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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10·26 전주곡 ‘부마항쟁’ 진압 계획도 세웠다

전두환, 10·26 전주곡 ‘부마항쟁’ 진압 계획도 세웠다
보안사령관으로 부산 찾아가 진압 계획 검토
박정희 심복인 전두환의 당시 영향력 보여줘
“지휘 계통 아니어서 하나회 격려 차원” 분석도

[한겨레] 김광수 기자 | 등록 : 2019-07-03 11:23 | 수정 : 2019-07-03 19:51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한겨레> 자료사진

‘12시 20분경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이 계엄사령부를 방문해서 계엄사령관, 제3공수특전여단장 최세창 장군, 501보안부대장 권정달 대령, 계엄사 작전처장 조정채 대령이 동석한 자리에서 사태배경 및 진행사항, 데모 진압작전 계획 등을 검토한바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 데모 진압작전이 가장 중요하며 군이 개입한 이상 데모자에게 강력한 수단을 사용, 데모 재발을 방지하고 차량시위 작전을 전개하여 군의 위세를 과시하며 조기 사회질서 회복과 계엄기간 단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여 타 지방으로 데모 확산을 방지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후 각 기관 및 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하여 계엄 장병을 격려한 후 상경하였다.’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일일까? 얼핏 보면 1980년 5월 광주 상황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7개월 전인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서 벌어진 일이다. 육군 군수사령부가 1981년 6월 30일 펴낸 <군수사사> 제1집을 보면, 부마민주항쟁 진압과 관련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등장한다. 5·18민주화운동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전두환이 박정희 유신독재의 막바지에 벌어진 부마민주항쟁 때도 진압작전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1979년 10월 부산마산민주항쟁 당시 계엄령이 선포되자 부산시청(부산 중구 중앙동) 앞에 탱크들이 배치됐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군수사사>에 드러난 전두환의 행적을 보면, 10월 18일 0시께 부산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지자 부산으로 내려와 낮 12시 20분께 박찬긍 계엄사령관 등과 시위 시민들에 대한 진압 계획을 세운 것으로 돼 있다. 보안사령관이 계엄사나 공수특전여단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두환이 이날 부산을 찾아가 계엄사령관과 진압 계획을 논의하고 공수 여단을 격려한 일은 월권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당시 박정희의 군내 심복으로서 전두환의 위상이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군수사사>를 보면 계엄사령부는 전두환이 참석한 회의가 끝난 뒤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오후 1시 30분께 공수여단과 해병대 등 3401명이 군용트럭 203대에 나눠 타고 부산시 도로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시위 시민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어 오후 5시 30분께에는 부산시내 중심지와 교통 요충지에 병력을 배치했다. <군수사사>에 기록된 논의 사항이 그대로 실행된 것이다.

물론 지휘 계통에 있지 않았던 전두환이 진압작전에 관여하진 못했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김선미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은 “당시 보안사령관은 군 지휘 계통에 있지 않았다. 박정희의 오른팔 격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실질적으로 군을 지휘했다. 따라서 전두환이 자신이 리더인 하나회 멤버들을 격려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이날 부산에서 회의를 열었을 수 있다. 전두환이 주도한 부산회의 결과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겠지만 부마민주항쟁 시위 진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 1979년 10월 부산대생들이 교내시위를 벌인 뒤 서로 어깨를 서로 겯고 부산 동래구 온천장 도로를 지나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시작됐다. 당시 부산대생들이 거리시위를 벌이며 쏟아져 나와 시민들까지 가세했고 18~19일엔 경남 마산과 창원으로 번졌다. 이에 정부는 18일 0시께 부산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 참가자들을 마구 연행해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20일 정오께에는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시위 참가자들을 연행해 시위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불과 6일 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내부자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무너졌다.★

▲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부마민주항쟁 진압작전 계획을 검토하고 지휘하였던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군수사사> 제1집(60.1.15~80.12.31).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의 행적을 담은 <군수사사>는 4일부터 10월 말까지 공개된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4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전시 ‘부마 1979 유신의 심장을 쏘다!’를 개막한다. 전시회는 서울(4~30일)을 시작으로 10월 말까지 광주(8월 16일~9월 1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창원(9월 19~30일, 3·15아트센터), 부산(10월 4~31일, 민주공원)에서 차례로 열린다.


출처  전두환, 10·26 전주곡 ‘부마항쟁’ 진압 계획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