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재용이 구속돼야 경제가 바로 선다

이재용이 구속돼야 경제가 바로 선다
신(新) 그레샴의 법칙, 거짓은 어떻게 진실을 몰아내나?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9-08-28 13:13:13 | 수정 : 2019-08-28 13:13:13


중요한 사실부터 하나 확인하자. 우리는 박근혜-이재용 뇌물 사건에서 삼성이재용을 모두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2017년 3월 6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발표한 최종 수사결의 일부를 살펴보자.

피고인 이재용, 최지성, 장충기는 공모하여 …(중략)… 업무상 보관하던 피해자 삼성전자의 자금 76억 2800만 원, 피해자 삼성화재의 자금 54억 원, 피해자 삼성물산의 자금 15억 원, 피해자 삼성생명의 자금 55억 원, 피해자 제일기획의 자금 10억 원, 피해자 에스원의 자금 10억 원 등 합계 220억 2800만 원을 영재센터에 후원금 명목으로, 미르재단, 케이스포츠 재단에 출연금 명목으로 각각 지급함으로써 횡령.

눈여겨봐야 할 단어는 반복돼 등장하는 ‘피해자’라는 단어다. 삼성화재, 삼성물산, 삼성생명, 제일기획, 에스원은 모두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당연히 회삿돈을 횡령해 뇌물로 사용한 피고인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말은 지금 돈을 뜯긴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도둑질을 당한 피해자가 도둑놈을 옹호하는 셈인데 이 정도면 연말 코미디 대상감이다. 이게 바로 인질들이 연민을 느껴 테러리스트를 옹호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건가?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호하는 이 황당한 상황

이 황당한 상황이야말로 한국 기업들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한국 재벌 오너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기업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건희 일가는 유럽 귀족 흉내를 몹시도 내고 싶어 했다. 이걸 굳이 규제할 근거는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개인적인 사치는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 이들은 개인적인 파티에 회사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이건희의 생일이 삼성의 ‘공식행사’인 이 봉건적 집단은 이 짓이 왜 부끄러운 일인지 알지 못한다. 기업의 이익이 이재용 일가의 이익과 일치하도록 돼 있는 엉망진창의 기업 구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SDS가 그룹의 집중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삼성그룹이 이재용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업의 이익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IT 서비스 회사인 삼성SDS는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비중이 매출의 70%에 육박한다. 만약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보다 나은 IT 서비스를 받고자 했다면 삼성SDS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더 싸고 더 품질 좋은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삼성SDS의 최대주주는 이재용이었고, 삼성의 모든 계열사들은 이재용의 재산을 불려주기 위해 삼성SDS에 일감을 몰아줬다. 그래서 이재용은 단돈 160억 원을 투자해 그 재산을 3조 원으로 불렸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법무팀과 홍보팀을 총동원해 이재용의 구속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 수억~수십 억 원의 연봉을 받는 법무팀 직원들의 임금은 모두 회사가 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회사 돈을 횡령한 가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오너 한 사람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도둑을 몰아내야 집안이 평안하다

몇 차례나 집을 털어간 도둑이 있다면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몰아내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피해자 삼성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가해자 이재용을 즉각 그룹에서 몰아내고 그의 죄를 묻는 것이다. 그래야 삼성의 앞날이 평안해진다. 이재용은 삼성의 구원자가 아니라 삼성의 파괴자였다.

혹시 “이재용의 경영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삼성에 필요하다”는 헛소리는 사양하겠다. 이재용은 2000년 5월 ‘e삼성’으로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사업을 왕창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국정농단주범 범죄자 이재용 재구속 촉구 농성 기자회견' 모습. ⓒ김철수 기자

이재용이 삼성 전반을 관장한 이후 가장 애착을 가진 사업은 바이오였다. 하지만 지금 바이오의 모습을 보라. 사업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남긴 족적은 분식회계라는 상처뿐이다.

게다가 이재용이 없을 때 삼성전자의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이재용은 2017년 2월 17일 구속됐는데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9개월 만에 52%나 급등해 역사적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듬해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삼성전자 주가는 1년 6개월 동안 10%나 하락했다. 경영자가 감옥에 가면 기업 주가가 급등하고, 풀려나면 급락한다. 이 정도 경영자라면 없는 게 훨씬 낫다.


신(新) 그레샴의 법칙, 거짓은 진실을 몰아낸다

그레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명언으로 널리 알려진 경제학 법칙이다. 이 법칙을 만든 이는 16세기 영국 왕실의 재정 고문이었던 토머스 그레샴(Thomas Gresham)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는 거덜이 난 왕실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은의 함량이 매우 낮은 불량 은화를 대량으로 찍어 유통했다. 그런데 불량 은화가 유통되자 양질의 정상 은화가 시장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엘리자베스 1세기 그레샴에게 이유를 묻자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몰아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나쁜 화폐와 좋은 화폐를 같은 가치로 쳐주면, 사람들은 아무도 좋은 화폐를 쓰지 않는다. 좋은 화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니 집에 숨겨두고, 은이 덜 함유된 저질 화폐만 쓴다. 어차피 저질 화폐도 양질의 화폐와 같은 가치로 쳐주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이정전 명예교수는 저서 『시장은 정의로운가』에서 그레샴의 법칙을 확장해 ‘신(新) 그레샴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이 교수의 신 그레샴 법칙은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부정직이 정직을 몰아낸다”는 뜻이다.

거짓과 불의가 정의나 정직과 같은 가치로 취급을 받으면, 삽시간에 정직과 정의는 사라지고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친다. 사기치고 횡령하며 살아도 정직한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는데, 누가 정직하게 살겠느냐는 이야기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나쁜 화폐는 절대 좋은 화폐와 같은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불의와 거짓도 결코 정직이나 정의와 같은 대접을 해줘서는 안 된다. 그 둘이 같은 대접을 받는 순간 시장은 엉망이 되고 나라는 개판이 된다.

한국 재벌 사회가 엉망진창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직한 기업인이 부정직한 기업인과 같은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 부정직한 기업인을 오히려 우대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정의로운 기업인의 씨가 말랐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 것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반칙과 부정부패가 지배하는 사회가 효율적일 리 없다. 그런 비효율적인 사회가 경제에 도움이 될 리도 없다. 악화는 악화 취급을 해야 하고, 범죄자는 감옥에 가둬야 한다. 이게 경제를 위한 길이고, 삼성을 위한 길이다.

29일 이재용 뇌물 사건에 대한 상고심이 열린다. 이 재판이 한국 기업 문화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이기를 소망한다.


출처  이재용이 구속돼야 경제가 바로 선다