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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이버→보안요원→보수단체 ‘3단계 댓글공작’ 계획

경찰, 사이버→보안요원→보수단체 ‘3단계 댓글공작’ 계획
2011년 경찰 ‘여론대응 문건’ 보니
쟁점별 인터넷 여론 따라
88명→1860명→7만명 순차 동원
게시글 작성·인터넷 투표 조작도
“여론조작 시비 휘말릴 수 있다”
비밀 유지 위해 ‘면대면’ 지시
경찰 “한명이 이야기 했을 뿐”
진상조사 결과 축소 움직임

[한겨레] 하어영 정환봉 <한겨레21> 기자, 장수경 기자 | 등록 : 2018-03-12 18:31 | 수정 : 2018-03-12 22:13


▲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건물. 김경호 선임기자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온라인 여론조작을 위해 세운 계획은 은밀하고 치밀했다. <한겨레>가 12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안보 관련 인터넷상 왜곡 정보 대응 방안’(대응방안, 2011년 4월 18일), ‘보안 사이버 인터넷 대응 조치 계획(비공개)’(조치계획, 2011년 8월 18일)을 보면 경찰이 온라인 여론조작의 불법성을 미리 인지하고 비밀리에 활동한 정황이 드러난다.

여론조작 방식도 인터넷 투표, 댓글 작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이른바 ‘왜곡 정보’의 전파 단계별 대응 계획도 치밀하게 세워 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사건의 전모를 축소하는 설명을 내놨다.


“여론조작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조치계획’ 문건에는 경찰이 스스로의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 또는 불법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

이 문건은 활동 관련 유의사항으로 “인터넷 여론조작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댓글 여론 조작을 비밀리에 진행하려던 흔적은 더 있다. 같은 문건에는 “사이버 요원이 이미 개설해둔 실명, 차명 아이디(ID) 등”을 이용해 대응하라고 실행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찰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여러 아이디를 이용해 여론조작에 나서기로 계획했다는 뜻이다.

온라인 대응 작전과 관련한 지시사항도 공식 계통과 달리 은밀하게 전달하기로 했다. 이 문건에는 온라인 여론조작 지시와 관련해 본청(20명) 요원이 직접 설명을 통해 ‘면대면·구두’로 지시 사항을 전달하도록 되어 있다. 공문 등 문서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조처다.


인터넷 여론 단계별 꼼꼼한 대응 방안

경찰은 ‘왜곡 정보’의 전파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치밀한 대응 계획을 세웠다.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네티즌 관심 미미, 왜곡 정보 등 사전 대응 필요”한 1단계의 경우 보안사이버수사요원 88명만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응 방법은 “보안사이버요원 동원, 주무부서 공식입장 등 사실 전달”에 그친다.

하지만 “왜곡 여론 확산, 전 보안역량 투입 진화 필요”로 정의된 2단계 국면에는 경찰 내부 보안요원 전원(1860명)을 동원하며 “이슈별 주무 계장 주관, 전 지방청·경찰서 보안요원 동원 왜곡 정보에 대한 공식입장 등 사실 전달”을 할 것을 계획했다.

“왜곡 여론 광범위 확산, 포털 보수단체 등 동원 필요”한 3단계의 경우 1, 2단계 경찰 인원과 온라인 보수단체 7만7917명을 동원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대응 방식은 사실 전파와 함께 “보수단체원의 투표 등 참여를 유도”하도록 정하고 있다. 댓글 또는 커뮤니티 등 게시글을 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라인 폴’ 등 여론조사까지 조작하려 했다는 정황인 셈이다.


경찰은 여전히 사건 축소 시도

이처럼 구체적인 ‘댓글 조작’ 실태가 드러났지만 경찰은 여전히 사건을 축소하려는 모습이다. 경찰청은 이날 ‘레드펜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특별수사단을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경찰도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처럼 ‘댓글 조작’에 나섰다는 <한겨레> 보도([♣<한겨레> 3월 12일치 1·6면)를 사실로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댓글 조작’ 사실에 대해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날 경찰청 진상조사팀이 내놓은 3쪽짜리 보도자료를 보면, ‘댓글 조작’과 관련해 “11년에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직원들이 당시 상사로부터 정부정책에 대한 지지 댓글을 게시하도록 지시를 받아 일부 실행한 사실이 있다”는 단 세 줄만 기재돼 있다.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댓글 관련해서는) 한 명이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조사단 스스로 조사 활동의 의미를 축소한 셈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6일 국회 사개특위 업무보고에서 ‘댓글 활동을 한 바 없느냐’는 질문에 “군 하고 협조를 해 갖고 댓글작전을 수행한 것은 아닌 걸로 확인”했다고 답한 바 있다. 경찰청 진상조사단이 댓글 공작 정황을 확인하고 일주일 가까이 지난 뒤였음에도 ‘군과의 협조’라는 단서만 달아 국회를 상대로 왜곡 보고를 한 셈이다.

이에 경찰이 치안감 이상급을 단장으로 꾸리겠다는 ‘특별수사단’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재정 의원은 “자체 조사가 됐건, 다른 기관의 조사가 됐건 당시 경찰 지휘라인은 물론 해당 업무에 종사했던 경찰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단독] 경찰, 사이버→보안요원→보수단체 ‘3단계 댓글공작’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