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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왜 이것은 ‘반쪽 짜리’ 노동이란 말인가

왜 이것은 ‘반쪽 짜리’ 노동이란 말인가
[경향신문] 이하늬 기자 | 입력 : 2019.08.25 09:04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 1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장애인 예산 확충과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합법화된 불법노동.’ 장애인 노동은 대부분 이 영역에 속한다.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법은 정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정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고용부담금’을 납부한다.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박동섭씨(47)도 20년간 한 번도 최저임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 일을 시작한 건 1993년, 박씨가 21살 때였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했다. 업무는 다양했다. 처음에는 포장업무를, 이후에는 낚싯대와 칼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한 달에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았다.


20년 일했는데, 시급은 최저임금 이하

박씨는 자신이 처한 노동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루 8시간을 일하고 9시간 동안 일터에 머무는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는 “니가 거기서 나오면 갈 데가 어디 있느냐. 계속 다녀라”라고 했다. 그렇게 20년을 일했다. 2013년 박씨의 월급은 60만원이었다. 역시 당시 최저시급(4,860원)에 미치지 못한다.

‘뇌병변’에 방점을 찍게 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년 경력’을 강조하게 되면 얘기는 다르다. 박씨는 비장애인보다 일하는 속도가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20년 경력의 베테랑 노동자다. 박씨가 비장애인이었어도 20년 동안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았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했을까.

정신장애를 가진 ㄱ씨(53)는 장애인의 합법화된 불법노동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ㄱ씨도 보호작업장에서 수년간 일했다. ㄱ씨는 비장애인과 비슷한 속도로 볼펜을 조립하고 봉투를 붙이고 쇼핑백을 접었다.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까지 일했다.

2006년부터 처음 2년 동안 ㄱ씨가 받은 월급은 9만원에서 11만원 사이다. ㄱ씨가 작업장 측에 “월급이 왜 이렇게 적으냐”고 묻자 “직장이 아니라 직업훈련 개념이라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ㄱ씨와 동료들은 밥값도 따로 내야 했다. 출퇴근 교통비와 밥값을 제외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없었다. 정규직이 된 이후 ㄱ씨의 월급은 20만원으로 올랐다.


직업 훈련만 10년? 20년?

직업훈련 개념이라면 보호작업장은 잠깐 거쳐가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보호작업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 따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증장애인은 보호작업장에서 최저임금에 한참 못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박씨처럼 20년을 머문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는 일터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및 공공기관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3.4%, 민간업체(상시 50인 이상 규모)는 3.1%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 사업장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단에 누적된 부담금은 지난해 기준 6,286억원에 달한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14%에 불과하다. 30대 기업 중 의무고용률을 이행한 곳은 대우조선해양(4.41%)뿐이다. 삼성(1.91%), SK(1.63%), GS(1.87%), 한화(1.76%)는 장애인 고용률이 2%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투자금융(0.48%)과 대림(0.91%), 부영(0.92%)은 1%도 안 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016년 실시한 기업체 장애인 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이유로 적합한 직무가 부족해서(32.0%), 업무능력을 갖춘 장애인이 부족해서(20.6%), 장애인 지원자 자체가 없어서(12.1%)라고 답했다. 하지만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은 “찾아보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 농성을 할 때의 일이 하나의 사례다. 정 위원장과 같은 중증장애인들은 1,842일 동안 농성장을 지켰다. 광화문역 측에서도 같은 시간 동안 경비를 했다. 둘 다 ‘지키는’ 노동을 했는데 한쪽만 임금노동으로 인정됐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해 여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장애계 “최저임금 보장하라”

일할 곳을 찾지 못한 중증장애인이 찾는 곳은 장애인근로사업장장애인호보작업장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업장이라는 점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서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주가 노동부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를 신청해 인가를 받으면 장애인근로사업장은 최저임금의 80% 이상을,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최저임금의 30~50%만 지급해도 된다. 이 제도는 2005년 9월에 도입됐는데 당시 최저임금 적용제외 신청인원은 140명에 불과했지만 2017년 신청인원은 9,068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2013년)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2014년)는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보장을 권고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에서도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임금 외에도 높은 장애인 연금, 작업장 매출을 통한 인센티브, 고용지원금 등이 임금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장애인은 일을 해도 비장애인보다 더 가난하다. 이런 ‘합법적인 불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난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가 밝힌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 지원방안’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제외 노동을 하는 이들의 임금은 2016년에는 최저임금의 48% 수준이었지만 2017년 47.9%, 2018년 45.3%로 떨어졌다.

장애인 단체들은 정부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고용노동부와 TF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올해 7월 ‘장애인 노동자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논의를 마무리했다. 전장연은 2022년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고용노동부는 당분간은 이 조항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정다운 전장연 상임활동가는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개선방향’ 연구에서 이렇게 썼다.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환경에서 ‘능력’을 의심받으며 ‘훈련’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일자리와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중증장애인도 노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사회는 그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도, 만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출처  왜 이것은 ‘반쪽 짜리’ 노동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