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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비준 미루더니..결국 한-EU FTA 무역분쟁 최종단계로

ILO 협약비준 미루더니..결국 한-EU FTA 무역분쟁 최종단계로
EU 집행위, 한국 정부에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한다”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07-08 18:54:30 | 수정 : 2019-07-09 06:35:29


▲ 유럽연합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한. ⓒEU

지난 4일, 유럽연합(EU)이 우리 정부에 무역 분쟁 해결 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공식 요구했다. 2011년 한국과 EU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당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EU가 보기에 한국 정부의 약속 이행 노력이 충분치 않았던 셈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일 ‘EU의 전문가 패널 설치 요구’ 서한을 통해 한국 정부에 “올해 1월 21일 서울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 상호 만족스러운 해결책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협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협의를 통해 해당 사안이 만족스럽게 다뤄지지 못했고, 유럽연합이 제기한 이슈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EU는 한-EU FTA 13.15조 1항에 따라, 전문가 패널을 소집하여 협의를 통해 심의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현재 한-EU FTA에서 문제가 된 것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다. ILO 핵심협약은 국제노동기구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노동기본권에 대한 8개 협약이다. ILO 회원국인 한국은 현재 이 중 4개만 비준한 상태다. 한국은 EU와 FTA를 맺을 당시 나머지 4개 협약에 대해 “비준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한-EU FTA가 발효된 지 8년이 지났음에도, 한국 정부는 미비준 4개 핵심협약 중 단 하나의 협약도 비준하지 못했다.

이에 EU 측은 지난해 4월부터 한국 정부에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을 이행하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한-EU FTA 분쟁해결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사회적대화 기구(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노사 간 협의를 이끌어 내려 했지만, 경영계의 반대로 사실상 실패했다.

분쟁해결절차 돌입 예고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EU 측은 지난해 12월 실제 분쟁해결절차에 돌입했다. 그리고 ‘정부 간 협의 요청’ → ‘정부 간 협의’ →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소집’ 등의 단계를 거쳐, 현재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에 노동계와 관련 법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가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 유럽연합 ⓒAP/뉴시스


EU, (문제되는) 관련 법 조항까지 조목조목 지적
“한국,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부족해”

해당 서한에서, EU 측이 지적한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EU 측은 ‘문제가 되는 사항’으로 ▲실업자와 화물트럭 기사 등 일부 특수고용직을 ‘근로자’로 보지 않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2조 1항 해석의 문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 노조법 2조 4항 라목 ▲노동조합의 임원은 오직 그 조합원 중에서 선출되어야 한다고 규정한 노조법 23조 1항 ▲노조법 12조 1~3항에서 노조법 2조 4항과 10조와 연계해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 교부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점 등을 지적했다.

EU 측은 “(한국에서) ‘근로자’의 개념이 제한적으로 정의되고 해석되는 점과 노조간부를 조합원 중에서만 선출되도록 한 점 등이 앞서 언급한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며, 따라서 한-EU FTA 13.4조 3항 위반이라 본다”고 밝혔다. 또 “(한국의) 행정기관이 노조설립신고 필증을 교부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재량권이, 앞서 언급한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EU FTA 13.4조 3항의 마지막 문단은 양 당사자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며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이 불충분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한국 정부는) 한-EU FTA가 발효된 지 8년이 지나도록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EU 측은 “(한국 정부는) 더 나아가 이 기간 동안 위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지속적이고 계속되었다고 평가될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따라서 한-EU FTA 13.4조 3항의 마지막 문단과 부합하지 않게 행동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EU FTA 규정상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이 있으면 2개월 안에 전문가 패널을 구성해 해당 사안을 검토해야 한다. 전문가 패널은 한국과 EU, 제3국 관계자 1명씩 총 3명을 선정해 구성하며, 선정된 3인은 패널 구성 후 90일 이내에 권고·조언 등의 형태로 보고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권고·조언에 대한 이행 여부는 양측 정부의 담당 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정부 간 협의체인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위원회’에서 점검하게 된다.

한편, 이같은 상황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EU는 우리 정부의 입장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국회에서의 처리 여부가 정치적으로 불확실하다고 판단해 정부 간 협의의 다음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공식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EU의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에 대응해 전문가 패널 선정 등의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EU 측이 제기한 쟁점에 대해 전문가 패널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겠다. 동시에,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법 개정 등을 위한 국내 절차를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같은 노동부의 상황 설명이 “본질을 가리는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EU의 문제제기 중 일부를 감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EU는 해당 서한에서 ILO 핵심협약과 상충하는 근로기준법 조항까지 구체적으로 지목했고, 심지어 근로기준법 노동자 정의에서 특수고용직, 실업자, 해고자 배제 문제를 제일 첫 번째로 꼽았다”고 짚었다. 이어 “분쟁 내용에는 ‘핵심협약 비준 노력 부족’뿐만 아니라, ‘결사의 자유 원칙’을 법과 관행에서 존중, 증진, 실현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히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출처  ILO 협약비준 미루더니..결국 한-EU FTA 무역분쟁 최종단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