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체육행사 때마다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옷을 입고 춤을 추게했다는 그 성심병원이 한림대의료원 부속 병원 중 한 곳이다.

"노조 출범 후 의료원은 사과문을 직원들에게 보냈지만 정작 노조활동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조에 가입하면 직장상사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가입원서를 찢거나 가입자를 색출해 불안을 조성했습니다."

지난 1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림대학교의료원지부가 설립된 이후 의료원 측이 "노동조합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지만 '나'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게, 마스크 안에 철저히 얼굴을 숨겼다. 옷도 간호복으로 갈아입었다.

"워낙 내부에서 탄압이 심해서 신변보호를 해야 합니다. 방송에 나갈 때는 꼭 음성변조도 해주세요."

노조 관계자의 신신당부가 이어졌다.


노조 가입에 탄압 이어지지만... “왜 진작 목소리 내지 못했을까 후회”

어떤 탄압이 있었기에 가면까지 썼을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제 윗사람이 불이익을 받게 돼요. 윗사람의 윗선이 압박을 할 테니까요. 맨 꼭대기에서 아래로, 아래로, 점점 더 강도는 심해질 거예요. 저한테 폭언을 하는 건 바로 윗사람이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꼭대기인데 제가 드러나 봤자 제 윗사람이 다쳐요.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 사람도 노동자인데."

그러면서 그는 "병원이 굉장히 폐쇄돼 있다, 군대라고 보면 된다, 윗사람이 얘기하면 무조건 들어야 한다"라면서 "얼굴을 드러내면 윗사람에 불이익이 많아지는데 그 미안함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나'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노조 가입 사실 드러날 경우 자신에게 폭언을 할 '윗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스크림' 가면을 택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노동자의 절규에요. 당연히 지켜져야 할 노동시간,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건데... 재단이 이번에 조직문화 개선안이라고 '정시 출퇴근 실시'를 내놨는데 당연한 권리인데... 내가 왜 고마워할까... 그게 괴로웠어요."

또 다른 간호사 B씨는 '자신에 대한 후회'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왜 진작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후회돼요. 우리가 모여서 목소리 내니까 단박에 체육 대회가 폐지되잖아요. 이럴 수 있었는데 왜 못했나... 이제 목소리 내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두 간호사는 지난 1일, 처음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성심병원 회식자리 성희롱 고발 직장갑질119는 15일 성심병원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이 있었다는 고발을 공개했다. ⓒ 신지수


“정수기 물 받아 VIP 발 닦는 야만적 갑질, 뿌리는 재단에 닿아있다”

"모든 '갑질'은 재단에서 비롯됐다."

철저하게 을이었던 간호사들은 문제의 '꼭대기'로 재단을 지목했다. 한림대의료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정적 춤을 강요한 분위기를 만든 것도 재단 '일송 가족의 날'이었다. 임신 30주가 넘은 임신부의 땡볕 응원 연습도 재단 행사를 위한 것이었다. 발표가 다가오면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준비하여 실제 발표자는 성적 잣대로 정해야 했던 공포의 화상회의(병원 발전을 위한 제언 등을 주요 보직자들에게 발표하는 형식의 회의)는 재단 이사장이 직접 주관했다. 정수기 물을 받아 VIP 발을 닦는 야만적 갑질 사례의 뿌리가 재단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 기자회견문 중

이같은 문제들이 불거지자 뭇매를 맞은 한림대의료원은 지난 4일 조직문화 개선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는 ▲ 연례 체육대회 행사(일송 가족의 날) 폐지 ▲ 적정 수 직원 충원 ▲ 정시 출퇴근 실시 ▲ 자율적 연차휴가 사용 보장 ▲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금지 등이 담겼다.

당연히 지켜야 할 근로기준법 내용이었지만 직원들은 노조 설립이 가져온 성과라며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환영이 분노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면에서 "재단 측의 노조 죽이기가 노조 조합원 탈퇴 회유와 느닷없는 직장 노조 이용 방식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강남·동탄·한강·한림성심병원 4곳 의료기관의 초대 지부장으로 선출된 채수인 지부장은 이날 회견에서 "동탄, 한강 병원에서 수간호사들이 인사 고과를 운운하며 조합원들을 회유하려 했고, 강남 성심병원은 조합 가입 원서를 회수하거나 노조비를 부풀리는 등 거짓 정보를 유통했다"라며 "1,700명 노조원들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정 처벌을 촉구한다, 갑질에 노조 탄압까지 하는 윤대원 이사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노조원들이 직접적인 언어 폭력을 구사하고 노조 가입을 막는 수간호사 등이 아니라 재단을 조사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노조 방해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조합원은 부서장이 다가와 녹음을 피하려는 듯 개미 소리로 '노조 가입하면 죽어'라고 말했다는 진술도 있다. 총체적으로 진행되는 조합원 탈퇴 공작, 노조에 대한 혐오감 확산은 한림대학교의료원 소속 병원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부서장급들이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누군가 기획하여 세밀한 방법까지 교육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학교 법인 일송학원을 주목하는 이유다." - 기자회견문 중

▲ 전국보건의료노조 한림대 의료원 지부가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직장 갑질 노동탄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림대의료원은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 등 인격 모독적 장기자랑을 강요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 조혜지

기자회견에 함께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성심병원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이 이뤄지고 있는데 사측은 조합원의 노조 가입을 막고 있다, 끔찍하다"라며 "재단에서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노조 탄압행위가 진행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정부가 나서서 한림대 재단의 잘못된 노동 행태를 일벌백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 역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곧 환자들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다, 심지어 의료 소모품도 간호사들이 돈 내서 사고 있다고 한다"라며 "'보건의료 인력지원 특별법이 제대로 제정돼야 한다, 노동자들의 절절한 마음을 국민께 전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출처  스크림 가면에 신변보호 요청... 성심병원 간호사의 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