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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 140억 비밀협상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가 주도

다스 140억 비밀협상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가 주도
삼성 다스 미국 변호사비 대납, 이건희 특별사면 대가?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8.02.10 13:34:01 | 수정 : 2018.02.10 14:08:28


▲ 김백준 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총무기획비서관이 지난 1월 17일 구속 후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오늘 중앙지검은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대납 등 사건’ 수사를 위하여 삼성전자 사무실,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였습니다.” 2월 8일 오후 늦은 시간.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짤막하게 문자로 전달된 공지이다.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대납. 어떤 비용을 말하는 것일까.

다스가 미국 법원에 김경준 부부를 상대로 140억 투자금 반환 소송을 낸 것은 공식적으로는 2003년 5월 3일이다.

이와는 별도로 이듬해 2월 27일 김백준은 Lke뱅크를 대표해 100억대 투자금 반환 및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한다. 한편, 2004년 4월 4일 미국 연방검찰이 김경준 씨와 에리카 김 씨를 상대로 범죄수익 환수 민사몰수 청구소송을 낸다. 6월 1일에는 옵셔널벤처스가 38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길고도 복잡한 3자 소송’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간경향>은 지난해 10월, 이 소송 관련 다스 내부서류들을 다수 입수해 보도했다. 이 서류들은 다스 전 직원이었던 김종백 씨가 이명박(MB) 청와대 등에 팩스 전송을 하면서 보관해 오던 서류다.

입수서류에 따르면 미국 법원에서 다스는 김경준씨 측 및 옵셔널벤처스와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김경준씨와 벌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림 루거(Lim Ruger·Lim, Ruger & Kim LLP) 로펌이 주도하고 있었고, 옵셔널 측과의 소송은 그레고리 M.리 변호사가 맡고 있었다.

그런데 한 회사가 더 있었다. 에이킨 검프(AKIN GUMP)라는 대형 로펌이다. 삼성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의 관심은 미국 소송을 대행한 이 로펌으로 쏠리고 있다.


에이킨 검프 개입, <주간경향> 최초 보도

▲ 지난 1월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이명박이 내방한 홍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다스 측이 청와대 보고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PPT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김백준과 구두합의를 통해 영입되었으며, 따라서 다스와 별도의 수임계약은 없음’으로 언급되어 있다. 다스 측 문서를 근거로 에이킨 검프와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관련 사실을 보도한 것은 지난해 10월 <주간경향> 보도가 최초다. 문서에는 담당 변호사로 김석한 변호사와 카라진스키 변호사를 언급하며 두 사람의 간단한 인적사항도 게재돼 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다스 문건에 따르면 이 회사는 문건이 작성된 시점에 “스위스 형사압류건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도대체 이 회사는 어떤 회사길래?

에이킨 검프의 행적을 쫓다보면 ‘워싱턴 K스트리트’의 대표적 로비 전문 로펌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이 회사를 세운 이는 ‘마지막 소련대사이자 첫 러시아대사’로 유명한 로버트 스트라우스다. 다스 문건이 언급한 카라진스키 등은 이 회사의 LA지부 변호사로, 한인관련 소송에서도 이름이 거론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2003년 현대건설의 이라크 미수금 관련 국제소송도 이 회사가 맡았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은 MB가 사장을 역임한 회사였다.

2012년 1월 31일자로 작성 날짜가 명기되어 있는 다스의 ‘BBK소송 현황’이라는 내부문건에는 이 에이킨 검프라는 회사의 지위를 Leading Counsel, 즉 소송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이라고 못박고 있다. 변호인은 앞과 동일하게 김석한과 카라진스키로 되어 있으며, 이들의 선임시점을 문건은 2009년 3월로 언급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이 미국의 다스 관련 소송들뿐 아니라 파커밀즈 파트너 법무법인(Parker Mills LLP)이 변호를 맡은 미국 정부와 김경준 씨 사이의 재산소송, 그리고 대서양 건너 스위스에서 진행 중인 데스 구테스(Des Gouttes) 법무법인이 맡은 김경준 씨의 알렉산드리아 예금계좌 압류소송도 총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뿐 아니다. 다스 기획팀이 2009년 9월 30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BBK사건 합의문안 승인요청의 건’ 문건에 따르면 에이킨 검프는 김경준 씨 측 변호사인 에릭 호니그(Erig Honig)와 합의문안을 작성해 승인을 요청했다. 이 합의문(초안)은 에이킨 검프의 변호사인 카라진스키가 다스 기획팀 문건 작성 하루 전(9월 29일) 작성했으며, 영문과 한글번역본 전문이 첨부되어 있다. 다스 측과 김경준 씨 측의 합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경준 측은 다스에 반환하지 않은 140억 원과 2001년 8월 17일부터 2009년 9월 30일까지의 법정이자(원금의 약 50%)를 합산한 금액인 196억8250만 원을 다스에 지급해야 하며(이자 56억8250만 원) ▲김경준은 다스가 승인한 내용과 양식으로 다스에 공식적인 서면 사과문을 발송하고 ▲다스와 김경준은 상호 간 화해결정문을 교환하며 ▲다스는 캘리포니아 주법원 소송 및 미연방법원에 계류 중인 청구 일체를 더 이상의 심리 없이 취소해달라고 신청하고 ▲다스는 스위스 검찰에 대해 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 명의의 계좌에 대한 절차를 중지하도록 요청하며 ▲양자의 변호사 비용은 각자 부담하고 ▲양 당사자의 합의안은 서면으로 작성돼 보관되어야 하고, 양자가 서명하기 전까지는 효력은 부인된다.”

이 합의문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원금뿐 아니라 이자까지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과 “다스가 정하는 내용과 양식으로 김경준이 공식적인 서면사과문을 발송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나머지 항목은 이 두 조치가 이뤄지고 난 다음에 다스 측과 김경준 측이 각각 취해야 할 조치를 담고 있다.


다스 측 140억 송금 이면합의서는 어디에?

담고 있는 내용만 보면 이것이 다스와 김경준씨 측의 ‘이면합의서’로 보인다.

그런데 실제 실행된 조치는 이 ‘에이킨 검프판 이면합의서 초안’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김경준 씨는 이자 56억825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감옥에 갇혀 있는 김경준씨가 다스 측에 사과문을 발송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스의 이문성 전 기획팀장이 2011년 6월 5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보고사항’이라는 제목의 내부문건은 그해 5월 23일 자로 나온 ‘다스 변호인과 김경준 측 변호인 답변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양 당사자는 중재판사의 중재로 2010년 11월 30일 140억 원에 합의서를 작성하게 되었으며, 스위스 은행 계좌 140억 원 송금은 쌍방합의 및 스위스 검찰의 명령으로 2011년 2월 2일 다스에 송금하게 됨”이라고 되어 있다. 앞서 에이킨 검프가 다스를 대리해 마련한 합의서 초안에서부터 최종 공식 합의에 이르기까지 총 428일이 걸린 것이다.

다스 전 직원 김종백 씨가 검찰 첨단수사부에 제출한 문서. MB 청와대 보고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PPT 파일에는 에이킨 검프가 김백준 비서관과의 구두합의로 영입됐고 다스는 비용 지출을 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김백준 전 비서관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에이킨 검프 미국 변호사 비용은 삼성이 대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종백-주진우 제공

미국 법원에 제출된 합의서는 송금과 이행절차를 담은 공식적인 합의서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에이킨 검프의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합의서는 ‘이면 합의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김경준 씨의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은 다스라는 법인에 공식사과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스를 실소유하고 있는’ 특정개인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양측이 서명한 이면합의서는 김경준 씨와 다스 측이 각각 보관하고 있었다. 다스 측의 이면합의서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었을까.


실소유주 MB, 김백준 증언이 결정적 역할

검찰은 MB ‘40년 집사’ 김백준 전 총무비서관의 진술에 따라 영포빌딩 지하 사무실을 두 차례에 걸쳐 압수 수색을 했다. 사정당국자는 <주간경향>에 “다스 실소유주를 밝힐 수 있는 특급기밀서류가 지하 2층 사무실에서 발견돼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 특급기밀서류 중 다스와 김경준 측이 작성한 이면합의서가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주간경향>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백준 전 총무비서관이 진술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김 전 총무비서관은 검찰 출두 전 ‘양심에 따라 사실대로 밝혀라’는 가족 조언에 따라 협조적으로 진술했으며, 구체적 일시와 장소, 만난 사람까지 자세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경향>이 지난해 10월에 입수해 보도한 문건들은 이번 검찰 첨수부 수사 때 주진우 기자와 김종백 씨가 제출한 문서들이다. 앞서 인용한 문서를 근거로 검찰은 김 전 비서관에게 다스와 계약을 맺은 미국 변호사들 이외에 에이킨 검프와 맺은 구두협의는 무엇이냐고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소송비용 대납은 그 과정에서 밝혀졌다.

2월 8일 이학수 전 부회장 주거(타워팰리스)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은 특히 이학수가 사용하던 구형 폴더폰을 여럿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학수 주거 수색은 김 전 비서관을 비롯해 MB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주고받은 문자 확보가 목표였다. 사정 당국 주변에서는 다스뿐 아니라 이학수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을 다른 연락사항의 폭발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최순실 특검 과정에서 나온 이른바 ‘장충기 문자’와는 비교되지도 않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검찰은 수차례에 걸친 다스 미국 변호사비 대납과 MB 임기 시기에 시행된 이건희 회장 1인 특별사면(2009년 12월 29일) 사이의 대가성 성립 여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김종백 씨 제출문서 작성과 관련된 증인들 전부가 소환되지 않았지만 이미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를 입증할 핵심 증언과 자료는 거의 다 확보한 상황이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직후가 MB 소환시점이라는 것이 사정 당국 주변에서 나오는 지배적 전망이다.


출처  [단독] 다스 140억 비밀협상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가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