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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 짜서 밀양 ‘송전탑 할매’들 감시하고 회유·협박했다

경찰, 조 짜서 밀양 ‘송전탑 할매’들 감시하고 회유·협박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사건 조사결과
[한겨레] 정환봉 기자 | 등록 : 2019-06-13 12:04 | 수정 : 2019-06-13 12:07


▲ 밀양시가 초고압 송전탑 농성현장에 대한 행정대집행에 들어간 2014년 6월 11일 오전 경남 밀양시 부북면 127번 송전탑 농성현장에서 경찰들이 농성 중인 주민들과 수녀들을 끌어내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한국전력공사의 경남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경찰이 주민들을 회유·협박해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도록 하고 특정 주민들에게는 전담 정보경찰까지 붙여 사찰을 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조위)는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사건 조사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이 사건은 한전이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수송하기 위해 주민들의 제대로 된 동의를 얻지 않고 2009년 1월부터 경남 밀양, 청도 등에 765㎸ 송전선로를 놓는 공사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국책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명목으로 송전탑 반대 주민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다.

진조위 조사결과를 보면, 당시 경남 밀양경찰서는 다른 경찰서 정보관을 밀양에 근무하도록 한 뒤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특정 주민의 동향을 감시하도록 했다. 조사위가 확인한 ‘밀양 지원 정보관 근무배치표(2013.10.1. ~ 10.31)’를 보면, 마산 동부경찰서에서 밀양에 파견된 정보관은 부북 진시골에서 ‘○○○(주민) 동향관찰’ 업무를, 진해경찰서에서 온 정보관은 부북 본동에서 ‘○○○ 동향관찰’ 업무를 하도록 하는 등 총 7명의 주민들에게 감시조를 붙인 사실이 드러난다. 경찰이 반대 주민들을 1대1 사찰한 셈이다. 경찰은 사복 채증조를 활용해 신분, 소속,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주민들의 집 등을 방문하거나 활동하는 모습을 사진 찍는 등 부적절한 정보 수집활동도 마다치 않았다.

이 밖에도 경찰은 당시 반대 활동 주도 주민을 ‘강성 주민’으로 분류해 순화·설득하겠다며 회유와 협박을 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들은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설득을 한 것이지 송전탑 건설 합의를 종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조위에 밝혔다. 하지만 밀양·청도 주민들은 “(한전과 합의를 하면) 자녀를 특정 회사에 입사시켜주겠다고 회유하거나 (계속 반대하면) 지금 다니던 회사를 못 다니게 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 경남지방경찰청에서 2013년 9월 30일 작성한 ‘밀양765㎸ 송전탑 공사재개 대비 종합대책’ 중 일부 내용.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제공

또 경찰은 2013년 12월 18일 밀양시 산외면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집회하다 이를 진압하는 여경을 다치게 한 피의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밀양시청, 상동면사무소에 일부 마을에 거주하는 60~80살 여성 주민 48명 모두에 대한 사진과 인적 사항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은 48명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가족관계(세대주와의 관계)가 기재된 인명부와 이름이 기재된 48명의 주민등록상 사진을 입수해 수사에 활용했다. 진조위는 경찰이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마을주민 특정 성별과 나잇대 마을주민 전체의 개인정보를 포괄적으로 받은 행위는 주민 사찰 및 감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어 부적절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경찰의 과도한 경찰력 행사도 문제로 지적됐다. 2014년 6월 11일 경남 밀양에서는 공사를 막기 위해 농성 중인 주민들을 끌어내는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는데, 이때 경찰은 움막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천막을 칼로 찢어 밀고 들어와 농성자들이 목에 매고 있던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어내는 등 무리한 진압을 시도했다. 경찰은 농성자들을 밖으로 끌어낸 뒤에도 특별한 안전조처나 병원 후송 없이 방치했다. 같은해 7월 21일 경남 밀양시 청도에서 송전탑 공사를 재개할 때도 농성 주민의 텐트를 부수고 막무가내로 수갑을 채워 연행해 여러 주민이 다치는 결과가 나왔다.

진조위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청장이 주민 불법사찰,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또 공공정책 추진 과정에서 경찰력 투입 요건과 절차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방안을 마련하고 집회·시위에서 장소의 특성, 시위 형태, 용품 등 사고 위험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서 안전대책을 마련할 것도 권고했다.

정부에는 밀양·청도 송전탑 사건과 같은 공공갈등의 재발과 이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적 피해와 정신적·신체적 건강 피해에 관해 실태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른 치유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출처  경찰, 조 짜서 밀양 ‘송전탑 할매’들 감시하고 회유·협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