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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서점·경로당까지…박근혜 정보경찰의 ‘무차별 사찰’

지역서점·경로당까지…박근혜 정보경찰의 ‘무차별 사찰’
검찰, 7개월 수사 결과 발표…강신명 등 8명 재판에
[한겨레] 임재우 기자 | 등록 : 2019-06-03 17:03 | 수정 : 2019-06-03 17:19


▲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의원 선거에 불법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신명(앞)·이철성(뒤) 전 경찰청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백소아 기자

정보경찰의 ‘선거개입·불법사찰’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가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구속기소하고,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이날 검찰이 발표한 ‘정보경찰의 선거·정치 개입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 당시 정보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나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등 정부 단체부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노동·시민단체, 공중파와 YTN 등 언론계,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회를 비롯한 문화계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정부·여당을 적대시하는 ‘정적’을 찾아내 광범위한 ‘사찰·견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경찰은 2012년 대선부터 2016년 4·13 총선까지 매 선거에도 광범위하게 개입했다. 특히 2016년 4월 총선 당시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정보경찰 조직이 총동원돼 ‘친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략을 짜고 보고서를 쓴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부터 7개월 동안 정보경찰의 불법 사찰 사건을 수사해 왔다.


공중파부터 지역서점·경로당까지 ‘사찰·견제’한 정보경찰

박근혜 정부 당시 정보경찰은 사회 전 분야를 아우르며 ‘정적’을 찾아내 ‘견제’ 방안 등을 정부에 보고했다. 특히 노골적인 ‘언론개입·탄압’ 제안은 정보경찰의 단골 소재였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정보경찰은 정부 비판보도가 많은 KBS, MBC 등의 세월호 관련 보도 축소를 권고하고, 방송사 경영진에 정부 비판보도 자제를 촉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사장 등 방송사 임원을 선임할 때 우파성향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세월호 보도를 두고 KBS 노조가 길환영 당시 사장에 대한 퇴진 목소리를 내자 “시청자를 볼모로 한 불법투쟁”이라는 비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좌파와의 문화전쟁‘을 벌였던 박근혜 정부의 기조에 맞춰 정보경찰은 ’문화예술계‘에서도 ’좌파‘를 배제해야 한다는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2016년 3월 정보경찰은 ‘좌파성향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 활동을 분석해 집행위원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부각하고 다른 영화계 인물을 활용해 영화계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2014년 4월에는 사회비판적 영화의 강세를 ‘해소’할 수 있는 인물을 신임 영화진흥위원장으로 임명해 ‘안보·북한인권’ 등을 다룬 영화제작을 독려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2013년 12월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이 흥행하자 ‘변호인이 다른 이슈와 결합해 정부 여당에 대한 여론 악화요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여론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정보경찰은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경로당이나 지역서점 등 민간 구역도 모두 ‘견제·사찰대상’으로 삼았다. 2016년 6월 정보경찰은 지역서점 문화활동지원사업에서 ‘좌파서점’들이 다수 선정돼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부적격 서점’을 걸러낼 수 있도록 심사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2월 ‘좌파진영이 경로당 여론조성 활동을 하고 있다‘며 ’보수노인단체를 통해 좌파 개입을 차단하고 경로당에 대한 다각적 지원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반면 보수단체 등 우파세력은 ‘지원과 육성’의 대상이 되었다. 정보경찰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대다수 보수단체들이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며 ‘주요 안보기념일을 활용해 대통령의 애정과 관심 표명을 추진하고 맞춤형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총선을 앞둔 보수단체 분위기를 분석한 뒤 ‘여당인사를 통해 보수단체간 결집을 유도하고 보수단체 활동력 확대를 위한 측면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무수석실’ 지휘 아래 정보경찰 총동원
2012년 대선부터 매 선거마다 개입

정보경찰은 박근혜 정부 당시 선거 때마다 정부·여당의 편에서 사실상 ‘비선캠프’처럼 조직적으로 지원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정보경찰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성장’ 등 총선 경제공약을 분석해 당·정·청의 역할분담을 통한 선제적이고 다각적인 여론전을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치러진 2014년 지방선거·교육감선거 등에서는 ‘보수언론을 통해 야권의 공천갈등 상황을 부각시켜 당시 여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는 반값 등록금이나 군복무 단축 등 야권의 ‘비현실적’ 공약의 허구성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렇게 정보경찰이 청와대와 한 몸처럼 움직인 것은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을 통로로 한 보고체계가 큰 몫을 했다. 2016년 4월 총선 당시,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은 청와대로 파견 온 현직 경찰들로 구성된 ‘치안비서관실’을 통해 경찰청 정보국에 선거정보 수집을 요청했고, 이 요구는 정보국장과 정보심의관 등 경찰청 정보국 수뇌부를 거쳐 전국 지방경찰청의 정보경찰과 정보국 분실로 전달됐다. 전국에 뿌리내린 정보경찰의 세포조직에서 수집된 정보는 다시 정보국장·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의 승인을 거쳐 별보·정책자료 등 형태로 정리됐고,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을 통해 정무수석실까지 보고됐다.


출처  지역서점·경로당까지…박근혜 정보경찰, 정부 비판자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