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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여명 학살 ‘산내의 비극’…69주기 위령제

7천여명 학살 ‘산내의 비극’…69주기 위령제
‘제69주기 제20차’ 산내학살사건위령제 열려
[한겨레]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 등록 : 2019-06-28 14:45 | 수정 : 2019-06-28 15:19


▲ 대전 산내 학살사건 유가족들과 제주를 비롯한 전국에서 모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 유가족 회원 및 대표들이 27일 오후 대전 동구 낭월동 옛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 산내 학살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하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제69주기 제20차 산내학살사건위령제’가 지난 27일 사건 현장인 대전 동구 낭월동 옛 산내 골령골에서 열렸다.

대전 산내 학살사건은 1950년 6월 28일부터 3차례 걸쳐 후퇴하던 군 헌병과 경찰이 대전형무소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 등 7천여명을 산내 골령골에서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이들 중에는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들도 있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연좌제 탓에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부모와 가족들의 죽음을 거론조차 하지 못한 채 한 맺힌 세월을 살아왔다. 사건이 일어난 지는 69년이 지났으나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게 된 때는 겨우 20년 전부터인 탓에 이날 행사는 ‘제69주기 제20차’ 위령제가 되었다.

이날 위령제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故 앨런 위닝턴(1910-1983)의 부인 에스타 위닝턴(87)도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워커>의 중국 특파원으로 일하던 앨런 위닝턴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으로 급파되었다. 1950년 7월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현장을 방문한 그는 취재 끝에 8월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고하며 산내학살사건을 알렸다.

에스타 위닝턴은 “남편이 한국전쟁에서 본 고통과 비참함으로 인해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만 했지만 전쟁을 일으킨 자들로부터 희생당한 수많은 분들의 후손들에 의해 인정받게 되어서 그의 희생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다”며 유족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했다. 현장의 사진을 모아본다.

▲ 학살 당시 사진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희생자 유가족.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 대전 산내 학살사건 유가족들과 제주를 비롯한 전국에서 모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 유가족 회원 및 대표들이 27일 오후 대전 동구 낭월동 옛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 산내 학살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하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 ‘산내 학살사건’을 보도한 故 앨런 위닝턴(1910-1983)의 부인 에스타 위닝턴(87)이 추도사 중 남편의 기사를 들어보이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 69년 전 대전 산내 학살사건 현장임을 알리는 안내문.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 자신도 노인이 되어버린 한 유족이 희생자 명단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아! 아버지 이름이다. 아버지 이름이 저기에 있네.”라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 석 자 앞에 연신 두 손을 모아 빌고 있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출처  [만리재사진첩] 7천여명 학살 ‘산내의 비극’…69주기 위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