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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통사·자유한국당에 발목 잡힌 ‘통신비 인하’

이통사·자유한국당에 발목 잡힌 ‘통신비 인하
야당 반대에 ‘버스 와이파이’ 예산 반토막
취약계층 1만1천 원 할인 지연
선택약정할인 반쪽 적용…보편요금제 불투명
자유한국당 “교육상 안좋아” 황당 논리

[한겨레] 안선희 기자 | 등록 : 2017-12-07 16:42 | 수정 : 2017-12-07 21:33


▲ 그래픽_김지야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이 통신사와 야당의 ‘발목잡기’로 무산되거나 반쪽짜리로 전락하거나 기약없이 연기돼 ‘가계 통신비 경감’이라는 정책목표가 멀어지고 있다.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회에 따르면, 지난 6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가 제출한 ‘버스 와이파이 구축’ 예산 12억5천만 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6억 원이 삭감됐다. 정부는 내년도 시내버스 4,200대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전국에서 운행 중인 버스 5만대에 대해 공공와이파이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내년 예산으로 12억5천만 원을 제출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예산 통과를 집요하게 반대했다”며 “사실 규모가 큰 예산도 아닌데 ‘통신비 인하’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이라고 보고 정치 논리에 의해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15일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통신사가 하든지 지자체가 하든지 내버려 놔두면 되는데 왜 국고를 들이느냐”, “우리 아이들 그러지 않아도 핸드폰 가지고 허구한 날 살고 있는데…교육상으로도 이런 것 권장하는 것 아니라고 본다” 등의 논리를 펴며 예산삭감을 주장했다.

정부는 예산이 줄어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이동통신 유통점들. 한겨레 자료 사진

‘버스 와이파이 구축’은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 6월 22일 발표한 ‘통신비 절감 대책’ 가운데 하나다.

당시 국정기획위원회는 ‘공공 와이파이 확대 구축’ 외에 ‘취약계층 요금감면 확대’, ‘알뜰폰 지원대책 마련’, ‘선택약정할인율 상향’, ‘보편요금제 출시’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 정책들이 난관에 부딪혔다.

정부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기존에 요금감면을 받던 저소득층은 월 1만1천 원을 추가로 감면해주고, 기초연금을 받는 65살 이상의 고령층은 새로 월 1만1천 원을 감면해주는 방안을 지난 8월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열린 규제개혁위원회는 이중 고령층 감면 방안에 대해 ‘계속 심사’ 결정을 내려 제동을 걸었다.

규개위는 정부가 중요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고 할 때 거쳐야 하는 심의기구로, 당연직 외에는 모두 교수 등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돼있다. 규개위가 노인층 요금 감면을 유보한 것은 사실상 이통사들의 반대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통사들은 이날 회의에서 감면 연령을 65살에서 70살로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규개위는 이 안건을 정부가 운영 중인 ‘가계통신비 정책협의체’에서 논의해오라고 공을 넘겼으나, 협의체에도 이통 3사가 참여하고 있어 여기서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언제 시행될지 기약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달 8일 타결된 정부와 에스케이텔레콤(망 의무제공사업자) 사이의 알뜰폰 도매대가 협상도 에스케이텔레콤의 버티기로 정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국정위 발표에서는 알뜰폰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엘티이(LTE) 요금 수익에서 알뜰폰업체가 갖는 비율을 10%포인트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결과는 7.2%포인트에 그쳤다. 알뜰폰업체들은 지난해 영업적자가 317억 원에 이를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앞서 지난 9월 15일부터 시행된 선택약정할인율 상향(20%→25%)도 1,400만 명에 이르는 기존 가입자의 잔여기간에 대한 소급적용이 무산되면서 큰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선택약정할인은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에게 주는 할인 혜택이다. 당시 이통사들은 소급적용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며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정부를 공격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보편요금제 출시’도 이통사와 자유한국당이 이미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보편요금제는 ‘국민 누구나 적정 요금으로 기본적인 수준의 음성·데이터를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1위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에 관련 요금제 출시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정부는 ‘월 2만 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 수준을 예시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체에서 내년 2월까지 논의한 뒤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협의체와 국회 모두에서 합의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선택약정할인율 인상과 보편요금제 출시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주요 공약이었던 ‘이동통신요금 기본료 폐지’가 사실상 무산되고 대안으로 나온 정책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기본료(1만1천 원) 폐지’는 이통사들의 반발로 논란을 거듭한 끝에 국정기획위가 ‘장기 검토 과제’로 전환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통사들은 기본료 폐지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통신비 인하 방안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국회까지 민심을 거스르며 통신사 인하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국회와 이통사, 정부는 통신비 부담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무산, 반쪽, 연기…이통사·야당에 발목 잡힌 ‘통신비 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