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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청소노동자를 “대소변 소리 들으며 밥먹고 쉽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를 “대소변 소리 들으며 밥먹고 쉽니다”
서울지역 10개 대학 청소노동자 휴게실 긴급점검
이화여대 35곳 중 32곳 지하에
명지전문대는 화장실 안에
동국대 학술관 휴게실은 기계실 안
홍익대·중앙대는 지하 주차장 옆에

[한겨레] 글·사진 정환봉 이유진 김민제 강재구 김윤주 김혜윤 서혜미 기자 | 등록 : 2019-08-19 05:00 | 수정 : 2019-08-19 07:35


▲ 화장실 옆에 설치되어 있는 서울 서대문구 명지전문대 공학관 청소노동자 휴게실.

서울 최고 기온이 34.6도까지 치솟았던 지난 9일 낮 12시 30분,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휴게실에서 67살 청소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죽음의 원인을 ‘병사’로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생의 마지막에 머물렀던 휴게실의 모습은 사망의 원인을 지병에 따른 ‘병사’라는 두 글자에 가두기엔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3.52㎡(1.06평)의 휴게실.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냉방도 환기도 안 되는 ‘휴게’ 장소가 되레 사망에 이르는 과정 중 하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 역시 이같은 휴게 장소는 병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지난 16일 서울 지역 대학 10곳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찾았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마련하고 점검에 나선 이후 몇몇 대학에서는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의 휴게실은 지하, 주차장 옆, 분진이 많은 목조장·석조장 근처, 심지어 화장실 안 등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누구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 그곳에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었다.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조형관 에이(A)동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을 물어 쓰레기장을 지나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자 음지에 컨테이너가 하나 서 있었다. 전날 내린 비로 서울의 수은주는 30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는데, 컨테이너 안은 바깥보다 더웠다. 보일러를 틀었나 해서 반사적으로 바닥을 손으로 짚어볼 정도였다. 실제 온도계로 재어보니, 컨테이너 밖 온도는 29도였지만 휴게실 안 온도는 30도였다. 기온이 올라가면 이 차이가 훨씬 벌어진다고 한다. 심지어 이날 아침부터 에어컨을 최대한 켜 놓은 결과가 이랬다. 2003년 생산된 에어컨은 학교가 여러 곳에서 쓰다가 제 기능을 거의 잃은 뒤 이곳에 설치됐다.

문제는 온도만이 아니었다. 휴게실에서 6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조형 과목 실습을 위한 석조장, 목조장, 용접장이 모여 있다. 용접장에선 쇳가루가 자글자글 밟혔고, 석조장에선 분필 가루를 들이마신 느낌이었으며, 목조장에선 눈이 따가웠다. 용접장에 16개, 석조장·목조장에 6개의 환풍기가 달려 있었다. 이 환풍기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는 돌가루와 쇳가루, 톱밥 가루는 청소노동자 휴게실로 빨려 들어갔다. 휴게실에도 환풍기가 있지만, 그나마 에어컨 바람이 빠져나갈까 봐 틀지 못한다고 한다.

▲ 일어서면 머리가 닿는 동국대 청소노동자 휴게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마련해 현장 점검에 나서면서 휴게실 환경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차근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이화여대분회장은 “지난 5~6년 동안 가장 열악한 이씨씨(ECC)와 조형관 휴게실을 개선해달라고 계속 요청했다. 조형관 휴게실은 새 컨테이너로 교체해줬고 이번 달에 이씨씨 지하 5층 주차장 옆에 있던 휴게실을 지하 4층으로 옮겨줬다. 공기청정기도 들여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화여대에 있는 청소노동자 휴게실 35곳 가운데 32곳이 지하에 위치해 있다. 7곳에는 여전히 에어컨이 없다. 이 학교에서 5년 동안 일했던 한미정(가명)씨는 “건물 설계도면에 미화휴게실 공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을 다 짓고 난 다음에 계단이나 창고 구석 등 남는 공간을 휴게실로 주는 것”이라며 “옛날 건물은 그렇다고 해도 새로 지은 건물 설계도면에는 미화휴게실을 포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씨가 말한 문제점은 서대문구 명지전문대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이 학교 공학관 휴게실은 화장실에 있다. 화장실 1칸 남짓한 크기여서 앉아있기에도 좁은 공간이다. 이 학교에서 일하는 민진순(가명)씨는 “원래 공학관 8층에 안 쓰는 예배실 자투리 공간 등에서 쉬곤 했다. 하지만 2017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뒤에 학교에서 나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할 수 없이 4층 화장실로 왔다”며 “옆에서 대·소변 보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주차장에 있는 여성휴게실을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직선거리로 100m 거리에 있는 여성휴게실에 쉬러 갈 짬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57명의 청소노동자가 일하는 이 학교 전체 건물 15곳 가운데 휴게실이 있는 곳은 10곳에 불과했고, 5곳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휴게실 10곳 중 8곳은 지하에 있었다. 차와 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주차장 휴게실에는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환풍기가 하나 있긴 했지만 작동하건 하지 않건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한 청소노동자에게 휴게시설 만족도를 1점부터 5점까지 준다면 몇점을 주겠냐고 물었다. 허탈한 웃음 뒤로 한숨이 이어졌다. “그냥 보시면 알잖아요. 솔직히 1점도 아깝죠. 그뿐만 아니에요. 폭염이라도 우리는 그냥 평소대로 일해요. 항의하면 잘리니까 그냥 지내는 거죠.”

중구에 있는 동국대의 휴게실도 23곳 중 16곳이 지하에 있다. 환풍기가 있는 곳은 전체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에어컨은 교수들이 쓰거나 강의실에 달렸던 것들을 모두 뜯어온 것이다. 새 제품이 달린 곳은 없다고 한다. 그나마 3곳은 아직 에어컨이 없었다. 이 학교 문화관 휴게실은 지하층 계단 밑에 있다. 지하라 공기가 안 좋지만 환풍기도 작고 제대로 기능을 못 한다. 교수실에 있던 뜯어와 설치한 에어컨은 낡아서 물이 자주 샌다. 가장 최악은 계단 밑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계단 밑, 지하를 좀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상에 있다고 다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 학교 학술관 2층 휴게실은 지상에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휴게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네트워크장비실’에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절반은 컴퓨터와 전선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4명이 쓰는 이 공간에서 동시에 눕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곳은 휴게실이 아니라 그냥 기계실이에요. 에어컨이 있어도 기계에서 열이나 덥죠. 아침에 문을 열고 들어오면 체감 온도가 40도는 되는 것 같아요. 전기선이 너무 많아 합선으로 불이 날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다른 공간이 없다며 휴게실을 바꿔주지 않고 있어요. 여기도 서울대처럼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바뀔지….” 이곳에서 일하는 김수정(가명)씨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 계단 밑에 휴게실을 둔 서울시립대 조형관 청소노동자 휴게실.

89명의 청소노동자가 일하는 마포구 홍익대에는 휴게실이 22곳 있다. 폭염이 심각했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에어컨이 있는 곳은 중앙냉난방이 되는 3곳뿐이었다. 그나마 올해 5월 12곳에 에어컨이 새로 설치됐다. 하지만 여전히 7곳은 실외기 등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한 장소에 있어 냉방이 되지 않는다.

홍문관 지하 6층 휴게실은 올해 에어컨이 설치됐지만, 지하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매연이 심각하다. 지하주차장 쪽으로 난 환풍기는 까만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다. “휴게실 공기가 너무 안 좋아요. 기관지가 약한 사람은 청소가 끝나도 이곳에서 쉴 수가 없습니다. 기침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동료들도 많아요. 그래도 지난해에는 선풍기 3대로 열을 식혔는데 올해는 에어컨이 들어와 사정이 좀 나은 편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정수진(가명)씨의 말이다.

<한겨레>가 찾은 대학 여러 곳이 이처럼 지하주차장 옆에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동작구에 있는 중앙대 법학관 지하 2층 휴게실 역시 지하주차장 옆이었다. 휴게실 문과 주차된 차량의 거리가 고작 두 걸음뿐인 이 휴게실에 있는 창문 아래에는 하수도가 지나갔다. 구정물이 고여있는 그곳에서 역한 하수도 냄새가 올라왔다. 창문과 문을 통해 매연도 함께 올라오지만, 환풍기 하나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70대 청소노동자는 “매연이 들어와 공기가 너무 안 좋다.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면 하수도 냄새가 올라온다”며 “(이곳에서 일하는) 16명을 한꺼번에 주차장 옆에 두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는 서울과학기술대 청소노동자 휴게실.

휴게실이 남녀 분리가 안 되어 휴식시간에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학교 의과대 건물은 경비노동자 1명과 청소노동자 3명이 한 방을 사용한다. 남녀가 함께 쓰다 보니 편히 쉬기도 어려운 데다 둘 이상이 누워 쉬기 어려울 정도로 장소가 좁다. 남녀 분리가 안 돼 옷을 갈아입을 때면 휴게실에 딸린 창고로 가야 한다.

물론 형편이 좋은 곳들도 있었다. 100여명이 일하는 마포구 서강대에는 휴게실이 20여곳인데, 모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지하에 있는 휴게실도 1~2개뿐이다. 양재남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서강대 분회장은 “2012년 서강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학교에서 노조 쪽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에어컨도 학교에서 모두 지원해줬다. 학생들도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다. 휴게시설에 대한 만족도를 묻자 이 학교에서 일하는 한 청소노동자는 주저 없이 5점을 줬다. “학교와 학생들이 협조를 잘 해줘서 좋다”고 말했다. 숭실대도 마찬가지다. 20여개 휴게실 모두 에어컨이 있다. 지난해 환기가 안 되는 휴게실은 모두 개선됐다. 이 학교의 청소노동자 김아무개(58)씨는 자신의 일터에 대해 “좋은 직장”이라고 말했다.

휴게실 환경이 안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에어컨 설치가 안 되거나, 매연이나 분진이 날리는 지하주차장이나 작업장 옆이기 때문이다. 빈 공간으로 옮기면 그만이지만, 아직도 많은 학교가 그 공간을 선뜻 내어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 낡은 장판에 덕지덕지 가벽을 붙여놓은 홍익대 청소노동자 휴게실.


최소 6㎡·지상에…권고뿐인 ‘노동부 휴게시설 가이드’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노동부 가이드)는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라 사업주는 노동자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구와 비품을 갖추고 휴게시설을 쾌적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특히 고령 노동자가 많은 청소노동자의 건강은 온도·분진 등 주변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사업주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건은 휴게시설의 위치다. 노동부 가이드는 지하의 경우 옥내 공기·악취 등 환경이 열악하므로 (휴게시설은) 가급적 지상에 설치하도록 했다. 특히 인체에 해로운 분진 등을 발산하는 장소나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장소와는 격리된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 지하실, 기계실, 화장실 등 환기가 잘되지 않는 공간을 피해야 하는 까닭이다.

노동부 가이드는 휴게시설의 1인당 면적은 의자·탁자 등을 포함해 1㎡, 최소 전체 면적은 6㎡를 확보해야 한다고 정했다. 지난 9일 67살의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서울대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성 휴게실의 경우 평소 3명의 노동자가 사용했는데 실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은 3.52㎡(1.06평)에 불과했다.

적절한 온도·습도 유지도 필수다. 노동부 가이드는 냉난방 설치와 환기시설을 마련해 여름에는 20~28도, 겨울에는 18~22도를 유지하고 습도는 50~55%를 유지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조명은 자연채광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조도는 100~200 럭스(Lux) 내외를 권장한다. 휴게시설 안 소음 허용기준은 50 데시벨(㏈)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부에서 정한 휴게시설 기준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하주차장 옆에 마련된 휴게실은 호흡기로 매연 등 유해인자가 인체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 교수는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고령인 경우가 많은데 너무 덥거나 추울 때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가급적이면 온도 등을 노동부 기준에 맞추고 환기가 잘되도록 지하실에는 휴게실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노동부 가이드가 권고 사항에 그친다는 점이다.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소속 의사 최민씨는 “노동부 가이드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는다”며 “아파트 주민들이 사비를 모아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주는 사례가 미담처럼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휴게시설에 대한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소한 노동환경이 적절한지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가 있어야 한다”며 “온열 질환을 포함해 포괄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점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학교 당국에 △휴게실 전면 개선 △폭염 속 사망한 청소노동자에 대한 책임 인정과 총장 명의로 직접 사과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 결과는 추후 총장실에 전달할 예정이다.


출처  대학 청소노동자 휴게실 가보니… “대소변 소리 들으며 밥먹고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