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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패스트트랙과 4대 개혁입법

패스트트랙과 4대 개혁입법
[민중의소리] 고희철 보도국장 | 발행 : 2019-04-28 13:39:42 | 수정 : 2019-04-29 07:59:26



역사가들은 새로운 건설은 구태의 파괴를 동반한다고 말했다. 지금 국회는 한 시대가, 또는 한 세력이 어떻게 저무는지 잘 보여준다. 얼마나 요란하게 괴성을 지르고 얼마나 추악하게 악다구니를 하고 있는가. ‘동물국회는 동물 비하니 괴물국회라 하라’는 일갈이 적절하다.

지금의 파괴는 짧게는 촛불이 밝혀진 겨울부터 지체된 것이다. 만약 박근혜가 기무사가 검토한 대로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했다면 구시대의 확실한 무덤이 됐을 것이다. 또는 정치권과 사법부가 더 유능하고 철저하게 적폐를 파괴했다면 국면이 앞당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에도 여의도와 서초동에서 구세력은 살아남았다.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막장드라마 명대사에 빗댄다면, 여의도 암세포들은 손에 ‘빠루’를 들고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패스트트랙 싸움을 보면 4대 개혁입법이 떠오른다. 2004년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이 추진한 4대 입법은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과 언론관계법 개정, 과거사법 제정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박물관으로 보내야할’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사학에 개방형 이사를 도입하고 친인척을 제한하는 등의 투명성 제고, 언론의 소유지분과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법 개정은 지금도 해결이 안 된 과제다. 당시는 토착왜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최근 유행어인 ‘의회쿠데타’의 진수라 할 대통령 탄핵 불발로 17대 총선에서 날개가 꺾인 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박근혜를 수장으로 결사항전을 벌여 4대 입법을 저지했고 존재를 유지했다. 4대 입법 중 과거사법 외에는 지금도 별반 나아지지 못했다.

공수처를 신설한다고 토착왜구당이 걱정하는 것처럼 당장 자신들을 잡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선거제 개혁 역시 결과적으로 토착왜구당이 비례에서 상대적으로 재미를 봐 지역구 패배를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법안 논의 도중 민주당 일각에서 현행 제도가 더 유리하다며 미온적으로 나왔다는 분석도 근거가 없지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야 여야 의견 차가 그리 크지 않다. 즉 ‘괴물국회’는 법안 내용을 놓고 벌어진 다툼이 아니라 총선을 앞둔 토착왜구당 투쟁전략의 결과다.

‘헌법수호, 독재타도’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난장판을 키운 것은 토착왜구당이다. 자신들의 성과와 강점을 부각하기보다 문재인 정부를 무력화하고 개혁을 무산시켜 승부를 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니 만사 반대다. 주말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의 제목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짓는다면 ‘소득주도성장 반대, 한반도 평화 반대, 탈원전 반대, 4대강 보 해체 반대, 소방관 국가직화 반대, 산불 규탄, 미세먼지 규탄, 한일관계 악화 규탄, 패스트트랙 반대, 종북주사파 문재인 반대 결의대회’ 정도 되지 않을까. 갈수록 반대사항은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익숙하게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은 ‘수령제’, ‘김정은 폭정’을 운운하며 열변을 토한다. 색깔론은 원래 깊이 신뢰하는 이들은 별로 없어도, 상대에게 불안함과 비호감을 씌우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선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유구한 ‘김대중 비토론’에 공감한 이들 중 진짜 김대중을 간첩이라고 믿은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이 실제 무장혁명을 꿈꿨다고 지금 생각하는 이들은 얼마나 있나.


패스트트랙 싸움에서 15년 전의 4대 개혁입법이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북한의 대남적화노선에 동조하는 것으로, 사학법 개정을 좌파 전교조 세력의 학교장악 음모로 매도했다. 당시 박근혜의 장외집회 사진이 지금은 그저 웃픈 풍경이지만, 그때 살아남은 암세포가 아직도 거세게 생존투쟁을 하고 있다.

물론 암세포만 죽인다고 당장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난치병이 깊이 침습했다. 그러나 몇 년 뒤 같은 암세포가 재발해 발악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이번엔 확실히 수술해야 한다.


출처  [기자수첩] 패스트트랙과 4대 개혁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