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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염호석 사건, 정보경찰 처음부터 끝까지 삼성 손발 구실했다

고 염호석 사건, 정보경찰 처음부터 끝까지 삼성 손발 구실했다
정보경찰, 故 염호석씨 유족에 직접 돈 전달하고 화장에도 개입
경찰청 진상조사위, ‘중립성 담보하고 유감 표명하라’ 권고
“윗선 규명 못 했는데 수사의뢰 없이 마무리” 비판도 나와
인권단체들은 이날 ‘정보경찰 폐지’ 성명 내기도

[한겨레] 정환봉 기자 | 등록 : 2019-05-14 15:32 | 수정 : 2019-05-14 17:07


▲ 유남영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경찰의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의 장례 개입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경찰이 삼성의 손발처럼 움직이면서 삼성의 노조 탄압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조 분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도록 유도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정보경찰은 삼성 쪽에 노조 움직임과 유족 동향에 대한 주요 정보를 수시로 알려주고 노동조합장례가 아닌 가족장을 치르는 대가로 회사가 마련한 수억원의 돈을 유족에게 직접 전달하는 역할까지 했다. 또 유족이 가족장을 치르도록 설득할 수 있는 지인까지 찾아내 삼성 쪽에 소개해줬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정보경찰의 이같은 활동이 직무범위에서 벗어난 부당한 개입이라고 보고 노사 관계에서 객관의 의무를 위배한 것에 유감을 표하고 정보활동의 중립성을 담보하라고 14일 권고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이었던 염호석씨는 2014년 5월 17일 강원도 강릉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지회의 승리를 기원한다”, “노조가 승리하는 날 장례를 치러달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염씨는 부모에게도 “내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장례를 치러달라”라는 당부를 했다.

염씨의 아버지는 애초 아들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를 노조에 위임했고 2014년 5월 18일 새벽 2시께 강릉의료원에 있던 아들의 주검을 서울 강남구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에 안치했다. 친어머니인 김아무개씨도 같은 날 새벽 6시30분께 서울의료원에 도착해 장례 절차를 노조에 맡겼다. 하지만 아버지 염씨는 삼성전자서비스와 경찰이 집요하게 가족장을 요구하자 6억원을 받고 아들의 주검을 인도받아 부산으로 향했고, 경남 밀양에서 화장했다.

경찰과 삼성의 유착은 숨진 염씨에 대한 실종 신고가 있었던 2014년 5월 16일부터 시작됐다. 실종 신고 이후 당시 경남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 하아무개 경사는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 쪽에 염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한 결과를 알려줬다. 실종신고 이튿날인 17일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 김아무개 계장은 염씨가 숨진 강릉으로 가던 중 경남지방경찰청 정보3계장인 하아무개 경정에게서 ‘가족장으로 진행하도록 합의를 주선해보라’는 전화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같은 날 하아무개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은 아버지 염씨 등의 동선을 세세하게 삼성전자서비스 쪽에 알려줬다.

이같은 정보를 전해 들은 삼성전자서비스 북부산지점장은 아버지 염씨가 이동 중 머문 단양휴게소에 찾아가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장례비를 줄 테니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러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 직원들은 ‘노조가 승리하는 날 장례를 치러달라’는 염씨의 유서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같은 사실을 아버지 염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 염씨는 첫 합의 제안을 거절했고 숨진 염씨의 주검이 있는 강릉의료원 지하 장례식장 도착한 뒤 있었던 회사 쪽의 2차 합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 쪽은 유족과의 합의가 잘되지 않자 양산경찰서 김 계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은 아버지 염씨의 지인인 이아무개씨를 찾아내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게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또 이씨의 연락처를 회사 쪽에 넘겼다.

한편, 염씨의 주검이 서울의료원으로 이동한 2014년 5월 18일 오전 최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상무는 경찰청 정보국 정보3과에서 노동담당 팀장을 맡은 김아무개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김 경정은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최 상무와 아버지 염씨를 만나 “돈을 받고 장례를 빨리 치르든가 돈과 관계없이 명예를 위한다면 노조장을 치르라”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버지 염씨가 어느 정도 금액이 맞으면 가족장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김 경정은 6억원 규모를 제시한 뒤, 3억원을 먼저 지급하고 가족장을 치르면 3억원을 나중에 지급하는 방식까지 직접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회사 쪽 협상 대리인으로 나선 셈이다. 아버지 염씨가 이에 동의하자 최 상무는 삼성전자 변호사에게 합의서를 작성하도록 해 양쪽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후 같은날 오후 5시15분께 숨진 염씨의 의붓어머니인 최아무개씨는 삼성 쪽에서 3억원의 합의금을 받았다.

삼성 쪽에서 돈을 받은 아버지 염씨는 입장를 바꿔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의사를 노조 쪽에 밝히고 아들의 주검을 인도해 가려 했다. 당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이날 저녁 7시에 예정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앞 현관에 모여 있었고, 노조 관계자들은 아버지 염씨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그러자 염씨에게 가족장을 치르라고 설득한 지인 이씨는 양산경찰서 김 계장의 주문을 받고 노조원들이 운구를 방해한다며 112에 신고했다. 이씨의 신고 이후 경찰은 서울의료원에 경력을 보내 염씨의 주검이 아버지에게 인도되어 부산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염씨의 주검이 부산의 한 병원에 안치된 뒤인 2014년 5월 19일 경찰청 김 경정은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삼성 관계자와 함께 아버지 염씨를 만나 합의금 6억원 중 잔금 3억원을 직접 전달했다.

▲ 故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의 장례 개입 사건 상황 일지. 경찰청 진상조사위 제공

경찰은 염씨의 화장 과정에도 직접 개입했다. 염씨의 화장 일정은 2014년 5월 18~19일 사이 모두 3차례 바뀌었다. 처음에는 5월 22일 강원도 동해시 공설 화장장으로 예약됐지만, 이후 하루 빠른 5월 21일 부산 영락공원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최종적으로는 다시 하루가 앞당겨진 5월 20일 밀양시 공설 화장시설로 결정됐다. 경찰청 김 경정이 염씨가 화장되기 전날인 5월 19일 양산경찰서 김 계장을 부산 해운대 근처 호텔에서 만나 “화장이 빨리 진행되도록 하라”고 종용했고, 김 계장은 아버지 염씨에게 전화를 걸어 화장을 빨리할 것을 요구해 이같은 일정 변경이 이뤄진 것이다. 이 때문에 염씨의 친어머니 김씨는 아들이 화장되는 것을 지켜보지조차 못했다. 뒤늦게 어머니 김씨가 염씨의 동료들과 화장장을 찾았을 때에도 경찰에 막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양산경찰서 김 계장은 염씨의 화장이 마무리된 2014년 5월 22일 삼성 관계자를 경남 양산시의 한 주유소 근처에서 만나 수고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김 계장은 이 돈으로 한 유명 브랜드의 의류공장에 직접 연락해 시가 80만원짜리 양복 14벌을 300만원에 산 뒤 같은 부서 경찰관들에게 돌렸다. 또 고깃집에서 200여만원어치 회식을 하기도 했다. 김 계장은 삼성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뒤 법정에서 남은 돈 500만원은 당시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이었던 하 과장과 나눴다고 진술했지만, 하 과정은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김 계장과 하 과장은 염씨의 화장 과정에서 원본이 필요한 검시필증과 시체검안서 등을 사본으로 제출해 화장을 강행하도록 한 혐의로도 기소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진상조사위는 이처럼 정보경찰이 삼성 등 기업 쪽의 대리인 구실을 해온 것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고 봤다. 염씨에 앞서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2013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최종범씨 사건 때에도 정보경찰이 삼성 쪽의 입맛대로 합의를 종용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부 소속 경찰이 당시 서울 노원경찰서 정보과장으로 근무하던 김 경정의 조언을 듣고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준비한 4억9000만원의 합의금을 유족에게 대신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조사위는 정보경찰의 이같은 활동이 직무 범위에서 벗어난 부당한 노사 문제 개입이라고 보고 장례 과정에서 염씨의 친어머니가 화장장 진입을 하지 못하게 막는 등 장례 주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노사 관계에서 객관 의무를 위배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에는 정보활동의 중립성 담보와 통제 대책 방안 마련도 포함됐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씨 영결식이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엄수된 2014년 6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만장을 든 노동자들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조사를 듣고 있다. 이정아

하지만 정보경찰이 삼성이라는 한 기업의 대리인으로 나서 유족에게 돈까지 직접 전달하며 합의를 종용하고 화장 절차에 개입한 사건을 수사의뢰 없이 마무리한 진상조사위의 결정이 미흡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진상조사위는 경찰의 비협조로 당시 정보 보고서 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경찰청 등에 있는 고위 관계자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연루됐는지 규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남영 진상조사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윗선 등) 컨트롤타워는 현실적으로 파악을 못 했다. 상부에 보고한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그것을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경찰 정보 기능에 대한 수사가 전반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당사자들이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진술이 잘 안 된 것 같다”며 “조사의 한계가 있어 (조사 결과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확인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도 “이 사건에 관련된 경찰이 여럿이지만 실제 검찰이 기소한 것은 3명뿐이고 경찰 수뇌부가 이 사건에 어떻게 연루되었는지 하나도 규명된 것이 없기 때문에 진상조사위가 강제수사가 가능한 수사의뢰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들은 정보경찰 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염호석 분회장) 실종 당시 경찰은 삼성과 유착해 가족이나 지인을 감시하면서 그의 행적을 쫓았으며 장례 절차를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그밖에도) 2011년 11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후보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시민단체를 사찰했으며 선거 판세를 분석했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은 “정보경찰은 국민을 위한 기관이 결코 아니었다. 정권에게 충성하고 그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불법흥신소에 불과했다“며 “정보경찰의 폐지를 요구하며 이것이 경찰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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