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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세번째 피고인 된 변호사 “이런 판결은 처음...”

세번째 피고인 된 변호사 “이런 판결은 처음...”
권영국 변호사, 통합진보당 해산 항의·세월호집회관련 혐의 1심서 무죄·공소기각
[오마이뉴스] 박소희 | 19.08.25 11:50 | 최종 업데이트 : 19.08.25 11:50


▲ 권영국 변호사(오른쪽)가 2018년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 기자회견에서 사법농단 피해자들의 구제책을 마련과 진상규명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자꾸 피고인이 되던 변호사가 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거리에서 공권력에 항의하다 끌려가고 구속될 뻔하고 결국 재판까지 받던 권영국 변호사다. (관련 기사 : 자꾸 ‘피고인’ 되는 이상한 변호사)

최근 ‘피고인 권영국’의 세 번째 형사재판 1심이 끝났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을 8대 1로 결정한 직후, 권 변호사는 헌재 대심판정 방청석에서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입이 틀어 막힌 채 끌려나갔지만, 검찰은 그를 법정소란죄로 기소했다. 이후 2015년 4월 18일과 8월 15일 세월호참사 관련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했다는 혐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해산명령 불응)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 장두봉 판사는 권 변호사의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장 판사는 권 변호사가 헌재 대심판정에서 소리를 지른 것은 재판을 방해할 목적이 아니라 헌재 결정에 불만을 표시한, 의사표현이라고 봤다. 또 검찰이 세월호집회 관련 공소사실에 ‘불법폭력집회, 극렬한 폭력집회’ 등의 표현과 내용을 담아 공소장일본주의(판사가 유죄로 인정하게끔 선입견을 부추겨 사건의 실체 판단을 방해하면 안된다는 원칙)를 어겼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23일 권영국 변호사에게 전화로 이번 재판의 소회를 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깔끔한 판결... 기분 좋았다”

- 전날 판결 소식을 들었다. 소감이 어떤가.

“기분이 좋았다(웃음). 판결에 워낙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했다. 무죄와 공소기각.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공소기각된 혐의는 2015년 세월호 집회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인데, 당시 공권력이 국민들의 집회현장에 와서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권을 남용한 부분은 (법원) 판단을 받지 못했다. 공소 자체가 무효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이 경찰을 동원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탄압한 사안 중 하나였다. 특히 세월호 참사 1주기 때였고. 그럼에도 두 가지 다 굉장히 의미가 큰 판결이라 이 아쉬움을 충분히 능가한다.

저는 변호사가 된 이후(2002년 사법연수원 수료) 공소제기 절차가 형사소송법에 위배된다며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본 적이 없다. 공소장일본주의는 법관이 재판을 하기 전에 유죄 심증을 형성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공소장에 공소사실 관련 부분만 적시하고, 증거조사 전에는 공소장에 증거를 붙여도 안 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집회 관련해서 그 전에 있던 집회 배경이나 역사, 기원 등 폭력성을 부각하기 위해 공소사실과 무관한 내용들을 공소사실에 막 기재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제 공소장이 길었다. 저를 구속시키려고 작정했으니까(웃음). 세월호 집회가 많았잖냐. (검찰이 공소장에서) 집회의 폭력성을 엄청나게 부각시키려고 했고, 제가 기소된 사건도 다 덕지덕지 붙였다. 다 무죄났는데 마치 (유죄로) 확정된 것처럼. 또 툭하면 제가 경찰관을 때리고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선동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런데 공소기각 판결은 전혀 예상을 못해서 잘 믿기지 않았다. ‘어 저렇게 판결해도 되나?’ 공소장일본주의라는 건 형사소송 책에나 나오는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판사들은 재판과정에서 변호인이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주장하면 검사에게 공소장을 변경하라고 한다. 임종헌·양승태 재판에서도 엄청 다투죠? 그래서 그만큼 (법원에서도) 공소장일본주의에 관심도가 높아진 것 같다.

법정소동 무죄 판결도 잘 봐야 한다. 사실 헌재나 법원이 역할은 다르지만 크게 보면 같은 사법기관이라 판사들에겐 (제 사건이) 자신과 연관된 일일 수 있다. 법정 내에서 강력하게 항의한 건데, 그걸 무죄로 선고하기가 쉽진 않았을 듯하다. 그런데 그걸 잘 구분했더라. 이 사람이 재판을 방해할 목적으로 한 거냐, 어떤 판결이나 결정에 강한 문제제기를 한 거냐. 그걸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판결 선고에서) 표현하더라.”


그가 법정에서 끌려나간 이유

“헌법이 민주주의 파괴했다”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해산 판결이 나자 권영국 변호사가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항의하다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헌재에서 소리지른 걸 의사표현으로 인정할 수 있다?

“네. 재판의 진행 정도나 그날 헌재 대심판정에 그 사건만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재판 방해 목적이 아니라 결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판단했다. 불만이라기보다는 강한 문제 제기인데, 이게 결국 제 의사(헌재에서 소리지른 이유)였다. 정당해산 결정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강하게, 헌법재판관 면전에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판결의 이 부분이 제가 당시 갖고 있던 의사를 잘 판단한 것으로 느껴졌다.”

- 2014년 12월 19일 기억을 다시 떠올려본다면.

“저는 사실 통합진보당 쪽 법률대리인은 아니었다. 그때 여러 동향을 종합해보면 헌재의 정당해산심판 결정이 상당부분 예상됐다. ‘야, 이걸... 정권 입맛에 맞추기 위해 한 정당을... 그리고 국민이 표를 준 정당을 이렇게...’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마침 박근혜 당선 2주기였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최후까지 지켜야할 헌재가 오히려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역행시키는 결정을 하면 분명히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싶었다. 하여튼 선고하는 역사의 현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대 1이었죠. 해산결정, 국회의원 자격상실 주문이 나오는 걸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박탈하는 잘못된 결정이란 것을 재판관 면전에서 얘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는 늘 판결을 보고 난 뒤에 법정 밖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나. 그게 꼭 뒷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용기를 내 일어났다.

법정에 들어가면 정말 고요하다. 부스럭대는 소리 하나라도 나면 안 되는 듯한, 강요된 침묵의 분위기가 있다. 말을 할 수 있을까부터 쉽지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서 소리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 사실 오래 가진 못했다. 방호원들이 금방 끌어내서(웃음). 하여튼 저는 재판관들이 직접 보고 듣도록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고. 이 부분을 제가 강하게 문제 제기하려고 했던 것으로 판단해준 법원에 감사드린다.”


“검찰권 남용, 제 사건에서도 드러나”

- 기소 당시부터 검찰의 무리한 기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검찰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시선도 있었고. 결국 이러한 일들이 모여서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제 세월호 집회 혐의도 원래 기소하면 안 되는 사안이었다. 검찰이 2015년 4월 18일 제가 경찰을 폭행했다며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했다. 그런데 당시에 한 경찰이 시위대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제가 그 경찰이 다른 사람들에게 밟히는 걸 막으려다가 목덜미가 채여 연행됐다.

나중에 이 경찰이 검찰 조사에서 ‘권영국 변호사가 저를 폭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팔이 잡히긴 했지만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고 다른 폭행을 당한 적 없다’고 명확히 진술했다. 피해자가 폭행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럼 공무집행방해가 안 된다. 그런데 검사가 이 진술조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수사기록목록 등이랑 비교해서 법원에 제출명령을 요구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확인할 수 있었다.”

- 검사의 객관의무(공익의 대변자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재판에 제출해야 한다는 의무) 위반 아닌가.

“맞죠. 그런데 ‘이 사람을 기소해야 한다’는 집념이 작동한 것 같다. 객관의무 위반이고, 실제로 범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매우 유력한 증거인데 은폐하고 무리한 기소를 했다. 해당 경찰이 법정에 증인으로도 출석했는데 검찰 조사와 똑같이 ‘폭행당한 적 없다, 제 덩치를 봐라 폭행당할 사람은 아니지 않냐’고 명확히 얘기했다. 검찰이 검찰권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공안사건에서 여러 번 확인됐다.

검찰이 인권을 보호한다? 검찰이 자체적으로 목적을 설정하는 순간,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린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검찰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는 구조는 개인의 선의로 둘 문제가 아니다. 검찰권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저의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정말 제도로, 제대로 개선해야 한다. 검찰에게 완전히 집중된 수사권과 기소권을 합리적으로 분산하고, 검찰 권력을 견제할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찰도, 경찰도 답답... 기본권 어떻게 보호할 건가”

강제연행되는 권영국 변호사 2015년 9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가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 현장에서 경찰과도 많이 충돌했다. 경찰권력의 남용도 더 많이 경험하고 목격했고. 그런 이유로 검찰의 권한을 떼어내 경찰에게 넘겨주는 게 진정한 개혁이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보면 도긴개긴(둘다 못났다)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상으로 올라가면 (경찰권력의 남용이) 더하겠죠. 이승만 때는 경찰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했다. 그런데 사실 경찰이 매우 비민주적인 정부 아래 들어가면 거의 시민들을 공격대상으로 인식하고 행동한다. 마치 정권의 호위병처럼 사고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책무는 검찰과 경찰이 다 갖고 있다.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고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맹목적으로 복종한 것이 우리가 그간 보아온 경찰의 이미지고, 상황이었다. 그래서 참 답답하다. 과연 권한을 분산했을 때 경찰은 얼마나 잘 인권을 보호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가 수사기관 전반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 피고인이 된 사건도 대부분 집회·시위 현장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집회·시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0일 첫 정책 비전을 발표하며 “폭력 사용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전 정부에서 ‘불법·폭력집회’ 운운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올라서면 꼭 오류가 발생하는 문제인데... 매우 주의해야 한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자꾸 폭력을 연결고리로 집회·시위나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듯한 발언이나 정책을 내놓는 것은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표현이나 집회의 자유는 정말 최대한 제한 없이 보장돼야 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어차피 폭력을 행사하면 다 처벌 받는다. 폭력은 폭력대로 처벌해야하는데 왜 자꾸만 기본권에 연결시켜서, 마치 집회나 표현의 자유가 폭력을 수반하는 인상을 만드는가. 이건 과도한 우려를 한다고 보인다. 기본권은 명확히 보호되고,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 신중해야 할 문제다.”


출처  세번째 피고인 된 변호사 “이런 판결은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